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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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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살과 노닐다.


BY 빨강머리앤 2004-01-14

아이들 방학이라고 느즈막히 일어나 아침을 준비합니다.

늦은 아침을 들고 아이들이 떠드는 소리를 음악 삼아 대충 설겆이만 끝내고

물주전자를 올려 물을 끓입니다. 보글 거리며 물이 끓는 소리에 얼마간의 따뜻함을

안으며 진한 커피를 머그잔 가득 만들어 봅니다. 신문을 펼치고 거실 주변에 어지럽게

널려 있는 오늘 치워야 할것 들을 외면하고 거실 탁자에 편안하게 앉아 봅니다.

엊그제 내린 눈이 제법 쌓여 있어서 어제도 눈사람을 만들고 곱은 손을 호호 불며

들어섰던 아이들이 오늘도 눈사람을 만들겠다고

중무장 중입니다. 그때 심정 같아서는 저희들 보고 다 알아서 하라고 하고

나는 나만의 시간을 즐기고 싶습니다만, 아이들이 추위를 느끼지 않겠금

옷을 바리 바리 챙기고 있습니다. 영하 15도  랍니다. 올 들어 가장 추운 아침이라지요..

속옷을 하나씩 더 꺼내 입히고 파카를 마지막으로 그 위에 머플러까지 씌워서

입까지 가리게 했습니다. 방수 장갑까지 끼워주고 어제 처럼 곶감을 먹고난 꼭지를

모은것 두개씩을 장갑낀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시끄럽던 집안에 갑자기 찾아온 고요.

이 순간이 참 소중합니다. 하루.. 내게 주어진 시간속에 온전히 혼자일수 있는 시간이

참 드물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현관문을 통해 밖의 찬 기운이 방안을 한번 휘젓고

물러났습니다. 찬기운 속으로 퍼져오는 커피향이 더욱 향그럽습니다.

우리 음악과 어우러지는 차 한잔의 여유에 함뿍 적셔 들려는 시각 불현듯

불쑥 솟아오르는게 있습니다. 아침해가 내 집앞 창앞에 떠오는 시각입니다.

시골이라지만 여기도 아파트가 참 많이도 세워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온전히 자연을

즐길수 있는 공간은 생각보다 적을수 밖에 없지요. 내가 사는 아파트 만 해도 그렇습니다.

바로 앞 건물이 일조권을 방해하고 있으니까요. 시야를 가리고 있는 앞동 건물 때문에

저는 늘 늦은 아침이라야 제대로 된 햇살을 맞이합니다.

그래도... 어느 순간 '이 세상의 첫 아침'을 맞이하는 설레임을 건네주는

햇살이 불끈 솟아오르는 그 순간이 참 좋습니다.

비로소 해맞이를 하는 느낌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닙니다.

그건 아주 갑작스러운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앞동을 넘어 불쑥, 해가 그렇게

솟구치면서 따스한 기운을 방안에 가득 뿌려 주곤 하니까요..

읽던 신문 지면이 환해지고 베란다에서 겨울을 나고 있는 나무의 긴 그림자가

비춰듭니다. 베란다 유리창은 비로소 눈을 떠 햇살 가루를 부지런히 받아

방안으로 실어 날라 줍니다. 그 햇살을 받아 먹는 화분의 흙, 그리고 나뭇잎의

소란스러움을 그림으로 그릴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여분의 햇살이 내 머리카락을 간지럽힙니다. 부드럽고 따스한 기분에

취해 잠시 눈을 감아 봅니다. 햇살의 어루만짐에 내 자신을 다 내놓고 싶어 집니다.

말하자면 일광욕을 한 셈입니다. 찬공기속에 방치해둔 몇개의 화분이 느끼는

그 속도 그대로 내게 전달 되어온 '햇살의 어루만짐'에 행복해 하는 아침...

아이들이 다시 왁자하게 떠들며 들어서네요.

'엄마 눈사람 다 만들었으니 내려와서 보세요'

얼른 나서지 못했습니다.  햇살이 내 방을 가득 비춰주는 이 순간을

더 즐기고 싶다고 변명해 보지만 추워서 밖에 나가고 싶지 않은 게지요..

 

청소를 하기 위해 방문을 활짝 열었습니다.

햇살을 방안으로 들여 놓고 싶어서 밖의 신선한 공기를

들여 놓고 싶어서 활짝 문을 열었습니다.

이번엔 아이들이 숨습니다. 옷장속으로 꽁꽁 숨어 묻습니다.

'엄마 청소 끝났어?'

눈싸인 산을 비추는 햇살도 우리집 베란다를 비추는 햇살도

오늘따라 참 곱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