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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은 간다.


BY 빨강머리앤 2004-04-21

봄꽃이 다투어 피었다 졌다. 대개의 봄꽃들은 자연의 오묘한 섭리를 보여주듯, 잎새보다 꽃잎이 먼저 핀다.  이치를 거스르는듯한 그런 현상은 제나름의 생존방식이라 한다. 추운겨울동안 품고 있었던 생명의 절정을 꽃으로 보여줌으로써 온 세상에'생명의 기운'을 골고루 퍼트려 주는 봄꽃들.. 그꽃들의 화려한 행렬은 빠르고도 숨가빴다.

산수유, 생강나무꽃, 개나리가 노랗게 핀자리를 이어받은  벗꽃 매화꽃 목련이 하얀 꽃사태를 이루었었다. 복사꽃, 배꽃, 조팝나무꽃의 눈이 부실만큼 피어난 자리에 이젠 파릇한 새잎이 돋고 있다. 봄날이 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잎새보다 꽃잎을 먼저 피운 봄의 전령들이 지나간 자리에 신록들이 움트는 요즈음이다. 여리고도 싱싱한 새잎이 가져다 주는 상큼한 이미지 속으로 여름을 예감케하는 바람과 햇살이 비집고 들어오고 있다.

하지만 아직 봄날이 다 가지 않았다고 항변하는 꽃이 있으니.. 꽃사과나무가 피우는 하얀꽃이 그것이다. 갖가지 분홍색으로 피어나는 철쭉꽃이 또한 그렇다. 꽃사과와 철쭉은 계절을 경계지우는 꽃이다. 꽃사과와 철쭉이전의 꽃들이 꽃부터 피우고 보는 이른봄꽃 들이라면 꽃사과와 철쭉은 순리에 따라 잎이 돋고 꽃을 피우는 꽃들이다.

지난주만 해도 산벚꽃으로 봄산은 화려했었다. 드문드문 연두색 사이로 연분홍 꽃점을 찍었던 산벚꽃도 지고 산은 이제 초록빛 세상이다. 산으로 들어서 봄의 기운을 맘껏 들이켜고 싶었고 들길을 휘젓고 다니며 쑥향기에 취하고 싶었던 봄이었다. 봄이 가려는 지금 아쉬움이 크지만 이별이 아쉬운 만큼 새로운 만남에 대한 기대또한 크다.

봄볕이 머문 뜨락을 바라본다. 꽃사과의 하얀꽃들이 초록잎새 속에서 곱다. 사과꽃의 향기는 사과맛이 난다. 머잖아 사과꽃이 지면 열매가 맺히리라. 꽃이 진자리에 열매가 열리는 것은 자연이 주는 신성한 약속이다. 당신이 노력한 만큼 ,당신이 꽃피우려 애쓴 만큼의 열매가 열릴 거라는... 나는 그 신성한 약속앞에서 한없이 작아진다. 나는 오늘 하얗게 날리는 꽃들의 세상에 취할 뿐이다.  라일락도 피어났구나. 어김없이 늦봄에 피어나는 다른 꽃처럼 잎새를 먼저 틔우고 연한보랏빛 꽃타래를 몽실몽실 피워냈다. 은은한 향기를 내품는 라일락은 보랏빛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어느봄, 유치원에서 돌아오는 아이를 기다리며 읽었던 이해인 수녀님의 시집..

햇살이 따가운 한낮이었고, 햇살이 눈이 부셔 눈을 가늘게 뜨고 바라본 그곳에 라일락 꽃이 환하게 피어있었다. 옛친구를 만나듯 반가워 한가닥의 꽃을 따서 오래 들여다 보았다. 그꽃을 시집에 넣어 두고 잊고 있었는데 몇년이 지난 지금 그때의 그느낌을 고스란히 전해주듯 곱게 말라있는 라일락꽃을 발견했다.

노란유치원 버스에서 내려 엄마를 발견하고 기쁘게 뛰어오던 아이는 이제 많이 커버렸다. 연보라빛 라일락꽃 같던 아이는 어느새 푸른잎새를 자랑하는 유록의 나무만 같다. 달작지근하고 비릿한 향내를 폴폴 날리던, 내품에 꼭 맞게 품어지던 아이는 이제 제법 둥치가 커진 어린나무 한그루로 성장을 했다.

봄날은 가고 있다. 머잖아 철쭉꽃 축제로 산들은 술렁일 것이다.지리산 세석평전의 철쭉의 장한 모습을 마음으로 그린다. 경기도 가평군 축령산 줄기인 '서리산'도 철쭉꽃 축제가 열릴 것이다. 산정상 가까이 내키보다 훌쩍 큰 철쭉꽃은 연하디 연한 분홍색이었다. 그 높은 곳에 불어오는 바람에 온몸을 맡기고도 그리도 여린 분홍빛을 가진 철쭉꽃이 신비로웠다. 철쭉꽃 축제가 끝나면 비로소 봄은 마감을 할것이다.

그러니 아직은 봄이라 해도 좋으리라. 남아있는 봄은 산속으로 숨어 드는 시기이기도 하다. 그것들은 작디 작은 우리들꽃으로 피어난 봄의 결정체일 것이다. 그 이름을 하나씩 외워보는 봄, 아름답겠다 싶다. 은방울꽃, 얼레지,바람꽃, 노루귀, 금낭화, 박태기나무꽃, ... 그리고 그것들을 사랑하는 당신의 마음에 핀 꽃도 한번씩 불러본다.. 아름다운 봄날이 가고 있다.시나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