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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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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산 푸른 정기를 마시다.


BY 빨강머리앤 2003-12-15

 

아이들이 가끔씩 교가를 부르곤 했다. '천마산 푸른정기 몸에 지니고..

북한강 맑은 물에 덕을 닦아서~~........'

북한강가는 몇번인가 가 보았었다. 여름날, 청평지나 대성리가서

북한강 맑은 물에 발도 담가보고 햇빛을 받고 반짝이는 강가를 오래 들여다 보기도 했었다.

예서 어디든 나가려면 북한강가를 끼고 달리는 일이 많았으니

알게 모르게 북한강 맑은물은 많이 만난 셈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북한강보다 훨씬

가까이에 있는 천마산을 못 올라가 보고 있던 터였다.

몇번인가는 시도를 해 보았지만 천마산 가는 날은 무슨 일인가가 생겨

산행을 취소 하곤 했던 것이다.여름날엔 잣나무의 녹음이 파랗게 손짓해 댔었고,

가을엔 참나무와 단풍나무가 참 곱게 단풍 들었다는 소문이 자자했었는데도

그 좋은 계절들이 다 가도록 가보지 못하고 있었다.

 

오랫만에 여유를 만든 일요일,가까운 산에나 가보자는 남편의 제안이 있었다.

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아이들이 합창을 했다. 약속이라도 한듯이 '천 마 산 ' 이라고.

날이 적당히 차가웠다. 햇살도 제법 곱게 내리고 있었다. 차를 타고 한 이십여분 남짓

달렸을까? 주차를 위한 선이 몇개 그어진 곳에 천마산이라는 팻말이 서 있었다.

대게의 유명한 산들에서 보아 왔던 것에 비하면 너무나 단촐한 모습이라 잠깐

머뭇거려야 했을 정도였다.

여기가 거긴가? 싶어 몇번이나 주변을 두리번 거리다

산입구랄 것도 없이 작은 소롯길에 접어 들었다. 벌써 산행을 마치고 길을 내려오는

등산객을 붙들고 '여기가 천마산 맞는가요? 라는 어리석은 질문을 던져 보았다.

천마산을 밟고 산이름을 묻는다는 표정으로 '맞습니다. 이 길 따라 쭉 올라가 보세요'했다.

 

쓸데없는 의심은 편협한 시각을 갖게 하는것... 천마산임을 확인하고 나서야 비로소 좌우와

앞뒤가 보이기 시작했다. 참 이쁘기도 하지. 겨울산이 주는 느낌이 이토록이나 포근하다니..

놀랍도록 자연스러운, 숲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천마산에 몸을 맡기는 순간

마음 가득 '천마산 푸른정기'가 포근히 안아주는 느낌이 들었다.

이 자연스러운 느낌은 어찌된건가 싶어 올라온 길을 돌아서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산 입구에 주차장 말고는 그아래 고기집 하나 있는 것 말고는 유락시설이 전혀없었다.

그래, 그 이유였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북적대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서서

등산객을 여유있게 맞아 주는 산이 었으므로..

 

며칠전에 내린 눈이 산길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곳이 있었다.

흰눈이 쌓여있는  겨울의 서정을 고요함으로 펼쳐놓은 곳을 감상하고 있으려니 개구장이

아들녀석이 '아직도 눈이 있네?'라며 눈밭으로 들어섰다. 발자욱을 찍으며 재밌어 하는

아들녀석에게 큰소리 치는 딸아이의 이유있는 항변인즉, 눈을 그대로둬. 아깝잖아?

 

갑자기 길이 끊어졌다. 계곡물이 졸졸 흐르고 징검돌이 몇개 놓여 있었다. 물속으로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라며 몇번을 주의를 준 엄마에 비해 징검돌을 건너는 아이들의

발걸음엔 한없는 장난스러움이 배어 나왔다. 물에 빠진들 어쪄랴 싶은 그 경쾌한 발놀림에

그만 웃음이 나왔다. 겨울숲에 깃든 고요를 뚫고 계곡물소리가 끼여 들더니

머잖아 산새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오기 시작했다.

천마산의 푸른정기를 들여 마시며 마음을 헹구고

청아한 산새소리에 귀를 헹구어 내니 마치 신선이 된듯, 한껏 여유를 부려 보고 싶어졌다.

 

멧세 두마리가 사람이 오는 줄도 모르고 굴참나무 낙엽아래에 파묻혀 있는 먹이를

쪼고 있었다. 봄 여름 그리고 가을을 바쁘게 보냈을 겨울숲.

이제야 비로소 휴식을 취하며 고요속에 침잠한 숲속에서 울리는

산새소리는 천상에서 들려오는 음악인듯 맑고 청아하기 이를데 없었다.

마음을 한껏 풀어 놓았다. 사진기를 가져오지 않았다고하자,

아이들은 계곡을 건너는 나무다리위에 올라가 '가짜사진'을 찍어달라며

포즈를 취했다. 손가락으로 카메라 앵글을 맞추어 '하나둘셋, 김~치!'하는

구령에 맞춰 활짝 웃기까지 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겨울숲에 고운빛을 하나 더하는듯 했다.

 

세상만사, 고달프고 마음아픈일, 다 내려놓고 싶은 순간이었다.

병원에서 집으로 모시라 해서 어제는 어머님을 집으로 모셔다 드린 후였다.

그런 남편이 오늘은 먼저 제안을 한 산행이었다. 일요일에도 출근을 해야 했어서

반나절짜리 나들이였지만, 오랫만의 산행에 아이들은 물론이고 그간에 맘고생으로

힘들었던 남편도 모처럼만에 웃는 얼굴을 보여 주었다.

 

계곡물소리와 어우러진 산새들의 합창에 발맞춰 산중턱 부분에 올라서니

작은 쉼터가 눈에 들어왔다. 산속에 위치한 작은집 굴뚝에서 연기가 하얗게

올라오고 있었다.

참나무를 태우는듯한 향긋한 연기내음이 좋아서 쉼터에 들어섰다.

여름동안 아름드리 참나무 군락으로 풍성했을 산을 그려보며 도토리묵을

먹는 것도 낭만적일것 같았다. 아이들이 사발면을 후후 불어 먹는 동안

산향기 가득한 도토리묵을 먹었다. 깨소금을 듬뿍 뿌리고 들깨기름으로 무친

도토리묵을 맛나게 먹는동안 주인인듯한 할아버지는 커다란 드럼통을 열어

장작개비를 던져 넣고는 하셨다. 장작을 넣기위해 드럼통난로를 열때마다

참나무 진한 향기가 실내를 가득 채워주곤 했다. 참나무 향기에 샤워는 하는듯한

느낌이 아늑했다.

 

다시 산길을 나섰다. 개두마리가 아이들을 따라나왔다. 아이들 손에 들린 센베이과자를

보았던 모양이다. 아이들이 조그맣게 부셔서 과자를 손바닥에 올리니 맛나게 사금거리며

먹는 개들이 이뻐 죽겠다는 표정이다. 개를 무서워 하던 녀석들이 과자를 낼름 받아먹는

개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안아주고 난리가 아니였다.

쉼터를 벗어나 가파른 산길을 조금 올라가자 야영장을 겸한 야외무대가

산 한가운데에서 불쑥 나타났다. 화려하지 않으면서 여름밤이나 가을초입에 작은음악회가

열리면 참 어울릴듯한 무대를 만났다. 넓다란 공터는 아무래도 야영객들이

텐트를 칠수 있도록 꾸민 모양이었다. 우리도 예서 여름날 하루정도 보내면 좋겠단

생각이 물큰 솟게 곳이었다.

그곳에서 머지 않은 곳에 약수물이 졸졸 돌확을 따라

도롱이를 타고 흘러 내리고 있었다. 겨울인데도 적당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는

숲이 간직했다가 조금씩 흘려 보내는 귀한 물을 받아 마셨다.

정상까지 오르려면 아직도 2킬로나 남았다. 오늘은 정상까지는 말고

오른쪽으로 보이는 봉우리까지만 올라가자고 본격적으로 가파르게

형성된 산길을 탔다. 오후의 따사로운 햇살을 받은 산길은 얼음이 풀리는지

미끄러웠다. 아이들을 조심시켰으나 본래 산을 잘 타는 아이들이라

오히려 내가 자주 미끄러져 아이들한테 핀잔을 들어야 했다.

오랫동안 산을 찾지 않았으니 몸이 무디어 졌는지 그길도 힘이 들어 끙끙댔다.

 

얼음이 풀리는 흙에서 올라오는 흙향기에 힘을 얻고 봉우리에 올라서 보니

멀리 농가도 보이고 가까이는 산능선이 끝없이 이어져 있다. 산속에 함뿍 들어와

있구나 싶은게 마음을 한없이 여유롭게 만들었다. 어느틈엔가 먼저 올라와

등산로 주변에 놓여진 바위에 앉아 초코렛을 먹는 아이들을 불러 세웠다.

'얘들아, 저기 천마산 푸른정기가 잔뜩 서려 있구나. 우리 심호흡을 해볼까?'

정말이지 산봉우리 아래 푸른안개같은 기운이 온산에 퍼져 있었다.

며칠을 된통 추웠다가 오후의 햇살에 날이 풀리면서 만들어낸 빛과 공기의

조화이거니 싶은 푸른안개가 참으로 신비로웠다. 그 신비로운 푸른안개를 맘껏 들이켰다.

 

아이들이 합창을 하기 시작했다. '천~ 마산 푸른정기 몸에

지니고~.....' 그래, 아이들아 이 맑고 푸른 정기 맘껏 들이키고 맑고 푸른 가슴을

가진 아이들로 자라거라. 산이 주는 이 맑은 기운은 거짓이 없이 본디 그대로 맑고

푸르단다. 너희들 맘에 오늘 마신 이 깨끗한 기운만큼 깨끗하고 거짓없이 아름다운

것들이 채워지기를 바란다. 훗날, 기억해 두렴. 이 아름다운 겨울산행의 한때를.

멀리 정상이 있는 커다란 봉우리가 보였다. 천마산 푸른정기가 가득 배어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