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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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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성시대


BY 솜틀집 2003-07-30

개성시대는 미장원 이름이다.

 

#1

이 미장원 앞을 지나갈 때면 어김 없이 내 눈은 미장원 안의 거울이며 거울 앞의 의자 파마할 때 쓰이는 도구들 그리고 큰 바구니에 가득 꽂혀 있는 부러쉬들을 들여다 본다. 그리고 가게 안에 손님이 있나 없나를 꼭 확인하게 된다. 주인 아주머니가 하품을 하며 TV를 시청할 때도 있고 할머니들이 두어 분 앉아서 음식을 드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도 가끔 눈에 띈다. 하지만 아직까지-어쩌면 내가 지나가는 시간에는-젊은 아가씨가 앉아서 파마를 하거나 기다리는 모습을 본적이 없다.

 

#2

서랍에 분명히 두었는데......

이상하다. 다시 써서 붙여야 겠다.

'오늘은 2시 이후에 영업을 하지 않습니다.'

쓰고 나니 글씨가 조금 삐뚤어진 느낌이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 조금 전 할머니 손님의 수다를 다 받아주는 것이 아닌데...... 부랴부랴 미장원 안의 머리카락을 쓸고 파마할 때 입는 가운을 제 자리에 걸고 파마약이 묻어 있는 파마용품들을 바구니에 담아 한 쪽으로 미루어 둔다. 5평 남짓한 미장원의 반은 칸막이로 나누어서 방으로 꾸미고 나머지 반쪽에 거울을 두 개 걸고 의자를 두 개 놓고 거울 맞은 편에 손님용 쇼파를 놓고 그 사이에 2인용 식탁을 놓았다. 꽉 찰 것만 같던 가게가 생각보다 넉넉하다. 집주인 여자가 한 말이 맞긴 맞나보다. 5평은 넘을 거라고 했던 말이 말이다. 아무튼 중고 에어콘 덕분에 삼복 더위도 별로 덥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니 다 하나님의 덕이려니 생각한다.

오후 2시 30분부터 시작하는 여름성경학교에 가서 아이들을 가르치려면 무척 서둘러야 한다. 할머니 손님들은 미장원에 머리를 하러 오는 것인지 이야기를 하러 오는 것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 그렇다고 이야기 상대를 안 해드릴 수도 없고 파마 값을 더 받을 수도 없고, 더 받기는 덜 받아야 하는 것이 할머니들의 파마가 아닌가. 천 원이라도 더 받는 날에는 금새 동네 할머니들이 한 분도 오시지 않으니......

봉사려니 해야지. 내가 지금까지 버티어 온 것은 다 하나님 때문이지. 할머니 손님들이 다 친정 어머니려니 해야지. 암 그래야지.

 

#3

'중화요리의 참 맛!    중  국  성'

거울을 들여다보면 보이는 글자다. 중화요리의 참 맛이라. 큰 아이는 중국성에서 자장면을 시키면 안 먹는다. 면이 질기다고 꼭 딱딱한 껌 씹는 기분이 든다고 말이다.

중국성 주인은 10년 만에 아이를 낳았다고 한다. 오토바이 앞에 아이를 앉히고 부릉부릉 거리며 골목길을 왔다갔다 한다. 자식이란 애물이다. 부모 눈에 콩깍지를 씌우기 일쑤이니.

계란처럼 생긴 거울을 들여다 본다. 그 속에서 나는 또 다른 세상을 본다.

작은 가게이고 큰 길에서 멀리 있는 가게이다 보니 장사가 안 된다고 가게 주인들이 자주 바뀌었다. 고민 끝에 미장원을 들이기로 했다. 내 생각이 맞았다. 근 3년 째 미장원은 그대로 있다. 주인은 한 번 밖에 바뀌지 않았다.

분홍색 가운을 입고 미장원 의자에 앉아서 나는 거울을 통해 골목을 본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미장원 앞을 그냥 못 지나친다. 다들 한 번씩 들여다 본다. 유리문을 통해 자신의 옷 맵시를 보는 사람, 혹시 아는 사람이라도 있나하고 가까이 와서 들여다 보는 사람 ......

배달하는 오토바이들이 지나간다. 택배차량도 지나간다. 자동차들도 지나간다.

학생들이 희희닥 거리며 지나간다. 아이들 손에는 얼음과자가 들려있다.

"머리 다 말았는데 아이스 커피 타 줄까?"

"아니요, 올라갔다가 올께요"

"그럴래"

"예"

나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다. 이 미장원을 이용할 뿐.

스카프로 구름같이 말아 올린 머리를 감싸고 미장원 뒷문으로 나오면서 생각했다.

개성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