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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씨에게 남학생 방을 쓰지 못한다고 한 학교의 방침이 차별행위라고 생각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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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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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별의 끝.


BY 빨강머리앤 2004-01-10

어머님을 한겨울 차가운 땅에 묻고 온지 이제 사흘이 지났다. 그날, 푸릇 푸릇한 보리싹이 돋는 들녘을 지나 남도의 따뜻한 기운이 일구어 내는 아지랑이를 만나고 붉은기가 돌던 생명의 흙속으로 어머님을 보내 드렸는데도 아직은 실감이 나질 않는다. 피돌기가 끝나고 모든 신경세포는 멈춰진 창백한  어머님의 마지막 모습도 곁에서 지켜보았었는데.... 사람의 몸이란 영혼을 담는 그릇 다름아니구나 싶게 영혼이 떠난 육신은 보잘것 없단 생각으로 서글펐는데.. 어머님을 묻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당신의 생각 곳곳에서 배어 나올때마다 이별은 생각보다 쉽지 않은 일이라 생각이 들고 하는 것이다.

남편과 내가 하나밖에 없는 어리고 어설픈 상주가 되어 사흘을 장례식장에서 보낸 일들이 아련하여 꿈만 같다. 찾아와준 고마운 사람들 중에 유독이 떠오르는 친구얼굴을 그려보며 미소를 짓는다. 한사람을 이 세상에서 떠나보내는 일은 얼마나 많은 절차와 필요이상의 에너지를 소비하는 일인가 싶어 좌절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어머님주변의 사람들과 생전의 어머님을 이모저모 추억하고 어머님의 생각을 나름대로 정리도 해보는 그런 시간이 되기도 했었다. 생전, 하느님을 받아드릴 생각이 전혀 없으셨던 어머님이 병상에서 비로소 하느님전에 기도하는 평화를 누리고 가셨다. 누구보다도 애를 쓰셨던 이모님의 가장 큰 바람이었던 그 일을 해낼수 있었음에 진정으로 감사한다고 이모님은 말씀 하셨다. 그래서 한달여간의 병상지킴이 역활이 하나도 힘들지 않으셨다고 하셨다.

병마와 싸우는 고통스러운 와중에도 기도시간엔 활짝 웃으셔서 그 모습이 꼭 천사같았다고 회고 하시는 이모님의 얼굴도 참으로 평화로워 보였다. 사정상 장지까지 따라가지 못한 어머님의 막내동생은 장례차에 입관한 어머님을 실자 누구보다 목놓아 우셔서 안타까웠다. 그리고 자신이 어렸을때 언니가 부모님을 대신해 키워주신걸 잊지 못할거라며 누구보다 열심히 병상의 어머님께 최선을 다하려 했던 셋째 이모님의 그 슬픈 눈을 나는 잊지 못할것 같다.

누구보다 가슴아파하시던 분이셨다. 가까이서 어머님의 삶을 지켜보았던 분이었기에 더욱 언니를 보내기 섭섭하셨을 것이다. 오죽하면 이모님은 첫날만 와서 보고 가슴아파서 못 보시겠다고 장례차가 떠날때까지 모습을 보이지 않으셨다. 어머님의 살아생전 모습만 가슴에 묻고 살아갈 것이라며 눈시울을 붉히시던 셋째이모님이 지금도 가장 많이 생각난다.

그분들이 있어 마음이 덜 외로웠는지도 모르겠다. 어머님 옆에서 어머님의 손발을 자청하셨던 쌍둥이 이모님, 가시는 날까지 일상과 병원을 열심히 왕복하시며 어머님의 의중을 가장 잘 헤어리셨던 셋째 이모님, 언니의 처지를 알면서도 바쁜 일상 때문에 자주 찾아 뵙진 못했지만 마음으론 누구보다 가슴아파했던 막내이모님등 . 어머님을 생각할때마다 이젠 그분들의 모습이 겹쳐질것 같다. 자주 찾아 뵈어야지 생각해 본다. 쉽지 않겠지만 말이다.

이제 어머님은 이모님 말씀 마따나 천국으로 떠나셨다. 육신은 저기, 한겨울에도 따뜻한 기운이 감돌아 보리싹이 푸릇하게 올라오고 소나무 푸르며 흙냄새 향그런  땅에서 비로소 편안한 안식을 취하시게 되었다. 그곳이 어머님의 고향이 멀리 건너다 보이는 곳이다. 아픈몸으로 고향에는 가고 싶지 않다시던 어머님은 그립던 고향을 멀리서 그렇게나마 바라보며 소원을 푸셨을까나... 못난 며느리 '믿는다' 손잡아 주시고 마지막까지 아이들 걱정으로 일관하시던 어머님은 이제 당신이 떠난 천국에서 기꺼운 미소 보내주시고 계실까나... 부디, 평화로운 영혼으로 닻을 내린 그곳에서 이생에서 못 누린 모든 좋은 것들 고루 고루 누리시길 바라마지 않는다. 이별의 끝에서 비로서 회환의 눈물 흘리며 짧은 기도 한소절 올린다.고이 잠드소서...

*그동안 저희 시어머님을 함께 걱정해 주시고 저에게 힘을 실어 주셔서 큰 위로가 되어주신 작가방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