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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희망의 집


BY 다정 2003-08-29

아름다운 희망의 집
                                                         홍영숙
  인생에 있어 기쁨보다는 고통과 고달픔이 더 많은 게 우리의 삶이다. 그러나 순간의 기쁨이나 좀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희망과 꿈이 있기에 그 어려움도 견디며 사는 게 아닐까! 
  작년 가을학기부터 올 한 학기까지 매주 즐거움으로 찾아간 곳이 있다. 성동구 왕십리에 위치한 '성동외국인 근로자 센터'이다. 국적과 나이와 성별을 불문하고 누구든지 와서 배우고 쉬어 가는 곳, 외국인 근로자들이 '우리들의 천국'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고향을 떠나 부모형제, 사랑하는 가족들과 헤어져 먼 이국 땅에서 외로움과 힘든 생활을 하는 이들을 따뜻하게 품어주는 둥지이다.
  나는 이 곳을 '아름다운 희망의 집'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내 마음의 꽃밭에는 모두가 한 송이 꽃이 되어 소박하게 피어있다. 어울려 조화를 이루는 평창 우리 집 둔덕에 무리 지어 피어난 하얀 냉이 꽃이나 망초 꽃처럼, 때로는 낮은 사랑이 가장 깊고 순수한 사랑임을 깨닫기도 하면서…… 항상 나눔 속에서 베품을 실천하는 네 분의 식구들과 자원봉사 선생님들의 마음들이 울타리가 되어 사랑이라는 향기를 은은히 풍긴다. 활짝 열려있는 문을 들어서면 찾아오는 모든 이에게 늘 넉넉한 웃음으로 반갑게 맞아주는 이춘섭 관장님의 낯익은 한복이 눈에 뛴다. 이내
  "홍선생님, 오셨어요."
  라며 상큼한 미소로 반색하는 경쾌한 목소리의 주인공은 김혜원 선생님이다. 재치와 미소로 분위기를 부드럽게 하는 이은하 선생님의 비바체의 손놀림과 어려움을 해결해주는 선  선생님의 모습이 조화를 이룬다. 여기저기서
  "안녕하세요."
  라는 인사가 반갑게 들리고 모처럼 만난 자국 학생들은 서넛, 너 댓 명씩 모여 이야기꽃을 피우느라 여념이 없다. 국경, 나이 성별을 초월한 인류애가 결코 크지 않은 이 공간에서 이루어지고 있음을 느낀다.
  하루에 약 백 이십 여명의 사람들이 드나드는데 가장 이색적인 풍경은 수업장면이다. 어느 반 할 것 없이 너무나 진지하게 수업에 임하는 학생들의 모습에 열기가 넘친다. 우리 반이라고 예외이랴!
  "안녕하세요. 일 주일동안 잘 지내셨어요."
  "녜. 선생님"
  "힘들었어요."
  "피곤해요."
  "그래도 괜찮아요."
  "한국말 배우면 재미있어요."

 

  한 주 동안 하루에 열시간 가까이 근무한 탓인지 얼굴에는 피곤한 기색들이 역력하다. 하지만 목소리와 표정들은 밝고 활기가 넘친다.
  "먼저 출석을 부를게요."
  "아데씨, 인드라씨, 마디씨"
  등 끝까지 부르고 나면 여기저기서
  "지금 일해요."
  "친구 결혼식 갔어요."
  절반 이상이면 출석률이 높은 편이다.
  '얼마나 힘들고 쉬고 싶을까! 전화라도 해봐야겠다.'
  힘들고 쉬고 싶은 걸 무릅쓰고 배우겠다고 와서는 열심히 따라 읽고 듣는 모습들이 안쓰러움과 함께  희망으로 가득 차 있음을 느끼게 한다.
  "만약에 로또 복권이 당첨이 된다면 어떻게 하실 건가요?"
  "지금 베트남으로 가서 가족들을 만나겠어요."
  "고향에 가서 결혼을 하겠어요."
  "베트남에 돌아가서 대학공부를 하고 싶어요."
  "태국에 가서 부자로 잘 살고 싶어요."
  짧게는 이년에서 길게는 칠 년이 넘도록 부모형제들을 보지 못하고 돈을 벌어 가겠다고 '코리아 드림'을 꿈꾸고 온 이들이다. 아직 미혼인 학생들도 있지만 부인과 아들을 두고 온 이, 어린 딸을 두고 와서 밤마다 잠을 못 이루는 이, 사연들도 구구절절 하지만 마음을 쉽게 열지 않아 그들의 아픔을 다 헤아릴 수는 없다. 그러나 돈을 벌어 가족들의 생계와 형제들의 학비로 보낸다는 사실에는 너나 할 것 없이 공통적인 사연들이다. 대학을 나와서도 일자리가 없어 독일 광부와 간호사로 그리고 중동으로 떠났던 우리네 지난 역사를 보는 듯하다. 그리고 점점 잃어 가는 '효'와 '우애' '희생' '가족 애'를 잔잔한 감동으로 느끼게도 한다. 
  "선생님, 엄마 보고싶어요."
  "선생님. 애인 보고싶어요."
  지난 유월 인도네시아로 돌아간 아데씨는 애인과 결혼식도 올리고 보고싶은 엄마도 만났지만 이제는
  "선생님, 보고싶어요. 인도네시아 언제 오세요. 한국에 다시 갈 거예요."
  라고 국제전화를 걸어왔다. 선생님이 보고 싶어서 편지를 정성스럽게 썼다는 판광 허이씨, 일주일마다 '수고하셨어요'라고 음악메일을 보내주고 베트남 막국수와 만두로 두 번이나 대접해 준 원 탐담씨와 누나, 그리고 쉬는 시간이면 차를 들고 와 대접하던 우리 반 학생들의 그 소박하고 순수한 마음은 잊을 수가 없다.

 


  '제부도'와 '남한산성'의 사랑방모임, 송별식을 겸한 노래방에서의 열창들, 문화탐방, 한마음 체육대회 등 모든 게 잊지 못할 추억들이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언제나 내 마음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말들과 함께 그들에게 희망을 심어주는 집이 '성동외국인 근로자센타'이다. 언제든 그리우면 다시 가리라 생각하며 아쉬운 이별과 함께 추억에 잠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