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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엄마를 생각하며...


BY 빨강머리앤 2003-08-20

내가 언젠부터 친정엄마를 마음으로 부터 그리워했던가, 생각해 본다.

아마도 결혼을 하고서 부터 였지 않나 싶다. 결혼을 하고는 시댁에 들어가 살면서

시댁어른들의 어려움이 앞에서 친정엄마는 항상 그리움과 서글픔의 존재로

다가왔었다.  한남자를 사랑하여 그와 살림을 합쳤기로 나 외의 타인이 한사람

더 늘었다는 의미 이상의 존재감을 느끼며 일상에서 수없이 인내하고 이해하고 타협해

가며 살아가는 것도 벅찬 일이었는데 시댁에 들어가 있으면서 그 이상의 것들을

인내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일이 참으로 벅차기만 했던 신혼초였다.

 

그때마다 철없는 이 딸은 전화통을 붙들고는 친정엄마에게 하소연을 하다가는 끝내 울음을

터트리고는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때 엄마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싶어

쥐구멍이라고 찾고 싶을 만큼 부끄럽기만 하다.

 

시댁살이도 어느정도 익숙해지고 아이가 태어나고 그 아이가 자라가면서

두번째 시련이 찾아 왔다. 소녀가 숙녀가 되어 결혼을 하여 여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한번쯤 아픔이 깃들이 않은 인생이 어디 있으랴만,

그 아픔을 안으로 삭이고 쓰다듬어 결국은 삶의 진주 하나를 건지는 일 앞에서

언제나 먼저 불러지는 이름은 '엄마'였다.

 

비로소 같은 여자의 존재로서 다가오는 엄마의 지난한 삶이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는 아담하고 예쁜여자였다. 이웃집 아주머니 말로는 엄마시집올때 마치

하늘에서 선녀가 하강한것만 같았다고 표현을 하셨었다.

마흔이 되시곤 몰라보게 늙어 버리신 꽃을 좋아하고 옷을 잘 만드셨던 우리 엄마.

 

엄마를 생각하면  정성들여 가꾸던 화단과 함께 엄마얼굴이 겹쳐 떠오른다.

봄이면 지난 가을 소중하게 갈무리 해둔 꽃씨를 꺼내들고 엄마가 꽃밭을 손질하는

동안 유난히 눈부신 봄햇살에 눈살을 찡그리곤 했던 기억이 선명하다.

그렇게 손질해둔 씨앗이 초여름서 부터 겨울초입까지 꽃들이 피고지는 화단으로

태어나곤 했던 것이다.  수선화가 피었다진 화단에 봉숭아며 채송화가 꽃필때는

여름이 시작되었고, 아침마다 나팔꽃이 뚜뚜따따 나팔을 부는 모습을 보며

등교하던 여름내내 꽃밭은 붉고 노란 꽃의 융단을 연출하곤 했었다.

 

키가 작은 채송화가 앞줄에 나란히 노랗고 붉은 꽃을 피우는 뒤로

주황색 금잔화가 한줄, 그리고 사이사이로 봉숭아가 피었다가는 져서

톡 건드리면 잔뜩 앙당물고 있던 씨앗을 퍼트리고는 해서 봉숭아 씨앗이 멀리

튀어가는 그 모습이 재밌어서 아직 덜여문 봉숭아 씨앗을 억지로 망가지게 하곤 해서

엄마한테 혼나던 기억도 있다.

키가 큰 '키다리꽃은' 항상 담장 바로 앞에 심어졌었다. 키가 커서 키다리꽃이었던 노란

그 꽃은 키에 비해 줄기가 무척이나 약했는지 꽃이 한창 피어날 때는 제 몸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줄기가 휘어지곤 해서 엄마는 그것들이 휘어지지 않도록 대를 세워주시곤

하셨다. 그렇게 여름한철  화단이 풍성하게 피었다 지면, 가을바람이 소슬하게 불어오면서

가을이 시작되었음을 알리곤 했었다. 잠시 화단엔 고요가 내려앉고 여름동안

꽃을 피워 냈던 꽃들이 이젠 씨앗으로 여물고 있을 사이, 조금씩 국화가 꽃봉우리를

맺혀가곤 했었다.

 

국화꽃이 필때즈음이면 서릿발 같던 가을볕이 조금씩 저물어 가고

그때 즈음해서 엄마는 창호지를 새로 바르기 위해 창문을 떼어내서는

낡은 창호지를 벗기기 위해 바가지 가득 물을 떠와선 푸푸,  입으로 물을

품어 내셨다. 그 모습이 참 재미있어서 오랫동안 엄마를 바라보고는 했다.

물에 불린 낡은 창호지가 쉽게 떨어져 나가고 풀을 쑤어 창틀에 바르고는

새하얀 새 창호지를 바르기전 엄마는 미리 준비해둔 국화잎을 몇장 창호지 밑,

문고리 즈음에 맞추어 넣어 두시곤 하셨다.

그렇게 새창호지를 바른 문은 방안의 불을 끄고 달빛을 받으며 누워 있노라면

국화잎이 선명하게 도드라지곤 했었다. 그 모습은 지금도

가슴에 살며시 담겨오던 아름다운 유년의 기억으로 남아 있다.

또 하나 있다. 국화잎을 넣은 새창호지를 바를 즈음엔 화단 한켠에 심은

박하나무 줄기를 몇개 꺽어다 다발을 만드시곤 방안 선반아래에 거꾸로 매달고는

하셨다. 그러면 달빛에 도드라지던 새창호지의 국화잎 무늬가 주는 시각적인

아름다움과 박하향이 은은하게 퍼지던 감각이 합쳐져선 하나의 아름다운 이미지를

연출하곤 했었으니...

엄마는 알았을까.. 훗날까지 내가 그런 기억들을 아름답게 간직하리라는 것을...

 

엄마는 그냥 숙제건 방학숙제건 내가 알아서 하라시며 별간섭을 하지 않으셨다.

다른엄마들 처럼, 공부해라, 하지 않아서 내가 서운해 할 정도로..

그런 엄마가 방학숙제중 꼭 하나를 도와주시는게 있었다.

일명'모으기 숙제'가 그것이었다.

바닷가에서 조개를 모아오면 그 조개를 알맞은 그릇에 목화솜을 깔아서 이쁘게

꾸며 주셨고, 식물채집을 할라치면 어떻게 하면 좋을것인지 도와 주시곤 하셨는데

특히, 그간에 틈틈히 모으셨던 옷감조각을 간직하셨다가 훌륭한 모으기과제를 만들겠금

도와 주셨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

하얀 종이에 천조각을 하나씩 붙이고 엄마가 불러 주시는 대로

천의 이름을 아래에 적곤 했었다.

그렇게 숙제를 해가는 방학엔 '방학숙제 우수아동'에 뽑혀 상을 받아오곤 했으니

그 상은 어쩌면 엄마에게 드려야할 상이었는지도....

그런 엄마가 이젠 얼굴가득 주름살 투성이인 할머니가 되어 있다. 가지많은 나무에

바람잘날 없었던 세월가득, 얼굴에 그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어제저녁 김치를 택배로 보냈노라는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십여년 전 중풍후유증으로 몸이 불편한 아버지를 대신해 온집안을 이끌어 오신

엄마는 일기예보가 필요없으시다고 하셨다.

비가 올라치면 온몸이 쑤시지 않는데가 없다시면서도

쉴사이 없이 일을 찾아 하시던 친정엄마. 그 엄마가 딸이 맛있어 하던

김치를 한보따리나 보내셨다. 김치만 보내기 아쉬워 상자 빈틈에 감자를 끼워서

김치를 한상자 보내신걸 오늘 받아 보았다.

보내온 김치를 김치통에 하나씩 담으면서 엄마의 손길을 떠올렸다.

평생 고생만 하신 뭉툭하고 거치른 엄마의 손을 떠올리자 갑자기 가슴에 울컥,

뜨거운 것이 목울대를 넘어온다.

 

딸을 기르면서 엄마의 마음을 많이 헤아려 보게 된다.

내 딸이 내속을 상하게 할때면 나도 엄마속을 저렇게 상하게 했으려니 싶어,

후회가 일곤 하는 것이다. 여자는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봐야 엄마심정 안다더니,

그말이 딱 맞는것 같다.

그런데, 내딸에게 있어 나는 어떤 엄마일까?

훗날 내 딸에게 난 어떤 엄마로 비춰질까..문득, 걱정이 인다. 우리 엄마만큼

아름다운 유년의 기억, 오래오래 간직하고픈 추억을 딸에게 만들어 줄수 있으려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