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수유꽃처럼, 노랗게 여울져 오던 봄햇살...
여름강을 반짝이며 고기비늘처럼 파닥거리던 여름햇살,
그리고 갈대숲에 숨어든 황금빛 가을햇살,,,,
햇살들은 아름답다. 너무 고와 눈이 부시다.
내 추억의 한자락, 그 갈대숲에 깃든 햇살처럼.
여름끝, 강가의 갈대가 조금씩 익어가고 있었다.
세침떼기였던 나를 다정하게 이끌어 주시던 고교때 국어선생님이 계셨다.
선생님을 매개로 만난 세친구가 있었는데 일요일 선생님의 집을 방문했다.
그리 크리 않은 깨끗한 느낌의 이층집. 음악을 좋아하셨던
선생님의 집에 놓인 기타와 피아노가 생각난다.선생님이 틀어주셨던
'트윈폴리오'의 노래들이 정겹게 떠오른다. 하얀손수건, 웨딩케잌,,,
선생님의 어머니가 지어주신 점심으로 칼국수를 맛나게 먹고
선생님의 제안으로 작은여행을 떠났다.
시외버스타고 영암으로. 여름의 끝자락, 가을을 불러오는 바람속에
무화과가 익어가는 과수원이 끝도 없이 펼쳐진 비포장 길을 버스를 타고
바다를 보러 갔었다. 버스바퀴가 통통 거릴때 마다 친구와 선생님과 나의
어깨가 부딪혔고, 깔깔대며 무화과가 익어가는 과수원을 지나쳤다.
바다가 보이는 곳 아무데서나 내려섰다. 바다를 향하게 옹기종기 모여있는
계단식 논과 바다를 경계로 갈대가 무성하게 자라있는 곳이었다.
그때 선생님과 우린 무슨 얘기들을 나누었던가..
아마도 진로에 대한 이야기 들이 태반이었겠지만, 지금 생각나는건
선생님과 불렀던 노래만이 메아리처럼 생각난다.
제목이 '그리움'이던가.
....달무리 지고 별 반짝이면 더욱 그리운 나의 마음
....세상 모두가 뭐라해도 당신 없인 난 못살겠네...
그렇지,'사모하는 마음'이 제목인 그 노래를 이제 막 익어가는 황금빛 벼이삭이
출렁이는 길을 걸어가며 불렀다.들어는 보았으나 부르진 못했던 노래, 그래서 선생님이 선창을 하면 우린 한소절씩 따라 불렀던 사모하는 마음...
저녁빛이 조금씩 갈대밭에 비춰 들었다.
저녁햇살을 받은 갈대들이 하얗게 일렁였다.
햇살을 받은 갈대밭도 황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그때 그햇살......
영화속 한장면 같았다. 저녁햇살을 받고 황금빛으로 물들던 갈대밭의 풍경이,,
내가 그런 풍경속을 거닐었던 때문인지 영화를 보다가 햇살을 받아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가을숲이 비쳐지면 마음이 설레곤 한다.
그 저녁햇살이 비춰든 갈대밭 사이를 오래 오래 걸어갔던것 같다.
아스라한 저녁빛이 스러질때까지.
그렇게 걷다 보니 항구가 보였다.
배를 타고 귀향하는 낭만적인 제안을 역시 선생님이 했었다.
달빛이 어제처럼 고왔다. 바다위에 뜬 밤하늘엔 달빛 뿐만 아니라
별들이 하나둘 돋고 있었다.
뱃전에 나란히 서서 노을이 져버리고 푸르스름하게 열리는 밤하늘을
올려다보며 소녀이던 우리들은'너무 아름답다'며 탄성을 울렸었다.
하늘에서 빛나는 것이든 지상에서 빛을 내는 것이든
모두 그대로 바다에서 다시 빛으로 일렁였다.
물결이 이는대로,빛들이 일렁이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된다.
이십여년전의 일이라 생각하기에 너무나도 생생한 기억.
선생님이 만들어 주신 그 소중한 기억으로 가을을 행복하게 맞고 있는지
스무해다.
올해도 그때 그햇살과 함께
갈대숲을 거닐며 국어선생님을 따라 사모하는 마음을 불렀던
그날을 떠올려 본다. 여전하신 그때 그선생님은 올핸 또 어떤 소녀의
기억의 한자릴 마련해 주시고 계실까?
선생님이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