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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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쑥 영양밥


BY 빨강머리앤 2004-04-07

엊그제 아이와 뜯어온 쑥을 넣고 밥을 했다. 압력솥의 김이 빠지며 벌써 부터 쑥 냄새가

그윽하다. 그 깊은 향기는 단순하지가 않다. 복잡미묘한 쑥향기는 한마디로 단정짓기

힘든 자연의 향기이다. 흙향기를 닮되 흙향기만은 아니고 풀냄새를 닮았되 풀냄새만이

아닌 신비로운 향기이다. 이 향기는 자연의 이름을 부르게 하고 그 이름은 곧 고향을

불러 들이고 고향은 어머니와 그 어머니의 손맛을 그립게 하는 향기다.

음력삼월을 즈음해서 엄마는  쑥을 자주 캐곤 하셨다.

며칠을 걸러 쑥을 뜯어 오시는 엄마를 보며 하는 생각은 뭣하러 저리 많은 쑥을

캐실까? 하고 궁금했다.

엄마는 캐온 쑥을 다듬어 먼저 쑥버무리를 해주셨다. 그것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간식이었다. 쌀가루에 소금으로 간해서 쑥을 넣고 쪄내는 어찌보면 가장 간단한

쑥요리인 쑥버무리의 씁쓰레하고도 고소한 맛을 떠올린다. 아, 군침이 돈다.

쑥버무리는 싱싱한 쑥이라야 제격이다.

내 생일엔 쑥 인절미를 만드셨다. 쑥 인절미를 별로 좋아하지 않은 나는

생일상에 쑥인절미가 올라오는게 불만이었지만 그럴때마다 이게 얼마나 좋은

음식인줄 아느냐며 많이 먹으라 하셨다. 그때 싫다고 먹지 않았던

엄마의 쑥인절미가 지금은 없어서 못 먹는다. 떡집에서 파는 쑥인절미도

어쩐지 엄마의 그때 그 솜씨가 아니다.

엄마는 캐온 쑥을 말려서 보관 해놓고 일년열두달 필요할 때마다 조금씩 꺼내서

떡도 만들고 여러가지 요리를 만들고는 하셨다.

알고보니 음력삼월에 캔 쑥은 보약중에 보약이요, 그 시기가 지나 캔

쑥은 불쏘시개로 밖에 쓸수 없다고 했다.

 

식목일날,심심하다며 몸살감기로 누워있는 나를 자꾸 재촉했다. '엄마 우리 나무심으러

가자' 바로 전날 산수유축제를 다녀온후 몸이 으슬으슬 추운게

아무래도 감기몸살인듯 싶었는데 식목일이라고 딸아인 나무를 심잔다.

사실은 진작부터 식목일되면 나무를 심자고 내가 먼저 제안을 했었다.

나무를 보러나 가자고 아이들을 앞세워 동네뒷산에 올랐다.

봄빛은 아직 일렀다. 다만, 거므스레 죽어 있는 듯한 잎 떨군 활엽수들 사이로

분홍진달래가 지천이었다. 분홍진달래 밝은 색감이 진한고동색의 나무가지 사이로

도드라져 보였다. 이맘때 숲의 활기를 주는 진달래의 꽃잎이 자세히 들여다 보면

지나치게 여려 보이는 밝은분홍색임에 놀란다.

아직은 꽃샘추위가 남아있는 음력삼월... 놀라운 생명력으로 숲의 첫 봄을 알려주는

진달래의 꽃빛에 마음을 빼앗긴다.

제법 바람이 불었지만 우리처럼 가족끼리 산책나온 이웃들이 많았다.

봄이 시작되려는 숲의 기운은 맑았다. 가끔 새들이 호르릉 거리며 날아올라

맑은노래를 들려주기도 했다. 숲을 한바퀴 돌고, 내친김에 동네를 한바퀴 돌아볼

생각이 났던건 여기저기 파랗게 올라오고 있는 쑥을 발견하고서다.

꽃도 없는 것이 참 이쁘기도 하지. 에델바이스꽃을 생각나게 하는 쑥잎은

특유의 쑥빛을 띤 새싹을 보는 것만으로도 참 이뻐서 눈길을 끈다.

나를 뜯어가세요, 하고 유혹하는 것만 같아

저절로 쑥에 손이 간다. 하나둘, 뜯다보니 손안에 가득 차온다.

딸아이를 따라 아들녀석도 풀밭에 코를 박고 쑥을 뜯었다. 엄마 이거 쑥 맞아?

하고 내민 손바닥에 쑥 한뿌리에 다른풀이 더 많이 섞여있다. 어쨌거나,

하나둘 캐서 모아지자 아이들도 쑥캐는 재미에 푹 빠져있었다.

쑥을 캐는 아이들의 등뒤로 오후의 햇살이 눈부시게 쏟아지고 있었다.

 

우리가 쑥을 캐는 앞쪽에서

쑥을 캐시는 할머니를 만났다. 저희들 처럼 쑥을 캐고 있는 할머니를 보자 아이들이

먼저 반가워 달려갔다. '와, 할머니 쑥 많이 캐셨네요?'하고 인사들을 하자

할머니도 웃음으로 화답해 주신다. 쑥 뜯어 뭐해 드세요? 묻는 내게,

쑥국을 맛있게 끓이는 법을 자세히 설명해 주시며

쑥국이 얼마나 몸에 좋은지, 그것이 또 얼마나 입맛을 돌게 하는지 길게 덧붙여 주신다.

 

그렇게 뜯은 쑥이었다. 한웅큼이나 될까?
깨끗이 씻어 쌀과 함께 앉혔다. 쑥영양밥에 간장양념을 넣어 쓱싹쓱싹,, 맛나게 비벼먹었다.

씁쓰레 하고 고소한 맛이 입맛을 자극하고 코끝을 향기롭게 했다.

봄을 먹는 기분이라며 누구보다 남편이 좋아했다.

쑥이 지금 제철이다.  지천으로 깔린 쑥은 우리들의 식탁에 향기와 영양을

주는 고마운 식물이다.  쑥 버무리도 좋고, 쑥떡도 좋고 그것들을 만들어 먹는

영양가 있는 봄날은 어떤가? 물론 간편하고 맛있는 쑥영양밥도 한번 해 드실것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