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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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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산행,


BY 빨강머리앤 2004-01-30

겨울산행이라고 쓰고 보니 뭔가 대단한 일을 해낸듯한 느낌이 들지만 사실은 오랫만에 우리동네 산을 다녀왔다. 아이들 방학이 끝나가는 데도  이번 방학동안 아이들과 아무런 추억만들기를 하지 못한듯 싶었다. 그래서 오늘은 일찌감치 아침먹자마자 아이둘 데리고 도서관 나들이를 나섰다. 심심하면 도서관 마당에서 놀기도 하고 만화책만 보려는 둘째녀석 달래가며 좋은책도 함께 읽으며 두어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애초에 계획한 대로 오랫만에 우리동네 야산을 올라가기로 한것이다. 그간에 춥다고 집안에만 갇혀 지낸 탓인지 아직 추위가 덜가시고 잔설이 희끗거리는 산을 오르는데도 아이들은 마냥 신나했다.

산입구에 들어서기 전부터 응달진 곳에 아직도 눈이 꽤 쌓여 있는 곳이 있었다.오늘은 내가 특별 서비스를 해줘야지 싶어 벌써 엄마어깨까지 키가 자란 녀석들을 하나씩 앉게 하고는 손을 잡고 이끌어 '인간썰매(?)'를 태워 주었다. 녀석들은 엄마가 팔이 아픈것도 모르고 너무 재밌다며 조금더, 조금더를 외쳐댔다. 그래, 겨울가면 이런 일 하고 싶어도 못하니 내가 오늘은 힘좀 쓰겠다 생각하고 녀석들을 번갈아 가며 썰매를 태워주었다. 그래도 딸이 마음이 곱다. 엄마가 우리 태워 주었으니 우리가 엄마 태워주자며 손을 내민다.

산입구쪽이 가팔라서 인지 얼어붙은 눈길을 올라가기가 쉽지가 않았다. 겁없이 앞서가던 아들녀석이 자꾸 넘어지면서 눈길을 굴렀다. 내가 보기엔 위험 천만한데도 녀석은 재밌는지 부러 넘어지기 까지 했다. 사람사는 동네의 눈들은 벌써 다 녹아서 눈의 흔적이 거의 사라져 버린것에 비하면 산엔 아직도 눈이 내린 흔적 그래도 쌓인 길이 많이 남아 있었다. 미끌어 지며 발자욱 소리를 서걱대며 눈길을 걷는 동안 산속에 고여있는 맑은 기운에 몸이 환하게 열리는 느낌이 들었다. 바람은 눈위를 한바퀴 구르며 피부에 부딪혀 왔다. 차가우면서도 맑은 기운이 싫지 않았다. 이렇게 좋은걸, 자주 와보는 건데 그랬다고 아이들과 얘기하며 하얀세상위로 사람의 발자국이 만든 눈길위로 우리 발자욱을 보탰다. 눈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엄마에 비해 자꾸만 옆으로만 눈길을 주던 아이들이 눈사람을 만들자 그랬다.

그래 오늘은 확실한 엄마표 서비스를 보여 주자 싶었다. 내가 먼저 앞장서 눈사람 만들 눈을 굴렸다. 아이들도 질세라 눈을 굴렸지만 어릴적 노하우를 그대로 재현한 엄마 앞에서 어림도 없지. 금세 커다란 눈덩이가 눈앞에 떡하니 자리하니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래 진다. 딸아인 나뭇가지와 누군가 떨어뜨리고간 노란귤껍질을 찾아냈다. 하얀눈속에 노란귤 껍질은 금세 눈에 띄었다. '엄마, 누군가 우리 눈사람 만드라고 귤껍질을 버렸나 부다'고 딸아이가 말했다. 나뭇가지로 눈과 코를 만들고 노란귤껍질로 웃는 입을 만들고 나뭇가지를 길게 해서 팔도 만들어 작은 눈덩이를 손모양으로 만들어 붙였다. 아이들의 창의력이 돋보이는 산속의 눈사람은 두고 오기 아까울 정도로 이쁜 스노~맨이 되었다. 사진기를 갖고 갈 생각을 못했던 내 생각에 뒤늦은 후회까지 생겼다.

'겨울산에 뭐가 있을까?' 물었었다. 산을 오르기전. '눈이 하얗게 쌓여 있지만 소나무는 파랄거예요'이렇게 이쁘게 말했던 아들녀석은 눈뭉치를 만들어 엄마와 누나를 향해 던져 대고 있었다. 산을 한바퀴 돌 생각이었는데 생각보다 비탈길이 많이 미끄러웠다.  그런 생각으로 미끄러운 비탈길을 내려다만 보는 엄마를 앞질러 아이들이 용감하게 앞장을 섰다. 그것도 미끄럼까지 타면서... 와, 신난다. 아이들은 정말 신이 난 것처럼 미끄럼을 타고 비탈길을 내려갔다. 아이들이 겨울산속에서 즐거이 뛰어노는 모습이 참 이뻐 보였다. 마침 휘리리, 산새 몇마리가 가지와 가지 사이를 오가며 우짖었다. 우짖는 소리가 너무 이쁜게 '휘파람 새'인가 싶었는데 금세 어디로 가버렸는지 휘리리, 휘파람 닮은 소리만 저만치서 들렸다. 아쉬울 정도로 짧은 산행이었지만 참 많은 것들을 보고 느끼고 즐겼으므로 아이들은 나름대로 행복해 했다. 눈이불을 둘러쓴 겨울나무들이 춥겠다며  노래도 한가지씩 불러주고 내려오는 길...

나무야, 나무야, 겨울나무야. 눈싸인 응달에 외로이 서서.

아무도 찾지 않은 추운겨울을 바람따라 휘파람만 불고 있느냐.

어릴적에 참 많이 불렀던 노래다. 겨울나무가 새삼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참 씩씩한 겨울나무. 우리 아이들도 겨울나무처럼 찬바람 앞에서도 당당한 그런 아이들로 자랐으면  좋겠단 생각을 하며 산을 내려왔다.참 신선한 하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