이 책은 김주영 장편소설이다.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 아닐까 싶다.
두 어린 주인공 김형석과 김형호의 눈으로 비춰진 세상이야기와, 더불어 그들의 성장기를 가슴 저리게 들려준 이야기였다.
나는 그 지독하게 가난했던 시절을 살아낸 경험이 없다. 다만 작가가 그려놓은 글 속에서 나름대로 더듬거리며 찾아볼 뿐이다.
수시로 배를 곯고, 물이라도 배부르게 실컷 들이킬 수 있는 걸 오히려 복으로 아는 형제들, 그러면서도 형제간의 우애를 큰 덕으로 지니고 살았던 모습을 보면서 가슴이 짠해왔다.
아버지 없이 홀 어머니 밑에서 늘 형제가 빈 집을 지키는 모습은 빈 집을 더 크게 보이게했다. 어머니는 품앗이 일이 끝나기가 무섭게 허둥지둥 집으로 돌아와 밥을 지어 먹이고, 아이들을 씻기고...반찬도 없이 다만 김치 하나로도 행복해했던 가족들..그 시간만이 온전한 가족의 모습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리라..
하루종일 엄마가 없는 집은 얼마나 쓸쓸했을까? 그러다가 날이 어둑해지면 어머니가 돌아오고 비로소 집에는 등잔불 심지가 돋우어진다. 그제서야 방안 구석 집안 구석구석 웅크리고 앉았던 어둠이란 놈이 스물스물 달아난다.
어릴 때 시골 할머니댁에 갔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물론 나 어릴 때도 장난감이니 인형이니 하는 것은 우리집 형편상 집에서 구경하기 어려웠다. 우리들 스스로가 놀이기구이자 장난감이었기 때문에 그저 모이기만 하면 재밌게 노는 것은 문제도 아니었다. 그러다가 방학이 되어 할머니댁에 가면 거긴 전등불대신 등잔불이 켜지고, 켠다한들 내 뒤로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어둠을 완전히 몰아내지는 못하는 밤이었다.
낮엔 또 어떤가?
방학이라고 해도 원체 집이 드문드문 있는 시골이라 산등성이며 묘지 옆이며 개울가며 그 넓은 곳 어디에서 도대체 아이들이 놀고 있는지 첨엔 찾을 수 조차 없었다. 마치 도시에서 온 아이들 따돌리려 일부러 숨어서 노는 것처럼..나중에야 친해져서 같이 가제도 잡으러 다니고 잔디 미끄럼도 타러다니고 숨바꼭질도 하러다녔지만...
암튼 사람도 귀하고 장난감도 귀하던 그때 더더군다나 할머니가 밭에 일 가시면 마냥 하염없이 우리들끼리 놀아야했다.
그때 초가지붕 작은 툇마루 아래서 덩그마니 동생이랑 둘이 앉아 할머니를 기다리던 모습이 주인공들의 모습과 오버랩되어버렸다. 어느 순간 밖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리면 미처 신발을 신을 겨를도 없이 동생과 나는 앞다투어 뛰어나가곤 했다. 그때의 할머니는 늘 우리에게 얼른 밥 해먹자고 그 말씀을 하셨는데, 주인공의 어머니 역시 그 말을 하시는 걸 보니 정말 못먹고 살던 시절에 "밥 해먹자"는 말 만큼 귀한말이 또 있었을까 싶었다.
나는 국민학교에 다녔다. 요즘이야 초등학교라고 하지만, 나는 분명히 국민학교를 다녔다. 내가 2학년 때 까지 나도 육성회비란 것을 냈다. 누런 봉토에 바둑판처럼 표가 그려져있고 거기에 수납확인 도장이 찍혀 있었는데, 그마저도 제대로 내지 못해 늘 닥달을 당했던 기억이 지금도 아득하다. 엄마가 있으면서도 돈을 안 주진 않았음은 분명한데도 무대포로 엄마에게 육성회비 안 주면 학교 안간다고 버티던 기억도 난다. 그때 엄마 마음은 얼마나 참담했을까 싶다. 이제 내가 아이를 키우고 보니 어렴풋이나마 짐작을 할 뿐이다.
곡끼를 굶어도 아이들은 자랐다. 생각이 자라는 것 자체가 큰다는 의미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소설 말미로 갈수록 아이들은 자꾸 누군가와 이별을 겪게된다.
한 문학평론가는 그 이별을 겪어냄으로써 비로소 작가가 아픈 성장기를 털어내고 어른이 되어간다고 평가했는데..그건 일리가 있는 말이다.
어릴 때는 이별이란게 생소했었다. 국민학교 6학년이 되어 학교를 졸업하면서 경험한 이별이 아마도 최초가 아니었나 싶다, 내가 기억하는 내에서는...
누구랄것도 없이 그때 졸업식에서 펑펑 울었었는데, 그때는 이별이라는 감정이 서글퍼서라기보다 그냥 눈물이 났었다. 이별을 할 때는 울어야하는 것이라는 오래된 정서 탓이기도 하겠지만...
주인공 형식과 형호도 이별을 경험한다.
반편 취급을 받던 장석도, 일명 삼손..하지만 삼손은 유독 형석에게는 술도가의 고두밥을 알아서 챙겨줄만큼 다정한 사내였다. 고두밥을 손수 챙겨준다는 것은 그 고두밥을 지켜내는 것이 삼손의 의무인 것과 견준다면 굉장히 큰 생색인 셈이었다. 하지만 생색내려고 한 행동이 아니기에 그 진심을 주인공이 알아채고 더 가깝게 대해줬는지도 모르지..삼손과의 이별, 그리고 부잣집 딸 옥화의 죽음, 자기를 좋아했던 남순애 계집애와의 이별을 얘기하는 사이 어느새 주인공들은 장정이 되어 있었다.
이 책은 딱히 교훈을 주는 책도 아니다. 다만 책을 덮고 나면 아련하게 어린시절을 나도 모르게 추억하게 되고, 그 속에서 늘 내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던 엄마와 할머니와 아버지를 떠올리게 되고..이제 다시는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음에 마음 아프고 황망하면서도 그런 추억을 가질 수 있었음에 행복해서 웃음짓게 되는 그런 이야기였음을 고백한다.
고기잡이는 갈대를 꺾지 않는다...
제목을 몇번이고 되뇌어보았다. 도대체 무슨 뜻일까 싶어서...
고기들은 개울가 들풀이 무성한 속에 숨어있다. 어릴 때 고기를 잡을때는 족대를 넓게 펴고 한 놈이 기다리고 있으면 다른 한 놈은 그 들풀을 마구 발로 첨벙첨벙 밟아서 고기를 몰곤 했다. 그럼 놀란 고기들은 여지없이 족대 그물에 걸리곤 했었는데...
그럼 그 개울가 들풀이나 갈대가 없다면 고기도 없어진다는 얘긴가?
들풀을 꺾어버리면 그로 인해 물위에 어른거리는 그림자도 없어질테고, 그건 곧 우리의 놀이터가 없어진다는 얘기도 된다.
아니다, 추상적으로 생각해도 되겠다. 가끔 마음을 갈대에 비유하기도 하는데, 그렇다면 이리저리 쉽게 흔들리지 않는 마음을 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주변의 상황이 아무리 열악하고 가난하더라도 결코 내 마음만은 꺾지 않으리라는 주인공의 다짐인지도 모른다.
작가가 어떤 느낌으로 이런 제목을 택했는지 결론 내리지는 못했지만,
그냥 느낌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추억없이 오늘은 없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