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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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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품이 그리워라


BY 蓮堂 2004-12-14

 

어둡고 긴 터널속을 손으로 더듬거리며 출구를 찾으려고 허우적 거렸다.
아니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무언가가 내 목덜미를 나꿔 채는것 같아서 그 공포감으로부터 벗어 날려고 몸부림친 것 같았다.

 퀘퀘한 냄새와 동글속의 그 음습한 냉기, 가물거리는 한줄기 빛조차도 보이지 않는닫혀진 공간이었다.
발밑은 자꾸만 꺼져 내려 가는것 같이 물컹거리고 내디뎌지지 않는 걸음에 힘을 줘 보기도 했다.

 그 어둠속에서 누군가가 나를 바라보고 서 있었다.
명암이 확실하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난 그 실체가 곧 돌아가신 시어머님이라는걸 알았다.
어떻게 여기까지 오셨을까..여긴 아무도 모를텐데....."

 시어머님은 나를 부르고 계셨다.
나는 대답 대신에 한사코 다가오시지 마라고 소리를 질러댄것 같기도 하고 여길 왜 오셨냐고 나무란것 같기도 하고.....

 시어머님은 나를 향해서 두팔을 벌리셨다.
빨리 오라고 더 크게 더 활짝 두팔을 열고 나를 껴안을듯이 다가오셨다.
'제발..한번만..한번만 안아보자......에미야..........'
시어머님은 거의 울부짖듯이 나를 부르셨다.

 꿈속에서도 난 죽은 사람을 가까이 하면 화를 당한다는 속설을 맹신하고 있었다.
'나를 데리고 갈려고 오셨구나....내가 괘씸해서.....내가 미워서......'
어쩌면 자격지심에 의한 스스로의 죄값에 미리 겁을 먹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너무 무섭고 끔찍해서 비명을 지르며 시어머님을 향해서 수없이 많은 잔돌을 던지다가 깨어났다.

홍건히 땀에 젖은 몸을 미처 추스리지도 못하고 난 해몽을 해 보았다.
왜 오셨을까...

오랜 병고에 시달리시다가 3년전에 세상을 떠나신 시어머님의 현몽은 예사롭지가 않았다.
폐부전증으로 중환자실에서 유명을 달리하신 시어머님에게 난 한이 많았다.

무엇보다도 내손으로 대소변 한번 받아내지 못하고, 미음 한숟갈 입에 넣어드리지 못했는데 차디찬 산소 호흡기를 목에 단채 그렇게 세상을 버리셨을때 난 스스로 '불효'라는 딱지를 가슴에 대고 인두질하며 살아야 했다.

고부간은 교차점을 찾을수 없는 평행선 일뿐이다라는 등식을 미리 성립시켜놓고 난 그 공식대로 어긋남없이 살아온 평범한 며느리에 지나지 않았다.

산소 투여량이 90% 되었을때 의사는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일러줄때만 해도 난 믿지 않았다.
아직 체온도 그대로였고 표정도 다름없이 평온하고 흐트러짐이 없는데 죽음을 준비하라니....

예고된 주검앞에 난 형식적으로 의사의 말에 '그럴리 없다'는 불신의 멘트만 뱉아 놓았다.
어쩌면 그 주검이 예상을 뒤 엎을수도 있다는 막연한 기적 같은것을 두려워 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며느리만이 감지할수 있는 예민한 사안이었다.

난 시어머님의 가슴에 얼굴을 대고 남아있는 심장소리나마 들을려고 애를썼었다.
그러나 호흡기에 매달린 시어머님의 심장은 이미 조용히 멈추어 있었다.

이상하게도 섬뜩한 무서움이 더이상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았다.
조금전까지만 해도 얼굴을 부비며 쾌차하시리라는 기대를 버리지 않았는데 생과사의 경계를 뚜렷이 의식하게 되니까 난  어쩔수 없는 남이 되어버렸다.

달려온 남편과 시누이들의 오열속에서 난 내가 할수 있는건 찔금거리는 눈물만 훔치는것 뿐이었다.
시어머님을 부등켜 안고 통곡하는 자식들 틈에서 난 방관자가 된 기분이었다.
찢어지는 가슴으로 그 어른을 껴안고 피울음 토해내는 착한 며느리는 아니었나보다.

왜 그렇게 낯설게만 대해 드렸는지 해답이 안나온다.
살아 생전에도 살갑게 한번 다가가지도 않고 항상 일정한 거리에서 묵묵히 내 할도리만 했을뿐
며느리도 자식이라는 일촌관계엔 인색하기만 했다.

내 친정 어머님에게 안기듯이, 내 친정 어머님 안아 드리듯이 그렇게 하지못하고 보내드린 시어머님이시다.
너른 마음으로 자식 품에 안듯이,
따뜻하고 정겨운 몸짓한번 보여 드리지 못하고 힘없고 노쇄하신 그 어른을 마지막 가시는 날까지도 왜 그렇게 멀찍이서 보내 드려야 했을까..

맏며느리 사랑 유난하신 그 어른의 애틋한 몸짓에 왜 그렇게 움츠리고 돌돌 말려 있어야 했는지 모르겠다.
얼마나 안아 보고 싶으셨으면 현몽까지 하셨을까..

 다시 꿈을 꾸어서 시어머님을 만나야 했다.
그래서 화를 당한다는 속설 무시하고 안고 ,안기고 그래서 얼굴도 부비고 울어도 보고 그러고 싶었다.
품에 안길수만 있다면 생전에 저질렀던 사소한 허물들 모두 용서를 받을수 있으련만.....

작은 체구에 넓지 않았던 시어머님의 가슴이지만 자식들 포옹하는 그 가슴만큼은
우리들 다섯자식의 가슴을 합친다고 해도 그어른의 가슴엔 미치지 못하리라.
다섯자식 다 품에 안으신들 그 자리가 결코 비좁지 않으리라.

품어도 품어도 남아도는 시어머님의 품이 그리워지는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