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한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한창입니다. 초복을 지냈고, 소서와 중복까지...
한여름에 있는 절기들을 보내면서도 비가 내리는 와중이라 더운줄 모르고 지내왔던
엊그제에 비하면 정말 많이 더워 졌습니다.
일기예보에서 그리고 주변에서 어른들 하시는 말씀은 한결같이
'이젠 더울 일만 남았다'라고 합니다.
겨울은 추워서 겨울 다워야 하듯이 여름은 더워서 여름다워야 하겠지요.
무엇이든, 조물주가 빚어낸 피조물들은 그저 자연스러워야 함을 나이를 한살씩 더
먹어 갈수록 마음으로 깨닫게 되는것 같습니다.
아침부터 햇살이 뜨겁게 느껴지던 오늘 아침은 멀리있던 산봉우리가 가깝게
다가온듯 느껴졌고, 산능선이 골을 이루는 곳마다 가장 원시적인 초록색으로 숲은
물결치듯 꿈틀거리는 것만 같았습니다.
숲은 그렇게 이글거리는 태양빛에도 아랑곳없이 녹음을 한껏 뽐내고 있었건만,
타는듯 아지랑이 가물대는 저 거리로 나서는 일이 내겐 너무나 버겁게 느껴지던 하루였습니다.
그런 나의 생각속을 비집고 떠오르는 추억이 하나 불현듯 '그리움'이란 이름으로
달겨 들었습니다.
내 인생을 통들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오랫동안 '우정'이라는 낱말과 가장
가깝게 다가오는 친구가 한명 있었습니다. '은경'이라는 내 국민학교 동창 아이였지요.
일학년때는 뭘 잘 모르는 탓이었는지 내 국민학교 일학년때의 기억속에 그애는
아무런 느낌이 없었습니다만, 아마 이학년 때부터 였을 겁니다.
오륙십명은 족히 되었던 우리반 아이들 중 그애는 나를, 나는 그애를 오로지 친구라고
생각하며 다른아이들은 거들떠도 안보았던 우리..
학교에서 비교적 가까운 동네에 살던 나에 비해 학교 뒤산을 오르고 중턱을 넘어
한참 넘어가면 바다가 보이던 동네에 살던 그 친구랑은
학교 말고는 어울릴 시간적 공간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지 학교가 끝나고 다음날 학교에 가면 가장 먼저 찾게 되는 그애와 나는
언제 부턴가 단짝 친구가 되었고, 훗날까지 그렇게 함께 친구로 지내자고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을 하기도 했던듯 싶습니다.
다행히 그애와 나는 책읽는걸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하는 같은 취미를
가지고 있어서 특별활동엔 '문예반'에 함께 들어가 활동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렇게 항상 같이 행동을 하고 다녀서 인지, 사람들은 우리더러'쌍둥이'같다고
놀리기도 하고 다른친구들은 우리둘의 우정을 시샘을 하기도 했었지요.
그렇게 우정이 발전된게 아마 사학년때 였던것 같습니다.
매주 수요일은 그애의 집을 찾아가는날로 만들어 나와 우리동네에 살고
있던 몇몇친구들은 산넘어 바다가 보이는 마을에 사는 그 친구네 집엘
가고는 했었습니다.
이제막 열살을 넘긴 아이들이 걸어가기엔 다소 먼 길이었고, 더군다나 산길이었기에
결코 쉬운길이 아니었는데 그 친구를 포함해서 대여섯명이던 여자아이들은
용감하게도 수요일마다 학교 뒤 산길로 난 길을 따라 그 친구집을 향해 길을
나서곤 했지요.
대게는 비오는 날은 가지 못했던듯 싶은게, 지금 생각하면 그 산길을 오르느라
어찌나 덥고 힘들었던지 그만 지쳐 산길에 주저 앉기를 몇번이나 했던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겁니다.
산중턱을 향하여 오르는 길은 지나치게 가파른듯 여겨졌고,
산중턱을 올라, 한숨 쉬다가 내려가는 길은 지나치게 경사가 져서
우리중 누구 하나는 꼭 무릎팍이 깨지는 사고아닌 사고를 당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하루는 ,여름햇살이 너무도 뜨거워서 산길을 걷다 지친 우리들이
나무아래 앉아 그대로 갈것인지 말것인지를 의논을 했었습니다.
결국은 이만큼 왔으니 계속가보자는 '행동파 의견'이 그만 돌아가자는 '포기파 의견'을
앞질렀지만 그대로는 안되겠단 의견에는 일치가 생겼는지라 산길을 가는 도중
햇빛을 차단할수 있는 뭔가의 특단의 대책을 강구해야 할것 이란 결론에 도달했던가
보았습니다. 날씨가 더웠으나 맑은 날이었으니 우산을 가져올리가 없었고,
더구나 열한살짜리 계집아이들이 양산을 가지고 다닐리는 더욱 만무한지라,
아무리 고심을 해봐도 별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우리중 누군가의 도시락 보자기를 눈여겨 보았습니다.
빨간 합성섬유로 만들어진, 그시절 누구네 집에서건 흔하게 보던 얇은천으로
만든 보자기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래, 그거라도 햇살을 피하자'고 그 친구의 도시락보자기를 끌러서는
가위바위보를 하였습니다. 마지막까지 이긴 한명이 네명이 보자기 귀퉁이를
든 속으로 들어가 스무걸음을 걸어갈수 있는 특전을 주는 방법을 생각해 냈던 것이지요.
스무걸음 걷고, 나무아래 앉아서 다시 가위바위보. 다시 스무걸음걷고, 가위바위보....
그렇게 무슨 놀이처럼 우린 가위바위보를 해선 앞으로 나가가며 재미난듯 히히덕
거렸습니다. 마침내 산중턱 넓다란 바위에 앉아 쉬게 되었을때,
그중 한번도 빨간보자기 그 엷은 그늘막속으로 들어가보지 못한 친구가
털석 주저 앉아 부르던 노래가 있었으니...
'산위에서 부는 바람, 시원한 바람, 그바람은 좋은 바람, 고마운 바람...'으로 시작되는
'산바람, 강바람'이란 노래였습니다.
아, 그 노래가 어찌나 그배경과 그 시간과 맞아 떨어지던지요... 그 노래 때문에 그리고
그 빨간 보자기 때문에 여름 이맘때만 되면 그 친구들과 함께 그 산길을 걷던
기억이 선명하게 떠오르곤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가위바위보를 하고 산중턱에 올랐으니 시간이 꽤 지나 있었습니다.
마침내 산중턱 아래를 와, 하고 달려 내려갔으나,
그 친구 집에 도착하자마자, 언제나 처럼 양동이를 들고 바닷가로 나갔는데
벌써, 해가 지려 하고 있었습니다. 고둥도 잡고 소라도 잡아보고 싶었는데 말이지요.
서녘하늘이 엷은 분홍색으로 차츰 물들어 가는 걸 물끄러미 바라보다
그 친구엄마가 부르는 소리에 바다엔 발도 담가 보지 못하고 뒤돌아 왔던 기억..
그러나, 잊지 못할 여름날의 추억이 하나 있습니다.
그리고...시집을 가고 난후, 소식이 끊긴 내 친구 은경이가 무척이나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