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하늘말나리야'는 동화작가 이금이 선생의 책입니다. 이 책엔 세명의 아이들이 주인공이며 시골 어느들녘이나 산길에 피어있는 소박한 우리 들꽃이 또한 주인공이기도 합니다. 하늘말나리꽃이 책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오고 세명의 주인공중 엄마를 잃고 '선택적 함구증'이라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바우가 그린 그림으로 선보이기도 합니다. 하늘말 나리는 나리과에 속하는 우리 들꽃입니다. 하늘을 바라보면서 피는 나리꽃이라 하여 '하늘말나리'란 이름을 가졌다 하지요.
빨강색 네장의 꽃잎이 아주 단단해 보이면서도 우아한 그꽃을 저도 어릴적 산속에서 몇번인가 본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하늘말나리'꽃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때마다 그보다 조금 옅은 색으로 피는 주황색 원추리꽃이 머리속에 그려졌습니다.
하늘말나리는 흔하지 않은 반면 원추리꽃은 아주 흔하게 보아 왔던 탓이었을 겁니다. 그래서 더욱 친근하게 느껴지는 꽃이기도 했겠지요. 더운 여름날 친구랑 산속에 들어가 꽃다발을 만들곤 할때 원추리 꽃은 소박한 들꽃사이에서 혼자만 고고한 색으로 멋을 부린듯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있었습니다. 노란마타리꽃과 푸르고 기다란 억새풀 그리고 강아지풀 틈속에 원추리 서너송이가 어울리던 우리들의 꽃다발은 우리를 잠시나마 동화속 나라를 경험하게 해준듯 싶습니다. 책속의 아이들은 꽃다발 엮기를 좋아했다고 생각 되어졌거든요.
이 책의 세 주인공은 미르와 소희와 바우 입니다. 미르는 부모님이 이혼을 해서 아빠랑 헤어져 엄마랑 시골 진료소로 이사를 온 아이 입니다. 소희는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할머니와 살아가는 아이고 바우는 유치원 때 사랑하는 엄마를 잃고 아빠랑 둘이서 살아가는 아이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에 나오는 세 주인공은 엄마가 없거나 아빠가 없는 가정환경을 가진, 그래서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아이들인 셈입니다.
'미르'라는 이름을 엄마와 아빠가 사전을 뒤지고 고민한 끝에 지었노라고 한 그분들이 헤어졌다는 사실을 미르는 받아 들일수가 없습니다. 아빠가 보고 싶고 엄마가 밉습니다. 그런데 시골이라니... 미르는 시골에서 살아야 한다는게 너무 싫습니다. 다 보기 싫다고 이사온 첫날 눈감아 버리려는데 진료소 앞, 느티나무가 눈길을 잡아 끄는 것만 같습니다. 그곳에 살짝 기대니 마음이 편안해 짐을 느낍니다. 오백년 되었다는 느티나무는 이제 수명이 다하려는듯 가쁜 숨을 쉬는듯해 보입니다. 가지가 땅으로 쳐지는걸 막기 위해 여기저기 줄이 얽어져 가지를 지탱해 주고 있습니다. 미르가 자기방 방문을 열때 느티나무 가지가 손을 내밀듯이 가지를 뻗어 그림자를 들여놓는 것을 봅니다. 어쩐지 아빠를 잃고 힘을 잃어버린 자신을 닮은 듯한 느티나무에 마음을 열고 싶은 느낌을 받습니다.
소희는 6학년 여자아이 치고 참으로 씩씩하고 당찹니다. 할머니 병수발에 집안일에 장보기 까지 못하는게 없습니다. 선택적 함구증이라는 병으로 마음을 닫고 사는 바우에게도 유일한 말상대가 되어 주는 마음깊은 아이입니다.소희는 미르를 본순간 어쩐지 미르가 슬퍼 보인다고 생각하고 그애의 친구가 되기로 마음 먹습니다. 하지만 미르는 생각보다 자신의 마음을 열어 보이는데 주저 합니다. 소희는 미르의 마음을 이해할수가 없습니다. 어릴때 아버지를 여의었던 소희에게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습니다. 그러니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도 못 느끼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아빠의 부재를 못 견뎌하는 미르를 보며 '추억이 없으면 그리움도 없는 법'이라는걸 깨달아 갑니다. 그러면서 서서히 미르를 이해해 갑니다. 진료소장인 미르 엄마는 동네 어른들이 아프면 달려가는 훌륭한 의사 였을 뿐만 아니라 소희와 미르 그리고 바우가 친구가 될수 있도록 징검돌을 놓아주신 분이기도 했습니다. 일주일에 한번 바우아빠의 트럭을 타고 시내로 가서 세아이는 도서관에 들러 책을 보곤 했습니다. 그러면서 세아이는 가까워 졌고, 하늘말나리처럼 하늘을 향해 꿈을 키우는 동무가 될수 있게 됩니다.
바우는 일찍 엄마를 잃었습니다. 이 세상 어떤 존재보다 소중하던 엄마를 잃고 바우는 동시에 말을 잃었습니다. 그나마 소희가 없었으면 바우는 영영 말을 잃었을 지도 모릅니다. 소희는 누나처럼 바우를 돌봐 주었습니다. 날마다 엄마를 부르며 술로 지새는 아빠보다 소희누나가 더 가깝게 느껴질 정도로 바우는 소희를 좋아했습니다. 부부금슬 좋기로 소문났던 아버지와 엄마는 다정한 오누이처럼 정다웠다 했습니다. 아빠는 이틀이 멀다하고 엄마산소에 들러 풀을 베어주곤 했습니다. 바우도 생전에 멈마가 일러준 들꽃으로 꽃다발을 만들어 엄마 산소에 바치기도 합니다. 바우는 그림그리는걸 좋아했습니다. 그림을 그리고 나면 엄마가 칭찬해주는게 좋아 자꾸 그림을 그리다 보니 화가가 되고 싶은 꿈이 생겼습니다. 엄마는 바우가 도화지에 점하나 찍어놓고 이건 새다, 하면 정말 새가 날아가네 하고 응수해 주던 분이었습니다. 그런 엄마가 돌아가셨으니 바우의 상심은 이루다 말로 할수 없는 나머지 말을 잃고 말았나 봅니다. 그런 바우가 진정으로 마음을 주고 말을 하고 싶은 상대를 만났습니다. 도시에서 온 미르라는 아이였습니다. 어쩐지 슬퍼보이는 모습이 자신을 닮았단 생각을 했던 아이입니다.다행히 영농회장이었던 아버지가 진료소에 갈 일이 자주 생겨 미르와 부딪힐 일은 잦아졌는데 도대체 입이 열리지 않습니다. 바우는 미르에게 할 첫번째 말을 연습하는 중입니다. 그리고 바우에게 해야할 또한가지 일이 생겼습니다. 하늘말나리꽃을 정성스럽게 스케치하는 일입니다. 진짜 하늘말나리처럼 그림을 그려 소희에게 주고 싶습니다. 하늘을 향해 굿굿하게 자라는 하늘말나리를 닮은 소희에게 그꽃을 선물해 주고 싶은 마음에 하늘말나리꽃을 그리고 또 그립니다.
세아이는 조금씩 자신의 상처를 친구에게 내보이면서 친해져 갑니다. 미르의 엄마와 바우아빠가 그셋을 하나로 묶는 일을 도와주고 산길에 홀로핀 들꽃들이 또한 그셋을 엮어주는데 한 몫을 합니다. 책속에 들꽃에 대한 시들이 하나씩 들어 있어 이야기중간에 시읽는 재미를 또한 선사합니다. 세친구는 또한 사춘기를 지나고 있습니다.미르의 엄마한테 투닥거리는 듯한 말투, 바우의 아빠에 대한 오해 등으로 세친구의 우정에 위기도 닥쳐옵니다.하지만 미르아빠의 재혼소식을 듣고 미르의 상실을 따듯하게 보듬어 주는 바우와 소희의 손길에 미르는 두친구에게 온 마음을 다줄수 있는 우정을 발견합니다.이 세상을 우정이라는 이름으로 어깨를 겯고 걸어갈 힘을 세아이가 주고 받는 과정이 잔잔하게 펼쳐집니다.
동네아줌마의 산고를 지켜보면서 미르는 자신의 출생이 어떠했는가를 생각해 보며 새삼스럽게 엄마를 다시 바라보게 됩니다. 처절한 산고끝에 아이를 낳는 여자라는 존재. 엄마는 위대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그러므로써 미르는 자신이 한층 정신적인 성장을 겪는 느낌을 받습니다. 아빠랑 살때는 행복해하지 않았던 엄마가 아빠와 헤어지고 나서 비로소 행복에 충만해 보이는 모습을 이제 조금은 이해할수도 있을것 같습니다.
병을 앓던 소희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마을 일에 항상 팔벗고 나선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동네분들 모두가 앞장서서 할머니장례를 치뤄 주셨습니다. 소희는 이제 작은아버지댁으로 가야 합니다. 소희가 떠나던날 바우는 비로소 마음에 들게 그려진 하늘말나리꽃을 소희에게 건네줍니다. 눈물이 그렁한 소희눈망울에 느티나무 두그루가 비춰 일렁입니다. 바우와 미르의 두눈엔 하늘말나리꽃 두송이씩이 일렁입니다. 아이들은 느티나무와 하늘말나리의 마음을 두눈에 담고 살아갈 것입니다. 느티나무처럼 항상 의연한 모습으로 하늘말나리처럼 하늘을 바라며 꿈을 안듯이 말입니다.
이책을 읽는 엄마인 나는 부끄러웠습니다. 우리 아이들에게 과연 나는 하늘말나리의 꿈을 얼마나 아름답게 그려보일수 있는지... 하늘말나리꽃을 찾아보았습니다. 김태정님의 '여름들꽃'편에 실려 있는 나리과의 여름꽃.... 빨강색이 화려함 속에 단단한 꽃잎이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갑자기 여름이 기다려 집니다. 아이들 손을 잡고 하늘말나리꽃을 찾아 떠날 여름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그꽃을 보여주며 '너도 하늘말나리야'라고 얘기 해주어야 겠다는 생각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