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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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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아, 어서와!


BY 빨강머리앤 2004-01-28

설날 연휴들 잘들 보내셨는지요... 인사가 늦었습니다.

그간에 맘껏 게으름을 피웠습니다. 다, 추위 덕분이었습니다.

하도 '춥다' 를 입에 달고 살아서 '춥다'의 'ㅊ'만 봐도 떨릴 정도 입니다.

아일 낳은 여자들의 공통점 중에 유난히 추위에 약한게 맞는 말인거 같습니다.

예전엔 이렇게 까지 추위를 공포스럽게 받아 들이지 않았던듯 싶은데

아이둘 낳고 나니 뼛속까지 스며드는 추위를 어찌해볼 생각조차 못해 봤네요.

물론 이번 추위는 구십년 만인가, 몇십년 만에 찾아온 강추위라네요.

전국에 몰아친 한파로 수도가 동파된 집이 수만가구라지요.

여기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읍내에 있는 상가쪽을 지나다 보면 한집 건너

한집이 수도가 동파가 되었습니다. 그 흔적은 고스란히 길거리에 흘러온 물이

얼어있는 걸로 표시가 되어 있지요.

길이 얼어 진풍경이 하나 펼쳐 졌었습니다. 인도는 얼어 있고, 그나마 염화칼슘을 뿌린

도로는 눈도 얼음도 없어서 사람들이 죄다 인도를 놔두고 차도를

씩씩하게 걸어다녔다 아닙니까?

저도 구두신고 걷다가 인도가 하두 미끄러워 체면불구하고

차도를 걸어가는 사람들 행렬 따라 더러 차도를 뛰어다니고 그랬습니다.

그건 그렇고, 얼어버린 수도 꼭지야 따순물 부어주고

헤어드라이어로 더운바람을 쐬어 주면 풀리기도 한다지만 동파된 수도를 원상복구

하려니 비용도 비용이지만 대기순번을 정해 기다려야 할 정도로 복구작업이

밀려 있대서 추운데 물때문에 또 난방 때문에 고생한 집들도 부지기 수였다지요.

 

다들 별일들 없으셨는지요?

저희아파트는 세탁기 홈통이 얼어 붙어 며칠동안 세탁기 못쓰는거

빼고는 별일이 없었습니다만, 보일러 온수가 고장이 나서 한동안 고생을 조금 했습니다.

수도가 동파되고 보일러가 고장이 나는 대형사고에 비하면 그만하길 다행이었습니다만,

그것도 늘 아무렇지도 않게 쓰던 일이라 세수라도 할라치면 물을 데워 쓰는 일이

영 귀찮은 일이 아니었지요. 온수파이프가 얼어버린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이

어찌나 차갑던지 손씻는 일조차도 쉽잖았습니다. 목욕이야 대중탕도 있고 요즈음

한창 뜨고 있는 찜질방을 가서 해결하면 되었지만,날마다 머릴 감아야 하루가 개운한

남편 때문에 아침마다 우리집 가스렌지엔 커다란 들통의 물이 끓고는 했습니다.

물을 끓여서 쓰는 동안 온수를 틀면 더운물이 콸콸 쏟아지던 수도꼭지가

얼마나 그립던지요. 그래참 예전엔 어떻게 살았나 몰라, 하는 생각도 들더군요.

가마솥에 물끓여 온식구가 마당에서 더운물 아껴가며 세수하던 옛날... 참 불편할것

같던 그시절도 잘 견뎌 냈는데 며칠동안 더운물 안나온다고 그리 불편해 하는

내 자신이 참 오종쫑하게 느껴져서 그만 웃음이 났습니다.

 

물론 보일러 온수 파이프를 녹여볼 생각도 해봤지요.

헤어드라이어로 녹여보라 그랬지만, 갑자기 헤어드라이어는 안보이고

할수 없이 물을 끓여 주전자로 조금씩 부어 가며 살살 달래 보았는데

된통 얼어 버렸는지 도대체 며칠동안을 더운물 소식이 감감했었습니다.

다용도 실을 오며 가며 베란다를 들여다 보니 아뿔싸, 베란다에 놓아둔

야채들이 모두 꽁꽁 얼어 있었습니다.냉장고에 넣을수 없어 두었던 양파도

감자까지 그리고 두부는 얼음속에 갇혀 구멍이 숭숭 뚫려 있어서

한동안 아이들의 얼음장난감 구실을 톡톡히 해주었네요.

 

더운물은 안나오지, 추위는 안풀리지... 설연휴를 동안 추위와 씨름을

하면서 보내는 동안 봄생각이 절로 나더군요.

아이들 동화책 제목처럼 '봄아, 어서와'하고 부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

졌답니다.  빨간지붕의 하얀집의 초롱이는 겨울이 지겨웠어요.

추워서 밖에 나갈수도 없는데 엄마는 초롱이가 감기 걸릴까봐

창문까지 꼭꼭 닫아 걸었지요.  그래서 혼자 도화지에 초록색 나무를 그려 봅니다.

그러자 도화지속의 초록나무들이 초롱이를 채근합니다. 봄을 불러달라고요.

초롱이는 토끼와 기린과 공작새와 그리고 곰돌이를 불러 의논을 하지요.

어떻게 하면 봄을 데려올건지를요... 결국엔 봄에게 편지를 쓰기로 해요.

'봄아 어서와'라고 연두색크레파스로 삐뚤빼뚤 편지를 적습니다.

종이학이 초롱이의 편지를 입에 물고 우체통으로 날아간 다음날,초롱이는

꿈속에서 북쪽으로 날아가는 기러기 식구들의 인사를 받습니다.

'끼이륵, 초롱아, 안~녕'  봄은 아마도 초롱이의 연두색 편지를 받은 모양입니다.

 

하얀도화지에 연두색 크레파스로 봄을 부르면 정말 봄이 와줄것  같지 않은지요...

오늘은 날이 많이 풀렸습니다.저는 며칠만에 시원스럽게 세탁기를 돌렸습니다.

오랫만에 기쁜마음으로 세탁물을 건조대에 널어 말렸습니다.

그간 손으로 빨래하느라 많이 힘들었었으니까요.

이젠 봄을 기다리는 일만 남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젠 희망만 기다리는 일만 남았으면 참 좋겠단 생각을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