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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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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를 가져다준 주인할머니의 작은 친절


BY 철걸 2003-09-15

올해 다섯살된 딸아이가 "축농증" 이란 고약한 병(?)에 걸려

병원에 다닌지 벌써 달포째 접어들고 있었다.

다섯살된 딸아이와 세살된 아들녀석을 양손에 잡고

집에서 다소 떨어진 시내병원(이비인후과)에

다니는 일이 여간 번거로운게 아니었다.

아스팔트위에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한여름날 오후의

더위는 나를 더욱더 지치게 하였다.

-딸아이는 학원에 다니고 있었으므로 항상 오후3시쯤

                                                      병원에 갔었다.-

그날은 야근을 하고 퇴근한 남편이 아들녀석을 봐주겠다며

한사코 딸아이만 데리고 병원에 다녀 오라는 거였다.

내심 미덥잖았지만 모처럼 "양산"으로 내려쬐는 태양을

가리고 병원에 다녀오게 생겼구나 싶은 생각에

딸아이 손목을 잡고 대문을 나섰다.

홀가분해진 기분으로 병원과 시장에 들러 부랴부랴

집에 와보니 아들녀석이 보이질 않았다.

아들녀석을 끝까지 책임 지겠다던 남편은 꿈속에서

첫사랑 이라도 만나는지 커다란 반달 쿳션을 꼭 끌어안고

(나중에 들은 변명으론 쿳션이 아들녀석 인줄 알았다함)

코까지 곯며 자는데 열중 하고 있었다.

딸아이 손목만을 잡고 집을 나섰던 순간의 후회와

남편의 배신(?)에 목이 터져라 아들녀석의 이름을 외치며

큰길,골목길,슈퍼,동네놀이터, 심지어 화장실,

옥상, 장농안까지 다 찾아 보았지만,아들녀석의 모습은

그어디에서도 찾을수가 없었다.

방송매체로만 접했던  유괴(?)라는 생각이 들자 온몸이 떨리며

두눈에선 소리없이 눈물만이 흘러내렸다.

죄없는 친.인척과 주위사람들을 한명한명 떠올려 보았지만

그들에게 어떤 경위로든 나와 남편은 결코 해를

끼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은 아무것도 모르고 잘자다가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파자마 차림으로(속이 비치지는 않음) 골목골목을

누비는  父情을 발휘하기도 했다.

딸아이는 제동생의 존재가 보이지 않는다는 두려움 때문인지

슬픔인지 모를 눈물을 흘리며 제동생의 이름을 간혹  불러가며

제아빠의 뒷꽁무니를 부지런히 쫒아 다녔다.

그렇게 우왕좌왕하며 공포의 시간이 정확히 1시간40분이 흐른뒤

(아들녀석이 낯모르는 사람은 전혀 따라가지 않는다는

생각에 다소 안심을 하여서 파출소나,동사무소에는

         신고는 하지 않고 있었다.)

이층 모퉁이에 서서 골목어귀를 바라보면서 한참을 울고  서있는데

눈물뒤로 골목입구에 주인집 할머니와 아들녀석의 모습이

정말 거짓말 처럼 나타나는 것이었다.

나는 무종교인으로 하느님을 찾을 자격도 없었지만

내입에선 나도 모르게 "오! 하느님 감사합니다"란 말이 새어

나왔다.어떻게 이층에서 뛰어 내려 왔는지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아들녀석은 제누나의 커다란 초록색 운동화를 신고 서서

"엄마" 하면서 아무일 없었다는듯 그냥 바라보기만 하였다.

나쁜녀석! 엄마의 속을 이리도 끓이다니...

주인 할머니 께선 "걱정 했드나? 아가마 하도 울길래 방문 열어봤더니

아 아바이는 마 세상 모르고 자제..마 우짜노.. 내다리 아파서 침맞으러 가는데

같이 데려가지 않았나? "  하시면서 많이 놀랬더냐는 표정을 지으셨다.

내가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아유! 할머니 그래도 쪽지라도 써놓고 가시지 그러셨어요?"

하면서 속상해 하자 "내가마 글을 아나?" 하시며 웃기만 하셨다.

아들녀석을 끌어 안으며 할머니의 작은 친절에 과연 고마워 해야 할지

잠시 망설여지던 순간 이기도 했다.

아직까지도 딸아이는 병원문을 벗어나진 못했지만 아들녀석을

결코 남의손에 맡기고 다니는 일은  결코 없을것이다.

심지어 그사람이 남편일 지라도....후훗 

 

 

 

****  MEMO  ****

이글 역시도 지역 "주부 백일장"에 나가서 장원에 뽑혔던글입니다.

제글은 항상 우리가족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요..

벌써 십여년전 이야기인데  다시 읽어보니 감회가 새롭고

아! 우리가족에게 이런일이 있었구나 하고 지난 시간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하는것 같습니다.

딸아이는(중2년) 여름방학 하자마자 코감기 때문에 "이비인후과"에

며칠 다녔는데 천성적으로 코가 약하다네요.

그리고 그때 주인집 할머니 무릎이 많이 편찮으셨는데

어떻게 지금까지 건강하게 잘지내시고 계시는지 궁금해집니다.

저번에 그집앞으로 마침 지나올일이 있어서  잠깐 들렸더니

주인이 젊은 부부로 바뀌었더군요..

계셨으면 인사도 드리고 참 좋았을것을...

이사한곳을 새주인이 모르신다고 해서 그냥 돌아왔습니다. 

"주부 백일장" 주제는 "친절" 이었습니다.

< 2003-08-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