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가을에 빈테이프를 마련해서 나만의 컴필레이션 음반(?)을 만든 적이 있다.
그랬던 것을 한쪽 구석에 팽개쳐 두었다가 오늘 문득, 한 생각이 일어 먼지를 털고
테이프 리코더에 밀어 넣었다.
잊고 있었는데 그 테이프 속에 모짜르트의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중에 흘렀던 아리아
'저녁바람이 부드럽게'가 실려 있었던 모양이었다.
바람이 부는 일요일 한낮, 가을을 재촉하는 비가 내리려는 모양인지
하늘이 잔뜩 찌뿌려 있었다.그 하늘을 올려다 보며
'저녁바람이 부드럽게'를 듣고 있자니
어제저녁에 있었던 '가야금 삼중주'단의 연주가 다시금 그리워진다.
남양주에서 열리고 있는 야외공연 축제의 일환으로 다산생가에서 하는 연극
'다산 선생님과의 하루'를 보러 갔더랬다.
밀리는 차량을 뚫고 부랴부랴, 하지만 북한강변을 따라가는 아름다운 강변길을 감상하며
극 '다산선생님과의 하루'를 볼 생각으로 부풀은 가슴을 안고.
기대를 안고간 만큼의 만족이 따랐던 좋은 연극이었다.
'이동교육극'이라는 부제 아래 다산선생님의 족적을 따라가는 연극은
다산생가터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진행이 되었는데 그런 독특한 진행 방식은
자칫 지루할수도 있을 이동교육극을 아이들도 흥미진진 하게 참여 할수 있게 해주었다.
무엇보다도 다산생가를 갔어도 다산의 묘지 주변만을 돌아다 보며 아쉬운 맘을 접고는
했는데 그날 연극을 관람한 관객들에겐 특별히 묘지를 참배하는 특전이 주어졌고,
대학자이자 수많은 저술을 남김으로서 지금도 뭇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인물로
다섯손가락안에 꼽는다는 정약용의 묘 앞에 서보는
영광스러운 자리를 함께 할수가 있었다.
70여분 동안 연극은 거중기, 생가터, 사당, 기념관앞에서 이어졌고,
끝으로 정약용묘소앞에서 그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소나무가 묘소를 감싸듯 자라고 있는 묘지터에 은은히 풍겨오던 솔 향기에
마음을 정갈히 하고 다산의 높은 뜻을 기리던 관람객들.
하나같이 '정말 괜찮은 연극 한편보았다'며 흐뭇한 미소를 띤채 묘소를 내려왔다.
나역시도 그들과 같은 마음으로 뿌듯한 느낌과 감동을 안고
잠시 후면 이어질 '가야금 삼중주'단의 공연을 보기위해
서둘러 자리를 옮겼다.
다산생가를 지나 '저녁바람이 부드럽게'라고 쓰인 간판을 따라
올라가면 공연장을 볼수 있을 거라고 했다.
카페이름을 그리 지은 까닭을 묻지 않아서 잘 모르겠으나
주인이 아무래도 모짜르트를 좋아하는 이가 아닐까 싶어 얼굴도 모르는
그이가 어쩐지 친근하게 느껴졌다. 저녁바람이 부드럽게 불고 있는 저녁 7시
산이 시작되기 전에 야트막한 분지에 관객들이 앉을수 있게 나무 둥치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그리고 고맙게도 나무둥치가 딱딱할까 싶었는지 그위에 부드러운 솜방석이 하나씩
놓여있었는데 나무의 초록색과 나무둥치의 고동색과 그리고 저녁햇살속에서 보는
하얀 솜방석이 참으로 단아한 조화를 보여주었다.
튜닝을 하고 있는듯, 아련한 가야금 소리에 발길을 재촉했다.
관객들 앞에 돗자리를 펼치고 앉은 세사람의 가야금연주자들이 연주를 하기에
앞서 관객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곡 설명을 먼저 해주었다.
우리가 흔하게 들었던 클래식 명곡들을 우리 음악에 맞게 편곡한 곡들이 많아서
편안하게 들을수 있었던것 같다.
특히, '헝가리무곡'같은 템포가 빠른 곡을 가야금으로 느리게 연주하는 느낌이
어떨까 무척 궁금했는데 가야금으로 연주되는 헝가리무곡도 색다른 멋스러움과
함께 흥겨움까지 전해 주었다.
숲에서 무궁화 금연주단의 '가야금 삼중주'를 듣는 동안,
나도 한마디 거들겠다고 나선 조연들이 있었으니,
'쓰르르,쓰르르'
'쓰람.... 쓰람'우는 풀여치와 쓰르라미 울음소리가 그 하나였고
'귀뚜루루..귀뚜루르ㅡ'목청을 높여 노래하던 귀뚜라미가 주인공 들이었다.
느린 가야금 연주소리에 섞여 번갈아 들려오는 귀뚜라미 울음소리와
풀벌레 울음소리가 멋진 하모니를 이루던 저녁이었다.
공연장삼아 앉아있던 숲가에 참나무들이 무성했는지
가끔씩 가야금 연주자들 앞으로 툭툭, 낮은 음으로 떨어지며 또하나의
중저음을 보태던 것은 도토리를 매단 참나무 가지였다.
그러니까, 가야금 연주에 맞춰 밤벌레들의 울음소리가 높은음으로 울리고
도토리열매가 낮은음을 연출하던 '가야금 삼중주와 자연음 삼중주'의
이 지상 어디에도 없을 환상의 하모니를 들었던 저녁.
부드런 저녁바람에 황혼녘의 하늘엔 구름들이 모여졌다 흩어졌다를
반복하고
분홍빛으로 물들던 저녁하늘이 서서히 짙은 남빛으로 물들어갈 무렵
아쉽게도 공연은 막을 내리고 있었다.
산길을 내려 '저녁바람은 부드럽게'라는 간판을 지나오면서 가야금으로 연주된
케논이나 헝가리무곡 대신에 저녁바람은 부드럽게를 나즈막히 불러보았다.
셔틀버스랑 엇갈리는 바람에 한참을 걸어 나와야 했던 수고로움도
추억으로 남는 그밤을 눈을 감고 생각해 본다.
혹, 내가 아름다운 꿈 한자락 꾸었던 건 아닐까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