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햇살이 알맞게 내리는 가을아침이다.
산은 이미 벌건빛으로 흥건하다. 세탁기가 있는 다용도실에
들어 세탁기에 이불을 집어 넣다가 습관처럼 밖을 내다 보았다.
빙둘러선 산...,산과 산이 이어진 산능선마다 갈빛이 출렁인다.
그속에서 유난히 두드러진 청녹의 잣나무군락이 청명한 가을하늘과
대비가 되는 아침이다.온통 세상이 누렇고 붉그레하니 청록의 잣나무와
텃밭에서 한창 커가고 있는 김장배추의 초록빛이 더욱 푸르고 싱싱하게 보인다.
논배미의 벼들은 이미 베어지고 없다. 그래 벌써 11월인 것이다.
11월은 뭐라 규정하기 힘든 달이다. 학교 다닐땐 참으로
지겹던 달이었다. 아무리 눈씻고 찾아봐도 일요일 외에는 빨갛게 써진 날이
하나도 없는 달, 가을운동회와 가을소풍, 그리고 학예회도 모두 9월이나 10월 내주고
11월은 혼자 외롭게 서 있는 달인것 같았다. 그러니 참으로 심심하고 지겹던
달로 여겨졌던 것이다.
하지만, 지난가을 동안 초록이 지쳐 단풍든 산이 만들어져 왔었고,
그 연장선상에 11월이 있기에 난 이제야 11월의 진면목을 보게 된다.
열심히 달려 왔던 자연과 사람과 그리고 사물들 모두에게 잠시 휴식같은 달,
그런달이 아마 11월이 아닐까 싶다.
크리스마스가 있고 연말인 12월이 오기전에 잠시 계절과 계절 사이에서,
잠시 열이란 숫자와 열둘라는 숫자사이에서 11월은 중재자 역활을 해주는
'세월의 카운셀러'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렇담 올 11월엔 나도 특별히 내안에 침잠하는 법을 배워야 겠단 생각을 한다.
빨래가 돌아간다. 마지막 섬유유연제를 넣을 차례인데 다 떨어진걸 모르고 있었나 보다.
섬유유연제를 대신해 식초를 몇방울 떨어뜨린다.
가끔 그렇게 해왔지만 어쩌면 화학성분인 섬유유연제보다 식초가 옷에도
그리고 그 옷을 입는 사람에게도 훨씬 유용한 성분의 섬유유연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식초를 넣고 탈수를 3분 남겨두고 세탁기를 정지시켰다.
가을이라 수분이 부족하다. 건조한 날씨가 시작된 것이다.
아파트 라는 편리한 주거공간은 늘 촉촉한 수분기를 앗아간다. 그러니 항상
이맘때 즈음엔 가습에 특별히 신경을 쓰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세탁물을 덜짜서 실내에 말리면서 자연가습을 하곤 한다.
가습기가 있지만 어쩐지 덜 미더워 자주 사용을 하지 않고 대신
빨래를 실내에 건조시키면서 자연적인 가습을 해주는 것이다.
이불이 다 빨아졌다. 이불을 잘 마르게 하기 위해 햇볕이 잘 드는 앞베란다에
의자 두개를 나란히 하고 세탁한 이불을 널었다. 오랫동안 우리 가족과 함께한
이불보엔 자잘한 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남보라색과 하늘색 제비꽃무늬와 메리골드
인듯한 꽃들이 지천이다. 하얀바탕에 새겨진 꽃무늬들이 아침햇살아래 도드라져 보이니
그전엔 그러려리 했던 이불보가 오늘아침은 참 이뻐 보인다.
이불을 펼쳐놓은 바로 앞 베란다 창문에 국화꽃이 노랗게 만발했다.
그래, 이불보에 새겨진 노란꽃이 메리골드가 아니라 국화꽃일수도 있겠구나..
만발한 국화꽃에서 은은한 향기 풍겨져 온다. 오늘밤, 가을햇살에 말린 이불에선
햇살냄새와 함께 국화꽃 향기도 은은하게 퍼져 오겠다 싶다.
국화꽃을 보니 얼마전 내한공연을 한 소프라노 홍혜경의 '고향의노래'가 생각난다.
... 국화꽃 저버린 가을 들녘에... 이노래는 들을때마 쓸쓸함이란 단어가 먼저
떠오른다. 그 쓸쓸함은 전해주는 노래가 생각나니 이가을, 11월의 바람은
아마도 그런 쓸쓸함과 닮았으려니 싶어지는데 마침 라디오에서 '고엽'흐르고 있다.
해마다 이맘때 즈음이면 반복되는 레파토리건만, 늦가을의 정취가 완연한
11월에 듣는 이브몽땅의 목소린 늘 들어도 지겹지 않다. 오히려 가슴 후벼파는
뭔가가 있다. 가슴 깊이 묻어두었던 아픈추억이나, 결코 다시 하지 못할 그리운것을
탁 터트리는듯한 그런 느낌을 전해 받곤 한다.
라이브 였는지 이브몽땅의 노래가 끝나자 그 노가수에 대한 찬사로
커튼콜 세례가 소나기처럼 쏟아진다. 그는 갔지만 해마다 가을이면 그의 노래
'autum leaves'는 불려질 것이다. 그리고 그 노래를 듣는 우리는 가을의
정취에 푹 빠져 한바탕 가을앓이를 해댈것이다. 이불이 찬란하게 쏟아지는 가을햇살을
오물 오물 받아 먹는 소리를 듣는다. 이불이 말라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