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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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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추


BY 캐슬 2003-11-21

 

 

 


                             비 오는 날


 장마가 제값을 하느라 온 나라가 연일 수중전이다.

비가 오니 부추 전 구워 먹자고 한참 전부터 조르는 남편을 못 본 척 하다가 지쳤다. 부추를 다듬느라 거실에 신문지를 펴놓았다. 빨리 먹고 싶으면 거들어야하지 라며 슬며시 다가앉는 남편이 귀엽다.  말없이 서로 앉아 있는데 남편이 마당과 신문지 위의 부추를 번갈아 바라본다.

‘이 부추는 통통한데 우리 마당의 부추는 왜 저리 가늘지’라며 고개를 갸웃한다. 부추는 잘라먹을수록 가늘어진다는 사실을 모르는 남편에게 잘난 척 설명을 해 주니 ‘아 그렇구나!’라며 대단한 사실이라는 듯 신기해한다.

비가 오면 막걸리 한 잔하고 부추 전을 먹어야 한제 격이라는 남편에게 먹은 다음에는  꼭 안고 자는 게 최고여! 로 맞장구를 쳤다. 남편은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라고 흐흐흐 하며  웃는다. 

 되직한 부추전의 반죽을 몇 번이나 들여다보며 묽기를 재 보다가 이만하면 되었다싶어 프라이팬 위에 한 국자 얹었다. 가장자리부터 맛있는 소리를 내면서 노랗게 부추전이 익는다.

‘맛있겠다.’며 군침을 흘리는 등 뒤로 벌써 막걸리 잔과 젓가락을 챙기는 남편과 딸이 분주하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부추 전 접시를 들고 거실에 마주 앉은 남편과 딸은 서로 엄지를 치켜세우며 '이 맛이야'라며 좋아죽겠다는 표정이다.

 부추의 비늘줄기는 밑에 짧은 뿌리줄기가 있고 겉에 검은 노란색의 섬유가 있다. 잎은 녹색으로 줄 모양으로 길고 좁으며 연약하다. 잎 사이에서 길이 30~40cm 되는 꽃줄기가 자라서 끝에 큰 산형(山形)꽃차례를 이룬다. 꽃은 7∼8월에 피고 흰색이며 지름 6∼7mm이다. 부추의 이름으로는 지방마다 부르는 사투리가 다른데 전라도에서는 솔로 불리고, 충청도에서는 부추, 충남과 전북에서는 부초, 강원도에서는 분초, 경상도에서는 정구지라고 불리는데 어차피 사투리이니 표기를 따지는 게 의미가 없겠지만 옛 어른들의 발음은 전구지라고 부르는 게 맞다.

 며칠 전 철 지난 부추씨앗을 화분위에 가볍게 뿌려 두었다. '싹이 날까?' 하는 의심과 싹이 올라와 주길 바라면서 말이다. 조금 전 화분 위를 가만히 살펴보니 여리고 가느다란 새싹이 무거운 흙을 헤집고 올라오고  있었다. 고마운 마음에 아기 다루듯 손끝으로 가만히 쓸어 보았다. 생명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다. 강하든 약하든 여리든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은 소중하고 신비롭다. 이 비가 멈추면 따뜻한 거실로 옮겨 줄까하다가 그리하면 혹여 갑자기 변한 온도에 적응 못해  또 죽어 버릴까 걱정이 앞선다.

 늘 꽃을 제대로 키우지 못하는 사람이 나다. 친정 엄마가 예쁘게 키우시던 꽃이 하도 예뻐 떼를 쓰듯 해서 한 두 포기 얻어오면 얼마가지 않아 키우던 꽃들은 시름시름 죽어버리곤 했다. '엄마 내가 가져온 꽃들이 죽었는데 엄마 집에 있는 꽃들은 어때요'라고 전화를 넣어 물으면' 왜 그럴까? 우리 집엔 잘 크고 있는데' 하시며 이상하다고 하셨다.

 친정 집 집수리를 하느라 엄마가 우리 집에 묵게 되셨다. 아침이면 화분을 들고 햇빛이 있는 곳으로 옮기고 저녁이면  춥다고 들이고 이튿날 다시 화분을 내놓는다하며 부산을 떠는  딸을 보시던 엄마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나무라신다.

'얘야 네가 꽃을 못 키우는 이유를 내가 알아냈다. 꽃이던 뭐든 한 곳에 가만히 두고 적응을 하도록 해야지 이리저리 끌고 다니니 어디 살 수가 있겠냐. 한 곳에 적응할만하면 옮겨대니….원.  그럼 못쓴다. 사람도 꽃도 다 환경에 적응하는 능력이 있으니 옮기지 말고 그 자리에 가만히 두거라. 너라도 이리저리 매일 환경을 달리해서 끌고 다니면 살 수 있겠냐? ' 부연해서 한마디 더 하신다.

'옛날부터 화초는 게으른 여자가 잘 키운다.'는 말이 있단다.

그랬다. 원인은 저에게 있었다. 지나친 관심은 꽃들에게 스트레스를 주어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게 만들었고 결국은 죽게 만들었던 것이다. 무관심도 때로는 필요하다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 참 많은 화초들을 잃었습니다.  요즘 우리 집 꽂 들도 비교적 튼실하고 예쁘게 잘 자라고 있다. 때때로 우리 집을 찾는 이웃들이 '어머 꽃이 참 이쁘네요.' 하면 나는 당연하다는 듯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오늘 여린 새싹을 틔우기 시작한 부추에게도 한발자국 뒤로 물러서서  바라볼 것이다. 비는 여전히 내리고 부추 전 접시가 비었다. 초작! 초작! 내리는 빗소리를 응원가 삼아서 부추 전을 맛있게 구우러 가야겠다. 


 

 

 

 

 

 

 

 

 

 

 

 

 

 

 

 

 

캐슬 [2003-11-09,19:54]
  선녀님.밥푸는여자님. 안녕하세요 처음 인사드리네요 화초에 물주는법 하나 알려드립니다 엄마가 가르쳐주신 방법입니다 화분위에 흙이 뽀송하게 말랐다 싶을땐 넓은 대야에 물을 가득 담습니다. 화분을 통째로 담구는 겁니다. 하룻밤 지난후에 보면 물이 많이 줄게 돼지요. 꽃들은 행복하도록 통통해지구요 한번 해 보세요 알고 계시는걸 제가 말씀드린건 아닌지... 행복하세요
선녀 [2003-11-09,11:21]
  전 게으른데도 화초를 다 말라 죽입니다. 왜일까요? 아마도 지독한 게으름에 화초들이 눈물 머금은 짝사랑만 하다가 죽었을지도... 전 키우는게 늘 서툽니다. 자식도 그렇고... 첫 걸음 잘 이끌며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밥푸는여자 [2003-11-09,05:23]
  오래동안 집을 비우며 가장 염려가 되는 일은 화초였습니다. 그러면서 생각했지요 물이 부족해 배가 고파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관심과 배려가 없어 외로워 죽어가는 거 아닐까하는..돌아와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물을 주었는데 밤 사이 축 ~ 처져있던 잎들이 새롭게 일어나 생기가 도네요..한발자욱 뒤로 물러서서 바라보는 님의 마음..자식에게도 그리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합니다. 감사히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