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고 보니 예전부터 그랬다.
아직 어린 계집아이라 부를 수도 있을 여중생시절.
자나 깨나 같은 옷을 입었던 내게 잘 때만 입으라는 잠옷이 생겼다.
적당히 유치하고 적당히 촌스러운 진분홍색 잠옷이었다.
나는 그 옷을 입고 공주가 된 양 얼마나 설렌 맘으로 잠자리에 들었던지.
공주라면 의당 있어야 할 침대도 없었지만 잠옷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공주처럼 살 것 같았다.
저녁을 먹고 나면 바로 내방(동생과 함께 썼으니 우리 방이겠지.)으로 들어왔다.
들어와서 바로 잠옷으로 갈아입었다.
잠옷이 마치 신분상승의 열쇠라도 되는 양 나는 달뜬 마음이 되었다.
보는 이 없어도 혼자 도도해졌다.
인정하는 이 하나 없었지만 나는 기꺼이 고결한 소녀가 되었다.
물론 첫 며칠뿐이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다시 슬금슬금 평민의 자리로 원위치하고 있었다.
잠옷 갈아입기가 번거롭게 느껴지더니 결국엔 입던 옷 그대로 잠자리에서 뒹굴거나 아니면 일어난 뒤에도 계속 잠옷을 입고 생활하는 날들이 늘어만 갔다.
잠옷과 잠옷 아닌 옷과의 경계는 그렇게 모호해졌다.
그래도 잠옷을 입고 이부자리를 파고들던 저녁이면 다른 날보다는 조금 더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었다.
잠옷을 입는 순간, 나는 하루가 전과 후로 확실히 나뉘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다.
경계의 중심에는 내가 있었다.
전의 시간에는 나의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를 갖지 않고 지냈다.
하지만, 후의 시간은 달랐다.
잠옷을 입은 후의 시간은 온전한 내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 때는 하루 중 저녁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시간이었다.
잠옷은 저녁을 여는 열쇠가 되었다.
저녁이면 그랬다.
뭔지 모를 해방감, 자유로움 같은 것이 긴장을 풀어주며 모든 의미의 구속으로부터 나를 무장해제 시켰다.
그리고 행복했다. 공주처럼 우아하게 행복했다.
잠옷은 단지 상징이다.
잠옷이든 평상복이든 어차피 저녁은 열린다.
하지만, 공주의 저녁을 펼쳐주는 아이콘은 잠옷이다.
사실 공주의 저녁은 그리 흔한 편이 아니었다.
독재자인 오빠나 다른 가족의 부르심을 받고 심부름을 하거나 일손을 도와야 하는 쇤네의 저녁도 부지기수였다.
그런 저녁은 싫었다.
너무 싫었다.
진짜 싫었다.
아무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온전히 나만을 위한 나만의 시간을 방해받는다는 것은 투덜거리며 씨부렁대는 것만으로는 해소되지 않을 걸쭉한 스트레스였다.
아침부터 저녁의 어느 선까지는 쇤네라도 무방했지만 그 후에는 반드시 공주의 시간이어야 했다.
그 생각은 아가씨가 되고 새댁이 되고 엄마가 되고 아줌마가 되어서도 여전히 유효했다.
하지만, 누울 자리를 보고 다리를 뻗는다고.
언제부턴가 공주의 저녁은 물 건너 살랑살랑 약 올리듯 내게서 멀어져갔다.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여기까지! 라고 할 수 있는 선이 있을 수 없는 쇤네만의 저녁이었다.
도대체 나를 그냥 내버려두질 않았다.
아내며 며느리며 엄마인 내게 공주의 우아한 저녁시간이란 참으로 요원한 것이 되고 말았다.
언제 다시 그것을 찾을 수 있을까.
아니, 되찾기나 할 수 있는 건지.
뭉게뭉게 가슴.
그러면서 퍼뜩 드는 생각.
나는 도대체 왜 해지고 어둑어둑한 저녁을 그렇게 사랑하게 되었을까.
선물처럼 주어지는 새 날, 새 아침이 아닌, 하루의 명이 얼마 남지 않은 저물녘의 시간대를 그처럼 사랑하게 되었을까.
힘들여 하루를 살아야 했던 것도 아니었는데 뭔가를 기대할 수 있고 가능성이 있고 즐길 수 있는 햇님의 시간이 아닌 하루의 소멸을 눈앞에 둔 하필 그 시간을 왜?
그것도 젊다는 표현도 억울할 어린 소녀 때부터 줄곧.
애늙은이였던 것일까.
고개가 가로 흔들린다.
단지 어떤 일면에서 그런 성향이 나타났으리라 말하고 싶다.
그러나 그런 성향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는 것이 내게서 또 나타난다.
희한하게도 나는 꽤 젊었다 할 수 있을 나이의 어느 순간부터 얼른 늙기를 소망해 왔다.
하루의 저녁을 사랑하는 것과 거의 비슷한 의미에서 나는 노년을 소망했다.
소녀가 다른 생기발랄한 시간들을 다 제쳐두고 저녁시간의 행복을 일찌감치 깨우쳤던 것처럼 젊은 날의 나는 대개의 로망인 <하루라도 젊음>은 차치해두고 노년에 대한 무한한 염원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 또한 지금 이 시점까지 여전히 유효하다.
내게 묻고 싶다.
왜, 왜, 왜애애애.
그것은,
공주의 시간.
나의 시간.
나만의,, 온전한,,아무에게도 방해받지 않을 고귀한 시간.
어쩌면 그것이 나의 절박한 왜에 대해 내놓을 수 있는 대답이 될 것 같다.
다 내려놓고 여기까지라고 단호하게 선을 그을 수 있는 그 시간에 대한 간절함 때문이다.
젊음이 부러웠던 적이 언제였던가.
너무 멀면 부러움도 없다.
대개는 닿을 듯 닿을 듯 닿지 못하는 그것에 부러워하고 목매는 법이다.
젊어도 그리 젊지 못했던 나는 일찍부터 늙음에 익숙해졌다.
그리고
이제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
그러나 노년은 저녁과 한 가지 다른 점이 있다.
저녁은 수없이 온다.
오늘 공주의 저녁이 아니더라도 기회는 얼마든지 있고 희망도 있다.
그러나 인생의 노년은 단한번이다. 그리고 단호하다.
고단하거나 평안하거나 ,
더러는 평안한 날도 더러는 고단한 날도 있겠지만 그런 더러 더러가 아닌 대체적인 삶은 한가지로 규정지어진다.
그렇게 규정될 나의 노년은.
내가 갖게 될 인생의 저녁인 노년은 반드시 평안의 저녁, 공주의 저녁이어야 한다.
내 삶은,
왠지 그것을 갖기 위해 내딛는 한걸음 한걸음인 것 같다.
그렇지 않으면 위로 받을 길이 없다.
적어도 인간의 영역에서는.
그것을 넘어선 차원의 영역.
신의 영역, 절대자의 영역.
그곳에는 이미 보험을 들어 둔 사람이다.
(결코 속되지 않은 행위에 대한 매우 속된 비유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 나는 지극히 인간적인 욕심의 차원에서 절박하다.
지금껏 살아온 보폭이라면 내 걸음은 얼마 지나지 않아 나를 생의 저녁에 닿게 할 것이다.
그곳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은 서글프지 않으나 그곳에 희망이 없다면 몹시 서글프고 허무할 것 같다.
언제나 현재를 살지 못하고 미래를 붙잡고 사는 나.
그것도 확실한 것이 아무 것도 없는 불투명한 미래.
그래서 나는 잠옷을 준비해야 한다.
무슨 색의, 어떤 모양의 잠옷이 나를 공주의 잠자리로 인도할지를 치열하게 궁리할 때다.
게으름 부리다가는 끝내 쇤네의 저녁을 맞게 될지도 모르니까.
<최근의 저녁은 싫다. 잔인하다. 너무 더워서.^^>
아컴에서 등 떠밀지는 않겠지요, 자리만 차지한다구 ㅎㅎ
괄호 앞쪽에 쓰신 얘기 , 재밌어요 선물님
어쩌면 희망, 소망.. 플러스(+) 환상, 이런 건 아닐까 상상해보게 되는데요. ^^
제게 공주의 저녁이란 유토피아 같은 것이에요.
끝을 향해 간다는 의미의 저녁을 소망했던 것이 아니지요.
내 마음이 원하는 대로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삶이 노년에 있지 않을까,
욕심도 아집도 다 내려놓고 자잘한 일상의 고민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참 자유의 시간이 거기에 가면 있지 않을까,,,
그런 의미의 저녁.
사실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없지요.^^
제 꿈에서나 존재하는 시공일 거예요.
그래도 전 있다고 믿으려구요.
혹 없더라도 그냥,,,온전히 속을 준비가 되어 있어요.
나를 속이면 된답니다.^^ (좀 뜬구름 같은 이야기죠? 사실 저혼자 알아들을 수 있는 이야기는 별론데 ㅎㅎㅎ)
어쨌든 이런저런 이유로 저녁이 시작일 수 있음은 큰 위로입니다.
가끔 노년이 되면 어떤 글을 쓰고 있을까 궁금해지는데,,,
그때까지 함께 여기 머물러 주실래요?
여유롭고 아름다운 시기를 보낼 수 있는 때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어요^^
저녁에서 밤으로 이어지는 하루의 시간과는 무척 다른
우리 인생의 노년..
문득 선물님으로부터 그 시기에 대한 긍정적인 해답일 수도 있을
무언가가 보이는 듯.
주변에 그 저물어가는 황혼 속에 있는 가까운 분들을 보면
마음에 쓸쓸함이 몰려드는데
정작 나 자신이 맞아야 할 그 시간에 대해는 그리 개념없이 산 것 같아요.
댓글이 길어지고 있는데^^;;
어디선가 옛 히브리에서는 저녁을 하루의 시작점으로 삼았다는
얘기를 언뜻 본 기억이 있어요.
아침 낮 저녁 밤으로 하루가 저물어가며 끝나는 게 아니라
저녁 밤 아침 낮.... 이렇게 끝나는 것도 무언가 좋아보였다는^^
그때당시는 ..부모님한테 꾸중을 듣고 잠이 들어도 항상 꿀잠을 잤던거 같은데..지금은 그때가 종종 그리울때가 있습니다..그것은 나이를 먹고 먼 훗날에 대한 보이지 않는 의문으로 잡념에 쌓여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해서일까요?
저는 아직 노년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본적은 없습니다만.. 선물님만큼 꼭 그만큼 생각하고 살아간다면 노년의 우아하고 도도한 공주의 저녁을 맛보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 봅니다 ..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글솜씨에 오지랖 넓은 여자 하나가 그냥 못지나치고 댓글 답니다...
정말 건강이 없다면 노년도 없고 공주 그런건 더더구나 없을 거예요.^^
다행이고 행복여요..ㅎ 선물님 노년엔 공주처럼 우아하게 행복한 저녁이 늘함께했음 하는 바램입니다..저도 마찬가지고요,,ㅎ 그럴려면 우선은 건강이
최우선이 되야겠지요..ㅎ 늘 건강하시고요, 행복하소서..ㅎ
자다 일어나 소변보러 갈 때 풀고 변기에 앉아야 하니께...ㅎㅎㅎ
한 때 저도 잠옷 좀 챙겨 입었습니다.
지금도 입냐구요?
외출복 외엔 다 잠옷이고 평상복이지요..ㅋㅋㅋ
저는 그럼 평민도 아닌 노비?
워낙에 우아한 것과는 거리가 먼 여자라서요ㅎㅎㅎ
맞을수 있기를 ....... 함께 바래어 보자구요 .
선택하는 직업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아마도 선물님은 이미 공주님의 잠옷을 준비하신 듯 느껴지는 걸요. 모두가 잠든 시간 깨어있기를 갈망하시는 것이 느껴져요.
매일매일 찾아오는 저녁이지만 이렇듯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신다면 분명 멋지고 아름다운 노년을 맞이하게 되실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