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빛이 아련하게 쏟아져 내리고 있다. 아침안개는 맑을 징조라더니 안개낀 아침을 보내고 봄빛 찬란한 오전에 집안의 문이란 문을 모두 열어놓고 한바탕 먼지를 쓸어냈다. 여린듯, 평화로운 봄햇살은 눈을 덮어 쓰고 있는 산을 향해, 이젠 겨울옷을 벗어 놓으라고 속삭이는듯 하다. 아닌게 아니라, 하룻만에 희끗한 자취가 눈에 띄게 없어졌다.
에프엠을 통해선 '봄의 소리 왈츠'가 리드미컬 하게 흐르고 있어 이대로 어딘가로 백팩하나 꾸려 나서야 할것 같은 계절이다. 복잡다난한 세상다 다 상관없다는듯 세월은 흐르고 계절은 순리대로 변화를 추구해 가고 있다. 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인간도 넓게 보면 이 세상을 이루는 자연의 일부분이다. 우린 그 사실을 잊고서 편리함을 추구한다는 명목아래 자연을 짖밟고 파헤치는데 앞장을 서고 있는건 아닌지 다시 한번 돌아볼 일이다.
알만한 사람은 벌써 보았음직한 일본의 에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가 비디오로 나왔다. 극장개봉없이 비디오로 나온다는 소식에 반가운 나머지 비디오 가게를 수시로 들락 거리며 고대했던 작품이기도 했다.
에니메이션의 거장,, 일본이라는 나라가 낳은 전세계적 작가라는 수식어가 마땅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작품이다. 그의 전작들에 매료 당했던 우리 아이들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보며 화면에서 눈을 뗄줄을 모른다. 완벽한 시나리오 정감있는 인물표현 그리고 꿈인듯 아련하게 펼쳐보이는 자연과 동심과의 산뜻한 조화는 재미와 감동 그리고 번뜩이는 아이디어까지 어디 한군데 나무랄 곳이 없었다.
하긴, 미야자키 하야오는 영화상 최초로 에니부분으로 최우수상을 받은바가 있다(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
내가 이 거장에 빠져드는 이유는 영화가 주는 완벽함 이면에 깔린 자연사랑을 보았기 때문이다.그는 식물이나 동물 그리고 아이들을 등장시켜 우회적인 방법으로 자연사랑을 설파하는 환경론자 같다. 이웃집토토로에서 달이 뜬 밤에 아이들과 토토로가 나무의 정령을 불러 들여 흙에 씨앗을 심고 싹을 자라게 하는 신비로운 장면이 있다. 떡잎을 피워 올린 나무들이 한뼘씩 키가 자라 마침내는 하늘을 덮을 만큼 커다랗게 자라는 장면을 보면서 색다른 감동에 가슴이 뜨거웠던 경험을 했었다. 그의 메세지는 아마 그럴것이란 생각을 했었다. 오래된 나무에 깃든 정령. 그것들을 헤지면 자연이 파괴된다는 메세지.. 자연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인간이 지켜내며 공존해야 하는 것은 바로 나무, 숲이라는 사실을.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에도 숲이 등장한다. 숲을 지켜내기 위한 나우시카의 몸부림은 곧 인류의 생존과 직결된다. 숲이 죽으면 균류가 세상을 지배하고 균류에 지배당하는 세상은 부해의 세상(폐허)으로 변해 모든 살아있는 생물이 생존불가능한 공간이 된다. 뿐만 아니라 인간들도 썩은 공기로 인해 마스크를 쓰고 살아가야 하는 곳, 산소를 호흡하기 위해선 보조장치가 필요한 세상으로 변질되고 만다. 그 세상에 희한한 괴물이 하나둘 생겨난다. 그 이름은 '오무'.......커다란 벌레같기도 하고 갑옷으로 무장한 병사같기도 한 , 눈이 여러개 달린 괴물은 부해로 변해 버린 세상이 낳은 사생아다. 하지만 그 사생아는 그나마의 세상을 지켜내기 위해 숲을 파괴하려는 무리에 대항한다.
바람계곡의 공주 나우시카는 자연의 정령으로 부터 신비한 힘을 부여받은 구원자이다. 숲이 하나둘 없어지고 폐허가 되어버린 세상이 온통 균류로 가득찬 부해로 변해 가는데도 인간의 욕심은 끝이 없다. 더 큰 물건을 만들어야 하고 더 강력한 무기를 만들어 오무를 죽이고 새 세상을 건설하려 한다.유일하게 숲이 보존된 바람계곡, 그곳에 남은 평화가 아름답고 고귀했다. 바람계곡은 바람을 불러들여 풍차를 돌리고 그 에너지로 살아가는 자연친화적인 장소다. 또한 자연의 딸인 나우시카가 있으므로 그곳은 아름다운 자연이 지켜져야 하는 장소이다. 하지만 그곳에도 무기를 끌고 나타난 무리들로 인해 숲이 파괴되고 바람계곡도 부해의 세상이 되고 만다.
절망하는 나우시카를 모래늪이 어딘가로 인도를 한다. 부해 아래의 세상, 맑은 물이 흐르고 인간에 의해 침식을 당했던 숲의 나무들이 화석이 된채 정화를 하는곳, 깨끗한 공기가 만들어 지고 있는 지하세상이었다.
결국, 인간에 의해 망가진 숲이 부해의 세상아래서 새로운 자연을 만들어 놓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눈물겨운 희망이었다. 인간이 간섭하지 않는 자연이 갖는 숲의 정화작용은 경이로움이었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난다는 두물머리 근처, 그러니까 양수리쪽을 가끔 나가보면 유장한 한강의 흐름을 보며 감상에 젖었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 강건너 산을 보면 심난해 지곤 한다. 나무와 꽃들로 아름다워야할 산을 여기저기서 파헤쳐서 산의 붉은 속살이 드러나 보이기 때문이다. 어디 한군데가 아니고 한고개 건너 한고개가 러브호텔이네 대형음식점을 짓느라 산이 깍여 가고 있다.
우리나라 도로중 한편으로 강을 끼고 한편으로 산능선이 내달리듯 이어지는 아름다운 드라이브 코스로 이름난 양수리가 파헤쳐 지고 있는 모습이 안타깝기만 하다.팔당댐이 그곳에서 머지 않은 곳에 있고 수도권 시민들은 그곳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며 살고 있다. 양수리 근처 산들이 깎이고 대형음식점이 쏟아부을 음식물 쓰레기와 러브호텔에서 흘려보내는 생활 하수가 어디로 가겠는가?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듯이 깎이고 파헤쳐 지고 있는 산과 들에도 봄빛은 아련하게 쏟아지고
있다. 올봄, 자연속으로 나서기전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도 챙기고 길을 나서봄이 어떨까..우리 모두 초록별지구를 지키는 '나우시카'가 돼보는 일,,,지구를 살리는 첫걸음이 아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