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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죽음을 만나다-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BY 빨강머리앤 2004-02-06

'죽음'이라는 말은 함부로 내뱉을 말이 아니다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두렵고도 회피하고 싶은 단어이자 되도록이면 멀찍이 떨어져서 있고 싶은 말이기도 했다. 그런 '죽음'이라는 단어를 삶의 의미속으로 불러들여준 책이 있었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이 그책이다. 모리슈워츠, 그는 이 책의 지은이 미치 앨봄의 대학시절 스승이었다. 또한 죽음에 임박해서 살아 남을 우리들에게 진정한 삶의 의미를 일깨워 주는 우리 모두의 스승이기도 했다. 그는 말한다. '어떻게 죽어야 할지를 배우게 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알게 된다'고. 그래서 살아 남아 인생을 아름답게 엮어가야 할 책임을 부여 받은 우리들은 죽음 앞에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일깨워 주는 모리 슈워츠 교수의 충실한 학생자격을 부여 받고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되는 것이다.

우리에게 부여된 삶을 잘 살아 낸다면  필시 죽음도 잘 맞이하게 되리란 결론을 얻게 되는 셈인데... 그러면 잘 살아야 하는 명제 앞에서 우린 '어떻게'라고 누군가에게 물어야 한다.

모리 교수는 그 누군가가 되어 살아 남을 우리가 알아야할 사항들을 하나씩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일주일에 한번, 화요일에 살아 남을 우리 모두를 대신해 미치가 교수앞에 선다.교과서는 따로 없다. 열린마음만 있으면 모리교수의 강의를 수강할 자격이 주어진다. 그의 강의 주제는  죽음,  두려움 , 나이가 든다는것, 탐욕, 결혼, 가족, 사회, 용서, 의미있는 삶등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가장 직접적이면서도 지나치기 쉬운 것들이다.

여기서 모리교수는 '루게릭병'을 앓고 있다는걸 잊으면 안된다. 루게릭병은, 척수신경 또는 간뇌에 운동세포가 지속적으로 파괴되어 이 세포의 지배를 받는 근육이 위축되어 힘을 쓰지 못하는 병으로 주로 다리에서 시작되어 차츰 위로 올라가서는 결국 폐기능을 마비 시켜 죽게 하는 병이라고 설명되어 있다.

정신은 말짱한데 몸은 서서히 쇠락해 가는걸 모리교수 자신도 의사도 어쩌지 못하는 가운데 그는 자신이 살아온 생의 결정체를 모아 제자 미치에게 하나씩 알려 준다. 자신의 인생을 의미있게 살려면 자기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을 위해 바쳐야 한다고. 또 자기가 속한 공동체에 헌신하고 자신에게 생의 의미와 목적을 주는 일을 창조하는데 최선을 다하라고고 말한다.

나이가 드는것은 단순한 쇠락이 아닌 성장이라고 가르쳐 주기도 하며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멸망하리'라는 싯구를 들어 우리가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덕목은 사랑이라고 강조하기도 한다.두 아이의 엄마인 나는 타인에 대한 완벽한 책임감을 경험하고 싶다면 자식을 길러보라고 했던 모리 교수님의 충고를 가슴에 새겨 보았다.

이제까지 나는 죽음을 이토록 편안하게 인식하게 한 책을 만나지 못했다. 미치가 독자에게 던진 첫질문이 떠오른다. '당신은 이런 스승을 가졌는가?... 적어도 이 책을 읽는 동안은 모리교수는  우리 모두의 스승이 되어 주었다. 그래서 어떻게 살아가야 죽음에 이르러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생을 잘 마무리 할수 있는가를 조금은 알게 되었고, 또한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생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음을 인정할수 있게 되었다. 인생의 의미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현실의 문제로 끌어 낼수 있는 능력을 또한 얻은것 같아 마음이 한없이 풍요로워 짐을 느끼게 해준 책이기도 했다.

누군가로 부터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죽는다는건 두렵지 않지만 병에 걸리는건 두려운 일이다'... 병은 인간을 초라하게도 만들고 끝없이 나락으로 떨어지게 해서 힘을 쇠잔하게 만들기도 한다. 특히나 서서히 사지의 근육이 마비되어 손발을 못쓰게 되다가 급기야는 장기의 근육이 마비되어 숨을 못쉬고 죽게 되는 루게릭 병은 인간을 무력하게 만드는 가장 고통스러운 병중 하나일거란 생각이 들었다.모리교수가 루게릭 병과 싸우는 과정을 통해 루게릭 병에 대한 여러가지 설명이 덧붙여 졌다.

3년전에 같은 병으로 죽은 친구가 있었던 내게 이 책은 그동안 잊고 있었던 친구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게  해 주었다. 그 친구도 병을 진단 받은지 꼭 7년의 세월을 병마와 싸우다 세상을 떠났다. 새삼스럽게 친구의 얼굴이 떠올라 몇번인가는 책을 읽다가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곤 했었다. 멀리 있다는 핑계로 자주 찾아가 보지 못한 뒤늦은 후회로 가슴이 아팠다. 그 친구가 죽기 2년전,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져 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을때의 모습떠올랐다. 말을 할수 있으되 소리가 너무 작아 그 친구의 입 가까이에 귀를 대도 웅얼거리는 소리만 들려 왔었다. 보다 못한 친구는 내손을 끌어다가 손바닥에 글씨를 써주었다. 만나러 와 줘서 고맙다고... 나는 자주 못 보는 친구에게  편지를 자주 썼었다. 계절이 바뀔때마다 자연의 변화를 세세히 적어 보내곤 했다. 친구가 입원해 있던 중환자실은 이층 이었으므로 밖에 보이는 거라곤 하늘 밖에 없었다. 몸을 움직일수 없었던 모리교수는 창밖의 풍경을 통해서 계절을 가늠해 보기도 하고 밖의 풍경을 그려 보곤 했었지만 내 친구에겐 그것도 허락할수 없었다. 그저 햇살이 눈부시거나 회색구름이 낀 하늘을 보는 일만이 가능했었다.  그 친구는 내가 보낸 편지를 읽고 또 읽었다고 했고, 가끔씩 보내주는 시를 침대 발치에 붙여 놓고 외우기도 했다고 했다.나는 가끔 그 친구의 언니의 필체로 친구의 편지를 받아 보곤 했다. 죽어가는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유머를 섞기도 하고 시국에 대한 나름대로의 생각을 적어 보내기도 했었다.

'모리와 함께 한 화요일'의 책을 덮으며 난 친구의 기억을 하나씩 꺼내 보는 중이다. 친구의 언니가 대필한 편지를 꺼내 읽어본다. 설레는 봄빛을 닮은 연분홍 편지지가 그 친구의 삶에 대한 희망만 같아 가슴이 뭉클해 졌다. 봄이 온다는 절기 '입춘' 즈음이다. 오늘은 춥고 눈송이마저 날리지만 곧 친구가 보낸 연분홍 편지지빛의 봄이 올 것임을 안다. 겨울나무들이 잠들어 있는 산속에 연한 분홍 잎새로 피어나는 진달래의 봄을 그려보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연둣빛 새순이 돋고 연분홍 진달래 꽃잎이 흩날리는 봄날을 그린다. 봄을 맞거든  아름다운 생의 한때를 의미있게 펼쳐보이리라 생각하니 마음이 먼저 봄으로 달려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