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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간, 변소, 화장실


BY 수련 2004-03-29

화장실(化粧室)이라는 단어로 사전을 뒤적여보면 대소변을 보기 위해서 만들어진 건물 또는 건물내의 시설. 옛날에는 집옆에 있다하여 측간(厠間), 또는 집 뒷쪽에 지어졌다 하여 뒷간,또는 변소라고 한다고 쓰여있다. 어머니는 '변소는 그 집의 얼굴'이라 하시며 항상 깨끗해야 한다고 하신 말씀이 지금까지도 내가 유별스럽게 화장실청소를 하게 만드는 요인이 되었다.

나에게 있어 화장실은 단순히 용변을 보기위한 장소라기보다 좀 더 의미깊은 장소라고 할 수있다.
내가 태어나기 전에 부모님은 해방 전에 일본에서 살다가 큰언니, 작은언니가 5살,3살 때 봇짐을 싸서 가족들을 이끌고 한국으로 들어와 정착하셨다. 해방 후의 당시 우리나라는 격변의 시대로 사회가 혼란스러웠고 경제적으로도 몹시 궁핍하였을 때다. 부모님은 한국에 들어오면 잘 살게 될 줄 알았다가 여의치 않자 일본에서의 안정된 삶을 못 잊어 다시 일본을 밀항하려고 몇 번이나 업자에게 큰 돈을 쥐어주고 오밤중에 식구들과 배에 올라탔으나, 나쁜 안내인은 한국의 지리를 잘 모르는 아버지를 속여 거제도 한쪽 귀퉁이에 식구들을 내려놓고 돌아가 버리고, 날이 새어 길가는 사람을 붙들어보니 일본이 아닌 한국이었다. 고집스런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고 남은 돈을 다 털어 두 번이나 더 밀항을 시도하다 번번히 경상도 바닷가 근처만 뱅뱅돌아 일본땅이라고 내려준 곳이 마지막 정착지가 된 마산 바닷가 근처가 되었지만 이미 빈털털이가 되어 식구들이 비를 피할 곳조차 마련하지 못할 지경이었단다.

아버지가 손수 지었다는 어렸을때의 우리 집은 아주 허름했고,30가구가 다닥다닥 붙어있어 피난민 동네같았다. 동네 뒤편에 있는 공터에 공중변소가 있었는데, 장난꾸러기 오빠들 따라 공중변소 뒤쪽에 조그마한 창에 돌을 던져 안에서 '누구냐'고 고함을 지르면 후다닥 도망가면서도 꽤 여러 번 그런 장난을 했었던 것 같다. 여섯 살이 되면서부터 오빠들이 요강에 용변을 본다고 놀리는 바람에 코를 막고 공중변소를 가기 시작하면서 조막내기가 아니라며 우쭐해지기도 했다.

1959년 그 해, 추석 전 후였는지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바닷가근처에 살던 우리 동네에 사라호 태풍으로 바닷물이 넘치자 한 밤중에 인근 학교로 피난을 갔는데 삼삼오오 무리 지어 웅크리고 누워 잠을 청했지만 비바람에 창문도 덜컹거리고, 혼자서 집을 지키는 엄마생각에 잠도 오지 않아 큰오빠에게 이야기해달라고 졸라대니 변소귀신이야기를 해주었다. 옛날 어떤 아이가 밤중에 변소를 갔는데 볼일 다 보고 나니까 구멍 안에서 하얀 손이 불쑥 나와 노랑 휴지 줄까 빨간 휴지 줄까 했더니 그 아이가 그만 기절해서 영영 깨어나지 못했다는 무서운 이야기를 듣고 난 후에는 그나마 두어 번 갔던 공중변소를 다시는 가지 못하고 또 요강신세를 졌다.

그 다음해,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우리가족은 마당이 그리 넓지않은 아담한 기와집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집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대문 옆의 변소였다. 우리 가족만 사용한다는 사실에 좋아하시는 엄마는 공중변소의 더러움에 진저리가 나는지 나무로 된 변소 바닥을 엎드려 걸레로 닦고 또 닦으셨다.
비록 수세식은 아니었지만 구멍둘레가 하얀 타일로 되어있어 보기에도 깨끗했고, 몸을 숙이지 않고도 서서 뚜껑을 열 수 있게 손수 손잡이를 길게 만들어놓으셨다. 변소 창문턱에는 못을 박아 나프탈린을 망사천에 싸서 걸어놓았고, 글을 모르는 엄마는 시장 입구 다방의 휴지통에 버려져있는 주간지나 조잡한 연애소설 같은 책들을 주어다가 한 장 한 장 찢어서 네모난 나무 통에 얌전하게 놓아두면 오빠들과 나는 변소안에서 다리가 저릴 때까지 쪼그려 앉아 킥킥거리며 남녀의 연애이야기 줄거리를 읽느라 통을 홀라당 뒤적거려 놓는바람에 엄마를 귀찮게 만들곤 했지만, 그러나 그 재미도 오래가지 못했다. 명절 때 집에 내려온 큰 언니에 의해 재미있었던 그 폐지들은 사라지고 대신 재미없는 지나간 교과서로 바뀌게 되었지만 그래도 변소에서 여전이 쪼그려 앉아 셈도 풀어보고, 왜적과 용감하게 싸우던 이순신장군의 거북선이야기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곤 했다. 지금도 나프탈린 냄새는 어릴 적 우리 집 변소의 기억을 반추시키며 싸한 통증이 가슴 한쪽을 건드린다.

결혼을 해서 군인인 남편을 따라 강원도 전방에 살 적에, 첩첩산중 시골집 문간방에 세 들어 살면서 제일 곤혹스러운건 변소였다. 외양간 옆에 붙어있는 널찍한 장소는 대문 옆에 있어 뒷간도 아니고, 변소라고도 부를 수도 없는,차라리 헛간이라고 해야 맞을라나. 몸을 조금만 앞으로 기울면 안이 희미하게 들여다 보이는데다가 볏단도 재여 있고, 농기구들이 놓여있어 밤에는 누군가 불쑥 들어와 괭이로 후려칠 것만 같고, 낮에는 발 밑으로 쥐가 휙 지나가기도 해서 엄마야 하고 소리를 지르면 주인집 늙은 총각의 무슨일이라우? 하며 신 끄는소리에 소스라쳐서 얼른 일어나 버리고, 나무로 얼기설기 막아놓은 옆에는 소가 있어 사람이 들어가면 '엄~메' 하며 길게 우는 바람에 너무 놀라 바지춤을 내리다말고 후다닥 뛰어 나오고 만다.남편이 집에 있을때는 밖에 세워놓고 며칠에 한번씩이라도 볼 일을 볼수있지만, GOP로 일주일씩 훈련을 나가 들어오지않으면 그야말로 난감하기 짝이 없다.

궁리끝에 할 수없이 장터에서 요강을 사다가 부엌구석에 놓아두고 소변은 보지만 큰일보는 것이 나에게는 큰일(?)이었다. 머리를 굴려 집 근처 작은 구멍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가게 뒤로 돌아가서 문이 제대로 달린 뒷간에서 볼일을 보곤 했지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염치가 없어 그 방법도 오래 써먹지를 못하여 변을 보지않으려고 밥을 굶다시피 하니 목이 쑥 빠질 정도로 여위어가고, 변비에 걸려 너무 힘들어 하는 마누라를 보다 못해 대대장님께 말씀을 드려 새로 부임해 오는 소령 참모가 들어갈 사택에 대위인 우리가 양해를 구하여 이사를 가게 되는 파렴치를 범하게 되었다.

제대를 하고 서울로 이사를 나오면서 아파트에 정착하였는데, 아마 화장실때문에 아파트를 고집하였는지도 모르겠다. 자라면서 엄마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지금도 우리 집 화장실은 신발을 벗고 들어 갈 만큼 깨끗하다. 마루는 며칠씩 청소를 하지 않아도 화장실바닥은 매일 수세미에 세제를 묻혀 샤워기로 깨끗이 씻어내고 거울도, 수도꼭지도 반들반들하게 광택이 나도록 닦아놓는다.

지금은 아이들이 객지에 있으니 현관옆에 있는 화장실은 남편만 사용하고, 안방에 붙어있는 욕실은 나의 전용 化粧실이자 독서실이다. 안방에 따로 화장대가 없어 욕실에 화장품을 놓아두고 화장을 하기도 하고, 또 시집이나 소설, 주간, 월간지 책들을 몇 권정도 꽂아두고 변기에 앉아 엉덩이가 아플때 까지 앉아서 책을 읽고 나온다. 책을 손에 들고 화장실로 들어가면 남편은 '또 몇 시간이나 있을려고..' 하면서도 이제는 아예 포기하는 눈치다. 술 먹고 늦게 귀가한 남편과 다투다가 한마디만 더하게되어 큰 싸움으로 이어질 것 같으면 슬그머니 화장실로 피해 들어가 변기 뚜껑위에 앉아 책을 읽으면서 바깥동정을 살핀다. 기다리다 지친 남편은 화장실에서 나오지 말고 평생 살아라 살아 잠꼬대처럼 웅얼거리다가 코를 골기 시작하면 달아난 잠을 다시 잡을 때까지 책을 넘기다가 잠자리로 들어간다. 이상하게 변기에 앉아 책을 보면 집중이 잘된다. 다리가 저리면 볼일을 다 보고도 다시 변기 뚜껑을 닫고 그 위에 가부좌를 틀고 읽던 책을 마저 보고 일어 날 정도니 내가 생각해도 좀 심하다싶다. 그래도 어쨋거나 화장실은 우리 집에 평화를 찾게 해주는 요긴한 장소이면서
아릿한 유년기의 변소처럼 은밀한 장소로서 나의 안식처(?)가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도 몇 년전부터 지자체를 실시하고 난 뒤부터 각 지방마다 그 지역의 이미지를 깨끗하게 심어주기위해서 유원지나 공공장소, 심지어 시골 장터의 화장실도 깨끗해 진걸 볼 수있다. 카페인지, 화장실 건물인지 구분이 가지않아 입구에 서서 머뭇거릴정도로 고풍스럽게 예쁘게 꾸며 놓은 곳도 있으니 이제 우리나라의 화장실수준도 세계 어디에 내 놓아도 뒤지지않을 정도니 정말 기분 좋은 일이다. 고속도로 휴게실의 화장실안에도 예쁜 그림 밑에 쓰여진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자리도 아름답습니다'라는 문구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만들기도 하고 일을 보고 난 뒤 혹시 더럽혀졌나 다시 뒤를 돌아보게 만드는 예쁜 발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