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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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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나


BY 선물 2015-09-09



수건이 자꾸 말썽이다. 젖은 수건은 꼭 햇빛에 말려서 보송보송하게 사용해야하지만 또 여러 장의 수건이 한꺼번에 욕실에 나와 있는 것은 내켜하지 않는 남편이다.

그래서 젖은 수건은 지체하지 않고 햇빛에 말리고 마른 수건은 재빨리 욕실에 가져다두어야 한다.

수건 관리는 대체로 남편이 한다. 나는 내가 사용한 것만 잘 널어두면 비교적 문제가 없다.

그런데 뜻밖의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었다.

 

사실 남편은 자기 기준에서 아내인 나를 무척 배려하는 사람이다.

다만 그것이 때때로 내게 큰 부담을 준다는 것을 모를 뿐.

 

그날도 그랬다.

수건이 여러 장 젖는 것이 싫은 남편은 자신이 샤워를 하기 전에 내가 먼저 씻기를 원한다.

먼저 씻는 사람이 보송한 수건을 사용할 수 있는데 그것을 내게 양보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밀린 일이 있어 남편이 먼저 씻어야 했다.

남편은 덤벙 젖은 수건을 건조대에 널고 나서 씻고 있는 내게 말려놓은 어머님 수건을 건네주며 그것을 사용하라고 했다.

자동적으로 거부반응이 왔다.

어머님이 목욕 후 닦으신 수건으로 내 몸을 닦고 싶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그저 내 수건은 따로 정해서 쓰고 싶다고만 얘기했다.

순간 싸늘해지는 남편의 얼굴을 보았다.

그래도 못 본 척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던 나는 완전히 굳어져 있는 남편의 냉랭한 뒷모습에서 이 일이 쉽게 지나가지 않을 것임을 예상했다.

 

화가 났냐고 물어보았다.

몰라서 묻는 거냐고 스스로 잘 생각해보라면서 혼자 다른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왜 화가 난 것인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누구보다 나 스스로에게도 자주 되묻고 싶은 문제였다.

어머님이 고관절을 다치신 이후부터 지금의 다발성골절에 이르기까지 스스로 몸을 움직이기 불편해지신 것이 벌써 오 년 정도.

중간 중간 잠깐씩 상태가 좋아지실 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일상생활이 방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그러다보니 식사도 방으로 가져다 드려야하고 대소변도 받아내야 한다.

최근에는 조금 좋아지시면서 배변의자를 쓰고 계시지만 여전히 변기를 갈아야 하고 닦아야하는 어려움이 남아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남편이 목욕을 시켜드리지만 아무래도 여든 아홉 노인 분이시다 보니 드시는 것도 많이 흘리시고 깔끔하게 지내시기가 쉬운 것은 아니다.

환자의 위생은 환자가 아닌 보호자의 몫이지만 그런데도 비위가 약해지는 것을 극복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아주 경미하게 치매증세가 온 아흔의 아버님 또한 마찬가지다.

판단력이 떨어지시니 위생관념도 매우 약하시다.

두 분 모두 덜어드린 음식을 남기실 때가 많은데 나는 도무지 그것을 먹을 수가 없어서 적은 양이기에 대부분 버리고 있는 형편이다.

하지만, 남편은 음식 버리는 것을 질색하는 사람이다.

남편이 볼 때는 음식을 버릴 수가 없다.

상하지도 않았는데 부모님이 드시다가 남긴 음식이라는 이유로 버린다는 것은 용납되지 않는 것이다.

또한 내가 그런 음식 먹는 것을 꺼리는 것도 짐작하고 있기 때문에 그럴 경우 대부분 자신이 직접 먹어치운다.

하지만, 평소 자신이 잘 먹지 않는 음식은 곤욕스러워하며 슬쩍 내 쪽으로 밀어두기도 한다. 아주 드문 경우긴 하지만 그럴 때도 나는 쉽게 먹을 수가 없다. 두 눈 질끈 감고 먹으면 속이 울렁거린다.

이런 나를 나도 유난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몸은 생각과 같이 반응해주지 않는다.

내가 끝까지 먹지 않을 것처럼 보이면 남편이 먹는다. 그 때 표정을 보면 서운함과 약간의 분노도 함께 먹고 있다.

 

대놓고 비위 상한다는 말은 한 번도 하지 않고 있는 나.

말하지 않아도 이미 다 알고도 남을 남편은 그래서 조금씩 불편해지고 있는 것이다.

 

남편 입장에서는 대소변도 주로 자기가 받아내고 목욕도 자기가 감당하며 아내의 수고를 덜어주려 노력하고 있는데 아내는 좀 참고 지나가도 될 일을 거부하고 있다는 생각에 서운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무리 달리 마음먹어도 본능적으로 싫은 것들을 극복하기가 쉽지 않다.

 

수건 때문에 무거워진 마음으로 더운 밤을 견디고 있었다.

 

아침에 눈을 떠서 핸드폰을 보니 매일 아침 시누님이 보내주시는 주님과 함께 말씀이 도착해 있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서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됩니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나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너무도 강렬하게 들었던 생각이 바로 이것 차별이었다.

 

분명 그랬다.

언제부턴가 나는 어머님을 차별하고 있었다.

병드신 어머님은 이제 부엌에 나오실 일도 거의 없어져서 예전처럼 이런저런 참견을 하지 못하신다.

정정하셨을 때 나는 부엌으로 나오시는 어머님만 보면 가슴이 턱턱 막혔다.

이십년도 넘는 살림살이로 그만 가르치셔도 되련만 어머님은 아주 기본적인 일부터 옆에서 지켜보시며 가르치고 또 가르치셨다.

문제는 어머님의 가르침이 내겐 참견이고 간섭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머님이 지금은 부엌에 나오실 수 없다보니 아무 것도 간섭하실 수 없고 오히려 슬금슬금 내 눈치도 보고 계신다.

나를 붙들고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시고 내가 어머님 방에 오래 머물러주기를 바라신다.

그런데 나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있다.

이유는 분명히 있다.

어머님 옆에 있다 보면 알게 모르게 자꾸 어머님으로부터 상처를 받고 있는 것이다.

좋게 시작한 이야기도 이상하게 그렇게 흘러간다.

주로 나의 친정에 대한 이야기로 돌려가며 상처를 건드리시는 것이다.

그러면 방을 나서며 갖고 나오는 것이 어머님에 대한 미움뿐이다.

미움을 내 마음에 품으면 나는 지옥의 시간을 지내게 된다.

 

그래서 결심했다.

도리만 다하자.

사랑을 주려고도 받으려고도 하지 말고 대신 미움도 갖지 말자.

 

그랬던 것이 돌아보니 무관심이었고 일종의 무시였다.

약자가 되신 어머님에 대한 차별이었다.

 

병드신 시부모님을 모시고 산다며 온갖 칭찬을 다 듣는 나는 알고 보면 차가운 며느리였다.

그래서 칭찬이 반갑지 않다. 칭찬하는 사람들에게 대놓고 그렇지 못하다고 먼저 이야기 한다. 칭찬받지 않는 내가 떳떳하고 편하다.

 

그런데 주님은 당신을 믿으면서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고 하신다.

 

제대로 뜨끔해졌다.

문지방을 사이에 두고 어머님께 건네던 말씀을 일단 한발이라도 들여놓아야겠다.

내가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들이 엄청난 잘못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봐야겠다.

참 복잡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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