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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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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딸기


BY 빨강머리앤 2004-12-11

손님이 딸기를 사오셨더랬습니다. 겨울에 보는 싱싱하고 붉은 딸기가 한편으로 신기하기도 하고 한편으로 못 미더운 마음도 드는게 사실입니다. 나 어릴때, 그러니까 불과 몇십년 전만 해도 겨울에 오이며 상추며를 먹는다는 상상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었지요.. 또한 겨울에 싱싱한 딸기를 먹을수 있다는 것도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습니다.

그것은 이야기에 나오는 정말 '이야기'인줄만 알고 살았던 세월이 그리 오래지 않은 과거에 있었습니다. 그 이야기 인즉, 그렇습니다. 한 효자가 있고 그에겐 늙고 병든 홀어머니가 있습니다. 배경은 찬바람 씽씽불고 천지 사방에 눈이 쌓인 한겨울입니다. 시름시름 죽을것 같이 앓던 어머니가 아들에게 지나가는 투로 말을 합니다.' 딸기를 먹고 싶구나. 그 딸기를 먹으면 꼭 거짓말 처럼 병이 나을것만 같아' 라구요... 한겨울이고 온 천지는 동토(冬土)의 땅에 살아있는 것들이 있기나 할까 싶은 엄동설한에 죽어가는 어머니는 뜬금없는 딸기를 찾습니다.

너무도 착한 아들, 그러니까 효자겠지요?  이 효자는 엄동설한의 겨울들판과 산을 헤치며 어머니가 그토록이나 먹고 싶다던 딸기를 찾아 헤매다닙니다. 몇날 며칠을 딸기를 찾아 헤매다 결국엔 기진맥진 해서 쓰러지지요.. 그때 꿈속에선지 생시인지 홀연히 하얀수염의 하얀옷을 입은 할아버지가 나타 납니다. 산신령 입니다. '효자야, 일어나 이 딸기를 가지고 어머니께 먹이거라' 신의 계시와 같은 목소리에 효자가 깨어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할아버지는 사라지고 대신 딸기만 놓여있었겠지요.

                                        

딸기를 보고 갑자기 힘을 얻은 효자는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와 어머니게 딸기를 먹입니다. 딸기가 만병통치약도 아닐텐데 어머니는 아들이 구해온 귀한 딸기를 먹고 씻은듯 병이 낫는다는 이야기... 이 이야기의 핵심은 딸기가 아니라 아들의 지극정성한 효성이라는 걸 집어내는 학생은 주제파악을 아주 잘하는 학생이 되었겠지요..

겨울에도 심심찮게 구경하게 되는 딸기를 먹으며 갑자기 옛날 이야기 한소절 떠올려 보았습니다. 이렇게 하우스 재배가 발달하고 유전자조작이 간단하게 이루어 지는 시대에 효자가 살았더라면 아마도 아주 쉽게 딸기를 구해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릴수 있었겠지요. 하지만 이야기 속의 딸기와 오늘날의 이 딸기는 결코 같을순 없을 겁니다.

그것은 정성이 깃들었느냐 아니냐의 차이입니다. 참과 거짓의 차이이기도 할것입니다. 정성이 깃들이지 않은 오늘날의 딸기를 먹고도 죽어가는 어머니는 살아날수가 있을지 의심스럽습니다. 결코 이야기와 같은 행복한 결말로 이어지진 않을 거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오늘날에는 불행인지 다행인지 한겨울에도 싱싱한 야채며 과일이 풍성합니다. '제철과일', 혹은 '제철야채'라는 말이 머지않은 미래엔 쓸모없는 말로 전락해 버리는건 아닐지 걱정스럽기도 합니다.  중학교때 가정시간에 배웠던 내용 가운데 유독 생각이 나는 부분이 그것입니다.'제철음식을 먹어야 건강에 좋다' 라는....제철음식이 가져다 주는 순기능들을 새삼스럽게 오늘날 되새겨 보아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단순히 건강차원을 넘어서 환경을 생각하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제철음식은 밀접한 연관성을 지닙니다. 크게 보면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지 말고 순행하라는 의미도 거기에 담겨 있겠습니다. 딸기는 봄에 먹어야 시큼하고 달콤하고 영양도 좋습니다.  빛깔도 좋고 싱싱해서 먹음직스러운 겨울딸기엔 깊은 맛이 빠져 있었습니다. 달콤한것 같으나 그 달콤함도 싱거운듯 하고 결정적으로 딸기 특유의 향이 하나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인공으로 햇살을 투여해서 인공적으로 ?에 영양분을 투여해서 인공적으로 열매만 비대하게 자라게 한 오늘날의 먹거리들이 갖는 공통적인 싱거운맛들... 그것들은 한결같이 오래전 내식구 먹을 거리를 가꾸기 위해 농약도 덜치고 비료보다는 퇴비를 사용하고 곡식 하나 하나에 정성을 기울여 키운 먹거리들이 주는 깊은 맛을 결코 흉내내진 못할 것입니다.

그래도 한겨울에 보는 싱싱한 딸기는 붉은 유혹의 덩어리 입니다. 달고 맛있다며 딸기를 집는 아이들의 손길이 바빠집니다. 이것도 기상이변인가 싶게 유난히 따뜻한 겨울이지만 딸기를 보니 문득 봄생각도 듭니다. 누구의 보살핌도 받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저홀로 푸르게 피어나는 봄의 생명들이 갑자기 보고 싶어집니다. 그리고 그 봄볕을 받고 새콤달콤하게 익어갈 진짜 딸기도 먹어보고 싶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