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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한권을 읽고나서...


BY 하나 2004-08-27

이혜경 소설집꽃그늘아래를 끝냈다. 총 10편의 단편들을 모아 역은 책이다. 내가 산고를 겪은 끝에 토해낸 글들도 아니건만, 책을 덮으면서 이렇게 아쉬움이 남은적도 없었다.

한번 읽어서는 도대체 감정을 이끌어낼 수가 없는 내게는 제법 어려운 소설이었다. 일반적인 소설은 대개 글자들의 조합에서 주인공들의 현재 상황이 밑그림처럼 쉽게 그려지고, 그에 따른 그네들의 현재 심정이 내게로 고스란히 전달이 되어오는데, 이혜경 소설은 예외다.

글자들을 읽는 것만으로는 도시 주인공들의 상황이나 감정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을만큼 철저하게 절제되어 있다. 왜 이런 글귀를 넣었을까? 주인공이 처한 상황은 어떤건가? 작가가 말하고자 하는 건 뭘까?

나라면 이런 상황에서 이성은 완전히 없어진채로 마구 화내고 날뛰었을것 같은데, 이혜경 소설에서는 그 흔한 욕지거리 한번이 없다. 너무 잔잔하고그래서 주인공들은 모두 천사표처럼 보인다, 성자처럼 보인다.사업에 대한 바람기 덕분에 집안 재산 다 들어먹은 큰오빠를  외면하고 살것 같은데도 정작 여동생은 너무나 너그러운 시선으로 받아들인다.

젊은날 줏대없이 처음 본 여자와 바람이 나서 조강지처 버리면서까지 한밤중에 보퉁이 도망을 한 남편, 그가 주검으로 돌아왔을 때 가슴 아픈 지난세월을 그저 시간 속에 침식시키며, 남편을 홀린 그 여자가 한번쯤 얼굴 드러내지 않는 것에 다만 마음 아파할 뿐인 아내..현실에서라면 가능하기나 한가? 아마 인연끊고 지내기가 쉬웠을 듯하다..자식이 있었더라도 요즘은 자식 때문에 참고사는 부부가 그만큼 드물기 때문에그래서 그 흐느낌이 더 도드라졌던 검은 돛배

남편의 폭력에 시달리면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고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곧추세웠던 여자가슴 응어리를 여고동창에게 풀어냄으로써 자신을 철저히 드러냈던 이유는 그래야 살아갈 이유가 생기기 때문이 아니었나싶다.

가슴 응어리를 그대로 안고 있으면 그로인해 더욱 곤고하고 힘들기에 살아갈 힘이 들어갈 자리가 없으니까주인공의 행동은 지극히 인간적이었다.

살기 위해선 버릴줄도 알아야하고, 버리면 새로운 살이 돋아나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창피함? 부끄러움?  그런건 오히려 지나치게 꼭꼭 숨기고 사는데서 오는게 아닌가하는 막연한 생각이 든다. 곪을대로 곪아서 터져버리면 오히려 더 부끄러우니까곪기전에 시원한 공기와 햇볕을 쏘이면 상처가 아무는 것과 동시에 부끄러움은 멀리 달아나버리는 것이다. 어두운 곳에 있어봐야 곰팡이만 필 뿐인 것을작가는 내게도 그걸 말하고자 했던걸까?

힘들때 웅크리지 말고 볕 쬐는 곳으로 자꾸만 걸어나오라고, 응어리진 마음 그냥 가지고 가지 말고 풀어놓고 가볍게 가라고내게도 풀어야할 피붙이들간의 응어리가 있기에 자꾸만 작가는 내게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풀면 아무것도 아닌 것을,풀기까지가 어려운 것이지

내 옹졸함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만큼 주인공들은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가진것이 없기에 더 잃을것도 없다는 파리의 연인에서의 강태영 독백이 생각난다.

갓 구워낸 빵에서 나는 향기처럼 달콤하던 행복과 사랑이 시들해질무렵

그래도 딱딱해진 빵을 버리지 않는건, 딱딱한 빵도 입안에서는 다시금 부드럽게 녹여먹을 수 있는 침이 있기 때문이겠지연애할 때 가슴 설레고 가슴 뛰던 그때를 상기해보는 것만으로도 입안에 침이 고이고 가슴은 그때로 돌아가있다. 행복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다..어쩌면 다른 사람과 알게모르게 비교해보면서 나는 저 사람들에 비하면 얼마나 가진 것이 많고 행복한가!라는 생각이 저절로 들때에야 비로소 우월감 비슷한걸 느끼면서 얼굴에 웃음 띠는 것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스스로를 나는 잘 살아내고 있는 행복한 사람이다 생각하는거그게 올바른 시선인지도모른다. 왜냐하면 사람은 생각따라 변하게 마련이니까내가 행여라도 나는 불행하다라고 생각한다면 나는 정말 그 생각을 하는 순간 불행해질지도 모르기 때문에

이혜경 소설은 조용하다침묵으로 말한다.

왈가왈부하지 않고, 독자 스스로가 그 침묵속에서 진리를 찾아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쓴 것처럼..결코 쉽지가 않다..다른 소설을 읽다가 이혜경 소설을 접하면 맘이 사뭇 진지해진다. 그리고 열심을 낸다.

그리고, 내가 살아가는 일상을 다시한번 돌아보게 된다.

말만 앞세우고 사는 나날들하지만, 침묵이 때로는 더 큰 외침이 될 수 있다는 것에 고개 숙이며, 나의 일상을 글로 표현한다면  어떻게 표현되어질까라는 상상을 해보면 결코 대충 살아서는 안되겠다는 다짐이 절로 생기기도 하고

시간이 허락된다면 몇번 더 곱씹으면서 읽어보고 싶다.

다음에 다시 이혜경 소설을 접하게 되면 그때는 좀 더 천천히 천천히 읽어나가리라 그러면 지금보다는 쉽게 문장 뒤에 숨겨진 절제된 감정을 찾을 수 있으려나이런 바램을 가져본다.ㅎㅎ

삶이란 거저 얻어지는 것은 없다.

열심히 살아내려는 의지에서부터 출발해서 행동하나하나가 모두 내 인생을 그대로 만들어내는 걸 생각한다면

절대로 대충 살아서는 아니되는 것이다.

우리 일상에서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들여다보면 늘 일어나는일들을 작가는 이야기해준다,철저한 이혜경만의 방식으로 밑바닥까지 내려간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면서도 결코 포기하지 말라고 작가는 말한다. 왜냐고 묻는다면 그건 누구도 내 삶을 대신할 수는 없기 때문이며,또한 힘을 낸다면 다르게 살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꿈을 버리지 않는한 나도 멋드러지게 내 삶을 바꿔나갈 수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기에

오랜만에 얇으면서도 너무나 묵직한 소설을 읽어냈다.

다시 한번 읽으면 또다른 느낌이 오겠지 싶은..아주 여러가지 빛깔을 가진 소설이었다.

그럼이만

2004년 8월 23일 월요일 아침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