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비가 오던 일요일에 아이랑 나란히 앉아 책을 읽었다.
밖에 비가 내리고 있었으므로 그날의 배경음악은 빗소리가 되었을 테지만,
베란다 문을 열때마다 들리는 빗소리 사이로 익숙한 음악이 흘러 들었다.
책을 읽던 아이가 반갑다는 얼굴로 '시크릿가든 음악이네?'한다.
오히려 내가 어리둥절해 하며 다시 물었다. '너,저 음악 어디서 들었는지
생각나니?'...
'왜, 제작년에 미천골 갈때 들었던 음악이잖아?'......
그랬다. 그 음악은 두해전 가을 강원도 양양군에 있는 미천골계곡을
따라 가며 들었던 음악이었다.
그때 계속해서 시크릿가든의 음악을 듣긴 했지만 그 이후론 좀체 들을 일이
없었을 텐데 아이가 그 음악을 그 배경과 더불어 기억하고 있다는게 신기했다.
빤히 아이를 쳐다보다 나도 빙그레 웃음이 났다.
'song from a secret garden'이라는 곡이었다. 때마침, 소프라노 신영옥과
시크릿가든의 공연소식이 전해지고 있었고, 라디오에선 시크릿가든의 연주에
맞춰 신영옥이 부르는 음악을 들려 주고 있었던 것이다.
만약, 아이가 시크릿가든의 음악을 골골 마다 단풍이 물든 미천골계곡이
아닌 다른장소에서 들었다면, 그때도 아인 그렇게 선명하게 곡과 배경을
기억해 낼수 있었을까?
아름다운 장소와 아름다운 음악이 이루어 놓은 궁합이 맞아 떨어져
아이는 오래 그 음악을 기억하고 또 그 장소를 추억하게 되는건 아니었을까...
서울살때는 사는 곳에서 가까운 강화도를 자주 다녀오곤 했다.
주말이라 상습적으로 체증을 빚는 국도를 겨우 빠져나와 강화의 입문
'강화대교'를 건너거나, 건너기 전쯤에 라디오는 항상 같은 음악을 들려주곤 했다.
'노래의 날개위에'라는 피아노곡이 잔잔하게 연주되고 시계는 오후 네시를
가리키곤 했다. 라디오 에프엠의 한 프로가 시작되고 그 프로그램의 시그널이
바로 '노래의 날개위에'라는 곡이었다.
강화대교를 건너면서 비로소 강화도에 도착했다는 설렘과 함께 듣게 되던
'노래의 날개위에'는 오늘 여행에 대한 예감을 좋은 쪽으로 이끌었고,
노래가 주는 이미지 대로 마음이 참 편안한 느낌이 들곤 했었다.
그래서 강화도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바다와 함께 '노래의 날개위에'라는
성악곡이 함께 떠오르곤 한다. 단풍든 미천골 계곡과 함께 '시크릿가든'의 음악들이
떠오르듯이.
음악과 함께 떠오르는 곳은 그렇지 못한 곳에 대한 기억보다 훨씬 가깝게 다가온다.
언제부턴가 광고음악이 음반계의 중요한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
광고음악만을 묶어 컴필레이션 음반을 만들어 음반업계 재미를 보고 있다라는
기사를 본적이 있다. 그것에 발맞춰 광고의 배경음악은 한층 다양해 지고
수준이 업그레이드 되는 것 같다. 광고를 통해서 익숙한 음악을 들으며
최근의 화두인 '웰빙'의 이미지에 걸맞는 자연을 주제로한 광고를
들여다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수준높은 광고에 수준높은 음악으로
치장된 요즈음의 광고는 그대로 한편의 영화를 보는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아무리 좋은 광고라 할지라도 적절한 음악이 빠진다면
그것은 뭔가 중요한것이 빠진 느낌이 들지 않을까...
드러나지 않으면서 잔잔한 배경이 주는 음악과도 같은 존재.
내가 꿈꾸는 내모습이다. 내 아이들에게 내 이웃들에게 그리고 내 친구들에게
나는 잔잔한 배경음악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
표면적으로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반드시 필요한 존재.
그것이 없으면 뭔가 허전해서 찾게되는 존재,
그런 존재로 나는 이웃들에게 기억되고 싶다.
그들의 추억속에, 그들의 기억의 한자락에 얹어진
아름답고 잔잔한 배경음악과도 같은 사람, 그런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