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도 걱정 안와도 걱정'이라는 어머님의 말을 뒤로 하고 나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어머니 배가 많이 부어 있다. 복수가 차오르는 중인지,지난번에 한번 복수를 빼냈는데
배가 많이 부풀어 있었다. 의사도 조금 기다리라 그러고 어머니는
아직까진 괜찮다 그러는데 보는 우리는 불안하기만 하다.
암세포에 점령당한 간이 제대로된 기능을 못하는 모양이다.
특히 소화기능이 현저히 떨어져 조금이라도 식사를
잘못하거나 하면 곧바로 소화불량이 되곤 하신다. 지금으로선 어머니께 가장 어려운
고통이 소화를 못시키는 데서오는 고통이다. 어제는 아침에 식사로 나온 작은 감자가 하나
있었는데 그날따라 감자가 참 맛있어 보이셨단다. 생각은 저걸 먹으면 안되겠는데 싶은데
손이 가지더란다. 오랫만에 제법 맛을 느끼며 그걸 드셨는데 덜컥 탈이 난거다. 한바탕
난리를 치루셨단다. 소화기능이 많이 약해 지셔서 안그래도 죽을 드셔야 하는 처지였는데
왜 그렇게 감자를 먹었는지 모른다며 후회를 하시는 모습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 이었지만
말씀으로 위로를 해 드릴수 밖에...
그래도... 먹는거 소화만 시키면 퇴원할수 있을 것을
하시며 삶에 대한 희망을 놓치 않으시는 어머님께 차마 당신이 처해있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말씀 드릴수가 없어 그냥 어머니 얘기만 듣고 올수 밖에 없었다.
남편은 어머님의 약해진 모습을 대하기가 민망 했던지 자꾸 병실 밖으로만 나갔다.
아이들은 한동안은 할머니가 주는 대로 음료수를 홀짝이며 얌전히 앉아 있더니만
얼마 안있어 병실안을 돌아다닌다. 주의를 주어도
그때뿐, 저희들로선 따분하기 이를데 없는 눅적지근한 할머니들의 병실인 것이다.
평생 고생해서 번돈을 고스란히 남편에게 빼앗기다 시피하신 어머님께
아무것도 남은게 없다. 그나마 하루에 한번씩 얼굴을 내밀어 주는 시아버지에게도
아무것도 기댈게 없다.
그저 묵묵히 일해서 어머님의 병원비를 대야 하는 우리 입장에선
변명같지만 어머님을 날마다 뵙지 못한다.
마석에 와서 일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남편을 도와 우리 부부가 함께
일해야 한다. 그런 사정을 아시는 어머님은 뭐하러 자주 올라오냐고 걱정하시지만
날마다 뵙지 못해 늘 송구 스러울 따름이다.
다행히 어머님께 쌍둥이 여동생이 있어서 그분께 의지를 많이 하고 있는 형편이다.
어젠 어머님과 어머님이 하시고 싶으신 일에 대해 얘길 나누었다.
내 생각과 똑 같다며 어머님이 하시는 얘기. 당신은 누구보다 쌍둥이 여동생이
가장 편하고 좋으시댄다. 일찍이 남편을 일찍 여의고 혼자가 되신 이모님과
바다가 보이는 작은 집에서 텃밭에 푸성귀나 기르며 그렇게 살고 싶으시다는 것이다.
어머님의 고향이 바닷가 여서 그랬는지 유난히 바다가 좋으시댄다.
고향에 가셨으면 하지만 너무 멀고 또 아픈 몸으로 고향에 발을 들여 놓고 싶지
않아서 이모님과 우리나라 지도를 펼치고 들여다 보았단다.
충청도 서산쪽이 맘에 드시다고, 거기 바다가 보이는 곳에 작은 집에 깃들어
쌍둥이 여동생이랑 푸성귀 기르며 바다바람 맞으며 그렇게 살면 원이 없으시다고
그러셨다.
내가 조심스럽게 어머니 하시고 싶은 일이 뭐냐고 물으며 전하고 싶었던
말씀을 어머니는 구체적으로 그렇게 생각하고 계셨다 하셨다.
이번주 중에 이모님이 살집을 보러 충청도에 다녀 오실 거라며 오랫만에
기뻐하는 기색을 숨김없이 드러내던 어머님께 정말 어머님이 원하는대로
그렇게 해드리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그렇게 생활할수 있을 정도였으면,
그렇게 원하는 곳으로 이동을 해도 괜찮을 정도였으면 참 좋겠지만
지금으로선 그마저도 불투명한 상태다. 의사선생님을 만나고 그럴수 있느냐고
사전에 의논도 해야겠고, 만전을 기해야 할것임을 안다.
여전히 누워서도 이러저러 걱정이 많으신 어머니께
지금으로선 마음의 평화가 가장 중요하다고 말씀을 드렸다.
언니가 나중에 병실로 찾아왔다. 조카들과 함께. 어머님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준 언니가 참 고마웠다. 마음 차분히 갖고 치료 잘하시라고
말하는 언니의 그 한마디에 어머님의 고개를 끄덕이셨다.
어머님이 입원해 계신 병동은 모두 할머니들이다. 나이 들어 병이 드신 그분들의
모습에서 우리 모두의 어머니의 얼굴을 보았다. 자식들을 위해 남편을 위해 그리고
시댁을 위해 몸 사리지 않고 희생을 해온 인생이 결국은 힘없이 병상에 누운채
그제서야 비로소 휴식을 취하는 우리들의 어머니들..
나이가 드신 할머니들 일수록 얼굴에서 아이들의 꾸밈없는 모습이 서려 있어 놀라웠다.
인생고를 다 내려놓으면 그런 얼굴이 되려나. 며느리가 비위가 약해 병원에 다녀
가지를 못한다는 79세된 할머니의 한숨을 이해한다. 병원에 다녀 와서 비위가 틀려
먹는거 다 토해내고 몸저 눕게 되니 병원엘 갈수 없다는 며느리도 이해하려 애쓴다.
뭔가 사연이 있겠지? 일방적으로 잘해주고 또 못해주는 관계는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
사람관계란게 상대적일수 밖에 없으니까. 그래도... 이젠 아이들의 순수함을
동공에 가득 채워두고 계시는 그 할머니의 굽은 허리를 보니 눈물이 난다.
어머니께 인사 드리고 나오면서
허리가 아파 누워 계시다는 그 할머니의 손도 한번 잡아 드렸다.
항상 묵주를 쥐고 계시는 할머니, 그래도 날마다 신께 기도를 바치는
그 할머니의 마음엔 한줄기 평화가 흐르고 있을 거란 생각을 하며
발걸음을 돌려 병원을 나섰다. 병동의 자동문이 열리자 바람이 세게 몰아쳐
왔다. 겨울이 깊어 가고 있다. 병동을 돌아 쳐 가는 바람에 알수 없는 불안한
미래를 날려 보내고 올겨울 포근할거라는 일기예보를 생각하며 '희망이라는 이름'
마음속으로 불러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