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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김치에 대한 세가지 소묘.


BY 빨강머리앤 2003-10-21

                   * 소묘 하나*

 

얼마간 강화도에서 살았던 일이 있습니다.

강화도 그집은 마당이 넓은 집이었지요. 주인할머니가 혼자 사시는

조용한 집 마당은 사철 꽃이 피는 화단이 있었고 앞마당 보다

훨씬 넓은 뒷뜰은 한가득 농작물을 키우는 밭이었습니다.

호박넝쿨이 기어다가 꼬투리를 오물리면 작게 꽃송이가 머물고,

그 작은 송이에서 노란 호박꽃이 커다랗게 피어나기도 했고,

밭을 에둘러 키가큰 옥수수가 한들 거리는 그런 밭이 있는 집이었습니다.

 

한동안은 할머니가 가꾸시던 그 밭에서 나는 가지며 상추 부추와 호박을

바라보는 일이 행복했었습니다.

그러다 할머니 허리가 안좋으시다며 밭 가꾸는 일을 소홀히 하시게 되자

늘 싱싱하게 잎사귀를 피어 올리던 상추도 차츰 없어져 갔고,

가지의 잎새가 말라가더니 작고 보잘것 없는 열매를 달고 볼품없이

스러져 가는걸 안타깝게 바라보았던 것 같습니다.

 

가을날 메마른 옥수수가 큰키로 멀건히 흔들거렸지만

할머니의 손길을 받지 못한 옥수수는 고작 몇개의 작은 열매를 매달고는

누렇게 지고 있었습니다.

 

벙싯, 커다란 노란 호박꽃이 피어 막 걸음마를 시작한 우리아이의 눈길을

사로잡던 호박도 무성할리가 없었지만, 그래도 호박꽃투리와 호박잎으로

여름한철 토장국도 끓여 먹고 호박잎 쌈도 한두번은 해 먹을수 있었던 듯 싶습니다.

 

병원치료 때문에  서울 아들네에 다니러 가시며 할머닌 남은 것들 갈무리 하고, 그것들  

알아서 하라시며 서울로 가셨습니다. 그래서 그 큰집과 그뜰이 있던 그집은 온통

차지가 될수 있었던 가을. 뜰안 가득 가을볕이 따갑게 내리고 있었지만.

호박꽃이 피운 자리에

작은 호박이 몇개 대롱 거릴

뿐이었고, 상추는 벌써 사그러 들어 있었으며 고추를 몇개 단 고춧나무는

말라서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부추는 꿋꿋하게 홀로 서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아무도 돌보아 주는 이 없는데

그것들은 싱싱한 초록잎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걸 뜯어다 부추김치를 담아서

먹고는 했는데 그 김치가 다 떨어져갈 즈음엔 신기하게도 부추는 또 다시 김치를 한번

담을수 있을 만큼 자라 있곤 했습니다.

 

남편이 부추김치를 참 좋아했습니다. 다행히도.

그당시 우리의 소박한 밥상엔 그렇게 뒷뜰 밭에서 뜯어온 부추김치와,

호박꼬투리로 끓인 토장국과 그리고 된장에 싸서 먹으면 입맛을 당기곤

하던 호박잎쌈으로 넉넉할 수 있었지요.

거기다, 가끔 식탁 가운데 두부김치로 장식하고는 했습니다.

주말, 맥주를 곁들이고 두부김치가 있는 풍경은 신혼의 우리 강화살이에서

빠질수 없는 그림이었습니다. 참 소박한 반찬, 그리고 술안주였던 두부김치는

제가 그당시 잘할수 있었고 몇안되는 요리였을 뿐만 아니라 두부김치를 유난히

좋아한 남편에 대한 작은 배려 였던 셈입니다.

 

 

                    * 소묘 둘*

 

오래된 일인데 어느 잡지책에선가 자신이 좋아하는 열가지를

적는 란이 있었다. 그냥 무심코 첫번째 항목에 이렇게 적어 두었다.

'남편과 맥주마시며 얘기 나누는 일'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었다. 가끔

주말즈음해서 맥주를 마시곤 하지만 그건 언제나 우리집 거실을 벗어나지

않은 범위에서  였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가 되어 호프집을 들른적이 있는데  거의 십년만에

경험해 보는 호프집으로의 밤마실은 마음을 설레게 까지 했었다.

갑자기 내 어깨 즈음에 날개라도 돋아난 마냥 이 세상 어디라도 날아갈듯한

그 느낌... 그런데 막상 호프집에 들어가서는 왜 그리 어색하던지...

아줌마, 그래 어쩔수 없는  집안에서 한없이 부러워만 했던, 그래서 막상 내 앞에

주어진 자유의 시간을 어떻게 해야 할줄 몰라 어리둥절 했던 천상 아줌마 였던 것이다.

 

메뉴를 살피는데 안주는 왜 그리도 비싸던지... 생활비 목록이 죽, 그려지고는

주머니를 살피고는...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는 안주 낙점으로 찍힌

'두부김치',,. 강화살이 후엔 거의  요리하지 못했던 두부김치가 그날 향수처럼

추억을 자극하기도 했었고, 다행히 그 호프집의 두부김치는 맥주안주로 손색이

없을만큼 맛이 좋았다.

오랫만에 두부김치를 놓고 맥주를 마시며 예전 신혼의 그 한때 두부김치를

얘기삼아 안주에 곁들어도 보았다.

요즘도 가끔  호프집을 들르곤 한다. 콩나물을 볶아 넣어 특별히 더 개운한 느낌이

나던 두부김치를 앞에 놓고 맥주를 마시기 위해....

 

                       * 소묘 셋*

얼마전 친정엄마가 지난해 김장김치를 보내오셨다.

어떻게 담으셨는지 지금 먹어도 군내 하나없는 별미김치인

친정엄마표 묵은김치. 한가닥씩 쭉쭉 찢어 갓 퍼온 하얀 쌀밥 위에

얹어 먹는 맛, 그건 값비싼 요리가 흉내내지 못할 우리의 오래된 입맛일 터이다.

그런 맛을 함께 하고자 식탁에 묵은 김장김치를 한포기 내놓은

아침, 아이들은 묵은 김치 특유의 냄새가 나서 싫다고 하고

남편 또한 그렇게 먹고 싶은 생각이 없다고 해서 얼마나 서운하던지.

그래, 그후론 묵은 김치를 혼자서 먹기로 했다.

점심때 김이 모락 모락 올라오는 하얀 쌀밥에 묵은 김치 한줄 길게 찢어서

호호 불어가며 '이맛을 모르다니..'끌탕까지 차가며 맛나게 먹고는

했었다. 그런데 몇번 그리 혼자 하다보니 뭔가 허전했다.

그 허전함의 실체를 유추해 보니 혼자먹는 다는게 문제라는 결론을 내릴수 있었다.

그래 음식은 함께 나눠 먹는 맛이다. 혼자 먹기엔 지나치게 많은 양인

묵은 김치를 어떻게 하면 함께 먹을수가 있을까...

김치찌게를 좋아하는 딸아인 김치찌게를 끓이자고 했다.

묵은 김치를 돼지고기 넣고 푹푹 끓이니 깊은 맛이 우러나는 김치찌게가

되어 한동안 잘 먹었는데 어떤 음식이든 자주 먹다 보면 질리게

되는법.. 그러다 언니로 부터 그걸 가지고 두부김치를 했더니만 특별하더라

라는 얘길 들었다. 그래 그것이 있었지.

 

조금 짜다 싶으니 양파를 먼저 잘게 썰어서 기름을 두른 후라이팬에

볶고 김치를 넣고 볶아 살짝 양념을 했다. 넓다란 접시에 살짝 데친 두부를

네모나게 썰어 죽 둘르고 그 안에 살짝 볶은 김치를 올려  식탁에 놓으니

식구들이 맛있게들 먹어주었다.

 

혼자서 먹고, 김치찌게를 끓여먹고, 두부김치로 해 먹다 보니

엄마가 보내주신 묵은 김치가 바닥을 보이고 있다.

용케도 지금까지 묵은내도 안풍기고 맛을 지켜준건

엄마의 손맛과 김치냉장고의 수고가 더해진 덕분이겠지.

 

올해도 엄마는 김장을 넉넉히 하실 것이다.

겨우내 먹고 항아리에 담아 땅속에 고이 묻어 두었다

자식들 먹으라고 바리바리 김치를 싸 주시리라.

 

가을비가 보슬거리는 오늘, 관절 마디마디가 쑤셔 비가 올라치면

일기예보가 따로 없으시다는 친정 엄마께 전화라도 드려야 할까한다.

보내주신 김치로 올 가을 풍성한 식탁을 마련할수 있었노라고 ,

내내 건강 하셔서 그 맛난 김치 오래 오래 먹고 싶다고 그렇게 말씀 드려야 겠다.

 

부슬 부슬 가을비가 내린다. 두부김치 한 보시기 식탁에 올려 놓으면

참 좋을 그런 가을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