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태자비 납치사건"을 읽고....
하루에 한권짜리 소설이예요.
내가 책 집어드는 걸 보고 아가씨가 던진 말이다.
정말 그랬다.
이렇게 장편소설 손에 쥔 건 "아버지" 이후 근 6-7년만인 듯 하다. 난 단편이 좋고 사실 이야기가 좋다...그래서 허구를 사실처럼 꾸며 쓴 소설은 잘 읽지를 않는데...
부담스러움에 지난번 서점 갔을 때도 들었다가 다시 내려놓은 책이었는데, 뜻밖에 아가씨방 책꽂이 한 켠에 꽂혀 있는게 눈에 띈 걸 보면 나한테 읽힐 수 밖에 없는 운명이었던 모양이다.
요즘 책읽기에 푹 빠져있는 내게 이야기 길이가 사실 문제는 아니었다.
막상 읽기 시작하니깐 너무도 숨가쁘게 지나갔다.
하루 한권, 맞았다. 다음 진행과정이 궁금해서 더 기다릴 수가 없었으니까..
출퇴근 버스 안에서, 심지어 길을 걸으면서도, 점심 먹고나서, 업무시작전, 업무 마감 후에 짬짬이...하지만 짬짬이 책을 읽는 행동과는 달리 머릿속은 온통 책으로 꽉 차 있었음을 시인한다. 그동안 나의 일은 철저히 외면당했음을 또한 인정한다.
최근에 읽은 책 중에 이렇게 푹 빠졌던 적도 없었는데...
명성황후 시해사건이라는 상당히 민감한 역사적 사실에 대해 일상처럼 편안한 글로, 하지만 그 안에 한없이 뼈대와 깊이가 느껴지느 글로, 아무리 소설이라지만 섬세하게 엮어나간 김진명 작가가 위대해보이기까지 한다.
이미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서도 새삼스레 부끄러운 마음을 어디 둘 데가 없어 책 읽는 내내 마음이 묵직했다.
입으로만 떠들어댔지...
"어떻게 한 나라의 국모를 일개 일본의 낭인들이 살해하고, 게다가 시간까지 할 수 있는가? "라고...
무례한들이라고 떠들어댔지만 정말 가슴으로 뜨겁게 외친적은 한번도 없었던 것이..못내 머리를 조아리게끔 했다. 작가는 이런걸 노린걸까?
전문 435호 내용을 일본의 국모인 마사코가 읽어내려가는 장면에선 묘한 기분과 함께 가슴이 쿵쾅거렸다. 내가 그 현장에 방청객으로 앉아있는 것 이상으로..이제 일본의 만행은 백일하게 드러났다.
작가는 그 역사진실의 폭로자를 다름아닌 일본의 국모로 설정했고, 그 장면에선 왠지모를 통쾌감이 느껴졌다. 시원하다.!!!!!
이 책은 일본 황태자비 마사코 납치사건에서 시작된다.
범인은 모두 한국인,
명성황후 시해 사건때 최소한의 의무와 도리마저 버리고 도망갔던 한 사관의 자손과 , 농사 짓다가 홀로 입성하여 도망자들을 나무라고, 황후를 지키겠다고 봉기하였다가 그 자리에서 사관의 총에 의로운 죽음을 맞이한 한 이름없는 농부의 자손..
역사의 끈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했던 두 사람이 운명적으로 만나 그 악연의 끈을 매듭짓고자 벌인 일이 바로 황태자비 납치사건...
나 또한 그 비겁한 사관의 후손잉ㅆ다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어쨌거나 용기있는 행동이었음은 인정한다. 설령 그것이 무모하게 보였을지라도...
어쨌거나 행동하는 자만이 움켜쥘 수 있는 것이고,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것이니까..
일본이 자꾸 역사를 은폐하자 이들은 황태자비를 담보로 진실을 공개하라고 요구한다. 하지만, 일본정부는 극비 문서를 공개하지 않았다. 국모의 안위보다 명망이 더 중요했던 탓에 차마 치부를 드러낼 수는 없었겠지...
다나카 경시정의 끈질긴 수사 덕에 실마리는 풀려가고 결국 범인은 잡힐 위기에 놓이고..끝까지 자신들의 과거 역사의 치부를 드러내기 원치않았던 일본 고위층 관리자는 경찰서장을 매수하여 범인을 사살할 것을 교사한다. 마지막까지도 치졸한 모습으로 그림을 그리는구나...
하지만, 고위층의 살해 음모로 위기에 몰렸던 납치범 임선규는 결국 다나카의 기지, 정도수사로 갈 길을 정하고 어떤 것에도 뒤흔들리지 않았던 다나카의 결단으로 구출된다.
자유가 주어지면 당장이라도 납치범을 외면할 수 있었지만, 마사코는 오히려 역사의 진실을 밝히는데 앞장섰다. 진심으로 사과하는 것이야말로 황태자비로서의 참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판단으로...
자리가 높을 수록 고개 숙이긴 더 어려운 법인데, 황태자비가 진심으로 우리 민족에게 고개 숙여 사과하는 모습을 보면서, 자리가 또한 사람을 만드는 거란 생각도 들었다.
비록 소설속에서였지만, 왠지 마음이 통쾌하기도 하고, 할 일을 다했다는 뿌듯한 마저 생기는 걸 보면 작가 또한 이 글을 그런 마음으로 쓰진 않았을까 헤아려진다.
소설을 누가 픽션이라고 했던가?
역사적 사실을 철저히 고증하여 구구절절 응요한 작가가 위대해보이기까지 했다.
독자를 글 속에 녹여들이고, 스스로 주인공으로 만들어버리는 책.
그런 작가가 진정한 글쟁이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저 느낌을 간직하고 싶어서 몇자 적어 남긴다.
제발 두고두고 글 속에 부족함 대신 흡족함이 자리하길 바랄 뿐이다.
과거를 잊지 않으면서도 미래로 나아갈 줄을 아는 그런 국민이 되고싶다. 그런 서민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책장을 닫았다.
물은 흘러야 고이지 않고 썩지 않는다.
그래야 변화도 생기는 법...
과거는 과거일뿐 새롭게 전진한다는 것이 중요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