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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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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시간


BY 다정 2003-09-13

새벽 시간

  사방의 침묵 속에 홀로 깨어있는 시간은 늘 경건함과 함께 자신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가지게 해준다. 조용히 무릎꿇고 두 손을 모으면 마음을 무겁게 했던 일상의 곤고함이 깃털처럼 가벼워지고 감사의 하루가 될 것 같은 충만감이 인다.
  베란다 창가에 다가서서 새벽하늘을 바라보면 외로워서 더 밝은 빛을 내는 새벽별이 그리움으로 다가오고, 가로등 불빛 아래 새벽기도를 가는 여인의 발걸음이 아득한 날로 나를 이끈다.
  멀리서 나의 이름을 부르며 다가오는 얼굴! 살아가면서 지칠 때마다 보이지 않는 사랑의 힘으로 용기를 주는 가장 따뜻한 이름으로 불러보는 얼굴이다. 
  아! 할머니!!
 가벼운 탄성처럼 터져 나오는 소리, 울컥 치미는 그리움에 목이 메이고 눈가가 젖어온다.
 하얀 모시한복의 고운 자태로 사뿐사뿐 날 듯이 걸어가는 뒷모습…… 그 곁에는 단발머리 계집아이가 종종걸음으로 따라가며 종알거렸지.
  "하늘에 떠있는 별은 가족이 없나? 혼자서 너무 외로워 보여. 내가 새벽마다 친     구가 되어줄까? 어쩜 저리 반짝거릴까?"
  "사람이 착하게 살다 죽으면 하늘의 별이 된단다."
  "할머니도 죽으면 별이 되겠네."
  "할머니 죽으면 나도 죽을 꺼야. 그래서 할머니랑 함께 별이 될 거야."
  "할미가 먼저 죽으면 저기 보이는 별이 되어 너를 지켜 줄 거다. 아무도 너를 못    살게 굴지 못하게 말이다."
  어린 시절, 할머니 따라 새벽기도를 갈 적마다 나누던 이야기의 한 대목이다. 새벽 별을 바라볼 때마다 한 편의 동화가 되어 마음을 촉촉이 적시곤 한다. 그때마다 그 시절의 선한 아이가 되어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본다. 
   "댕 댕 댕 댕" 둔탁한 소리로 새벽 4시만 되면 늘 잠을 깨우던 괘종시계와 함께 새벽을 열던 할머니의 첫 일과는 나를 위해 기도하는 일이었다. 60와트 전등 빛이 눈부셔 두 손으로 가리면 언제나 내 머리맡에 무릎꿇고 앉은 채 간절히 기도하시던 모습…… 전깃불이 들어오지 않는 날이면 촛불을 켜두고 기도를 하셨는데  불빛에 너울거리는 그림자가 천사의 날개처럼 여겨져 평온한 마음으로 다시 잠이 들곤 했다. 예배당 종소리와 함께 아스라이 사라지던 할머니의 발자국 소리의 여운은 그 순간 기다림으로 변하고 마중 나가던 길가의 풀잎에 맺혀있던 영롱한 이슬은 새벽이 아니고서는 되살려지지 않는 소중한 추억의 재산이다.
  할머니의 기도를 떠올릴 때마다 스스로에게 반문할 때가 있다.
  '누군가를 위하여 오랜 기간을 기도해 본적이 있는가? 아니면 한결같은 마음으로    진실 되게 기도를 한 적이 있는가?'   
  한 순간의 진실 된 기도는 있었을망정 나의 할머니의 기도에는 조금도 미치지 못함을 안다. 그러나 그 기도의 힘으로 나의 삶의 여정이 큰 굴곡 없이 이제까지 순탄하게 지나왔음을 깨닫는다.
  늘 무거운 추를 흔들며 시간을 알려주던 시계가 걸려있던 마루는 가끔씩 낯선 이들의 잠자리였다. 처마 끝에 고드름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거나 함박눈이 소복히 쌓인 날 새벽이면 어김없이 이름도 성도 모르는 사람들의 하룻밤 안식처의 장소로 제공되었다. 그 사람들은 대부분 새벽기도를 다녀오다가 만난 길가에 쪼그린 채 오들오들 떨고있는 걸인들이었다. 한겨울이면 하루가 멀다하고 이방인들을 데리고 와서는 재우고 아침밥을 먹여보내는 일이 다반사였다. 사선을 넘어 북에서 피난 온 할머니는 늘 나눔과 베품의 삶을 실천하고 사셨다. 나에게 지금 그렇게 하라고 한다면 한번이라도 할 수 있을까? 할 수 없다는 사실과 함께 서글픔이 인다. 지금은 빛 바랜 꿈으로 사라졌지만 오랜 시간 나의 희망은 고아원 보모였다. 아마 어린 시절 새벽을 함께 한 사람들에 대한 할머니의 사랑이 자연스레 나의 꿈으로 심어졌으리라.
  아침, 저녁 식사시간이면 대문 앞에서 "밥 한 술 줍슈"하고 깡통을 들고 문전걸식하는 거지들이 찾아오던 기억 속의 일이다. 어느 날, 밥 한 술 얻기 위해  찾아온 어린 거지아이가 있었다. 아마도 국민학교 고학년 나이쯤 되지 않았을까 싶은 나이의 남자아이였다. 눈병이 나서 제대로 눈을 뜨지 못하는 것을 본 나의 할머니는 눈에 삼이 썼으니 낫게 해주어야 한다고 삼일동안 경건한 의식을 행하는 거였다. 놋그릇인지 양은그릇인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그릇 속에 정화수 같은 물과 정성껏 골라낸 팥알을 담구어 놓는 것으로 미신 같은 의식이 시작되었다. 몸을 깨끗이 씻고 옷을 정갈하게 차려입은 할머니는 그 아이를 해가 뜨는 동쪽하늘을 바라보게 하였다. 그런 다음 팥을 건져 그 아이의 눈에 대고 한참동안 문질렀다. 눈을 문지를 때마다 주문 같은 소리를 반복하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책 속에 나오는 요술할멈 같아 괜히 싫기도 하였다. 어쨌든 삼일간의 그 일이 끝난 후 눈병이 나았다고 한다. 아마도 정성의 힘으로 나았으리라.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동터 오는 아침이면 영화의 한 장면처럼 내 기억에 각인되어 잊고 지냈던 '측은지심'을 되살린다.
  그동안 나는 어떻게 살아왔나? 불혹의 나이도 지났건만 갈등에 빠지고 번민하며 얼마나 많은 불면의 날을 보냈던가! 오로지 나의 기준에서 남을 이해하고 사랑하려고 한 것은 아닌지?  열심히 살았다고 자위하면서도 더 많은 것을 기대하고 욕심은 부리지 않았는지…… 부끄러움으로 자신을 뒤돌아본다.
 사랑은 한결같은 마음으로 빌고 또 빌어주는 마음이라는 걸 또한 아낌없이 베푸는 희생에서 나오는 것임을 새삼스레 느끼며 감사와 정성으로 첫 시간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