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녀석이 기타를 사고 싶단다.
클래식 기타는 할머니가 사 주셨는데 아이가 요구하는 건 베이스 기타다.
이제 고2가 되는 아들.
아무리 생각해도 지금은 공부할 때지 다른 곳에 신경 쓸 때가 아니라고 타일렀다.
안타깝게도 아들에겐 언제부턴가 나의 타이름이 먹혀들지 않는다.
공부도 할 테니 하고 싶은 것을 하게 해 달라고 요구한다.
그 모습이 너무도 당당하다.
그럼 네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먼저 보여 달라고 했다.
대뜸 돌아오는 답이 조건을 걸지 말라는 것이다.
언제나 그랬다.
아들 녀석은 무언가를 원하면서 대신 열심히 생활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에 맞서 나는 다짐이나 과정이 아닌 결과를 보여 달라고 했다.
아들은 기다렸다는 듯 준비된 대답을 한다.
과정이 중요한 것이지, 결과로 평가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물론 지당한 말씀이다.
그러나 그 말에는 신뢰가 바탕이 되어 있어야 한다.
집에서는 게으름을 부리면서 독서실이나 학원에서 열심히 한다는 말을 곧이 믿기는 힘들다. 만약 아들 녀석 말처럼 밖에서 열심히 한다면 분명히 좋은 결과는 나오게 되어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과정보다 결과를 평가하겠다는 것이었다.
이놈 아무래도 켕기는 것이 있는지 이 부분에서 슬슬 짜증이 시작된다.
돌연 과정 결과 운운하던 것은 사라지고 적성 타령이 시작된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 당연히 최선을 다하지 않겠냐고 주장한다.
나 또한 양보할 수가 없다.
뭔가를 그토록 간절히 원하면 그것을 얻기 위한 피나는 노력을 하면 될 것 아니냐고 했다.
당장 2학년 성적을 보겠다고 못을 박았다.
아들은 말이 안 통한다고 했다.
괘씸한 맘에 네가 부모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라는 뜬구름 같은 이야기를 하고 말았다.
그런 말이 귀에 먹히지도 않는다는 것을 내가 자식일 때 이미 경험하지 않았던가.
그러나 역시 부모가 되니 부모의 말이 흘러나온다.
아들은 자기가 부모라면 자식이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밀어줄 거란 말을 끝으로 대화를 끊는다.
나쁜 놈.
제 아빠 앞에서는 두려워서 아무 말도 못 꺼내면서 왜 맨 날 만만한 나만 붙잡고 씨도 먹히지 않을 말을 불쑥 불쑥 꺼내서 애를 태운단 말인가.
내 생각은 그랬다.
음악이나 미술 등 예체능 쪽으로는 일단 좋아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것이 자질이다.
취미로 즐길 수 있는 만한 실력과 평생 업으로 삼을 수 있는 재능은 눈에 드러나게 다르다.
그것도 파악 못한 채 기본적인 것을 제쳐두고 다른 것에 올인 한다면 자칫 이도 저도 아니게 시시한 삶을 살게 될 수도 있는 노릇이다.
가수도 배우도 일단 학벌이 좋으면 그만큼 플러스 되는 세상이다.
나는 아무래도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마련하고 다른 것을 시도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딸을 통해 깨달은 것은 좀 달랐었다.
뭔가를 원하는 것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이미 경험하지 않았던가.
초등학교 때부터 애니메이션을 배우고 싶다는 아이를 내 생각대로 눌렀더니 아예 꿈을 잃고 살아가던 것을 생생히 보았음이다.
그 후로는 애니메이션이라도 좋고 뭐라도 좋으니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등 떠밀어도 멍한 눈빛으로 꿈쩍을 않았던 아이.
고 3이 되어 뒤늦게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면서 메이크업을 가르쳐 달라고, 그 분야로 가고 싶다는 아이를 또 막았지만 너무도 간절해서 결국 허락했더니 그 뒤로는 눈에 불을 켜고 공부를 했던 것이다.
이제 피부미용학과에 합격하고 학원에도 나가는데 좋아하는 일을 해서인지 옆에서 보기에도 참으로 열심이다.
미술 감각이 남달라서 여러모로 유리하다는 학원선생님의 평가도 아이를 신나게 했다.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그렇게 생생하게 겪었는데.
그러나 이상하게도 아들아이에겐 그런 경험도 소용이 없다.
아들에겐 우주인 이 소연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된다.
그녀는 꿈을 정해놓고 공부했던 것이 아니라 언제라도 꿈이 생겼을 때 준비가 덜 되서 꿈을 이루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늘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한다.
아들에게도 그렇게 기본적으로 할 것은 해 놓고 원하는 바를 주장하라는 요구를 하게 된다.
어떤 면에서는 참으로 속물스런 생각이지만 현실을 무시할 순 없는지라 아무래도 나는 아들아이가 앞으로 먹고 살아갈 일을 염려하게 된다.
지금 기타를 시작해서 성공할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렇다고 뛰어난 재능이 엿보이는 것도 아닌 마당에.
어쩌면 기대의 차이일지도 모르겠다.
딸아이에겐 어느 순간부턴가 그저 학교나 무사히 졸업하기를 바랄 정도로 기대를 접게 되었다.
그래서 뒤늦게 노력하는 아이가 대견하고 고마웠던 것이다.
그것은 남편보다 내가 더 했다.
남편은 끝까지 우리 딸아이에게 많은 자질이 있고 늦게라도 크게 빛을 보리란 믿음을 갖고 있었지만 나는 그렇지 못했다.
그저 먹고 사는데 지장 없을 기술이나 익힐 수 있었으면 하고 말았다.
남편은 진로가 결정된 지금도 여전히 기대를 갖고 있다.
그 분야에서 최선을 다해서 교수도 되고 성공도 하라며 독려한다.
하지만, 아들아이에겐 다른 방향의 기대와 욕심을 계속 지니고 있는 것이다.
아들 녀석도 지금은 일단 음악에 대해 취미로 생각할 뿐, 전공할 생각은 단념한 것처럼 보이긴 하는데.
우리가 욕심을 버리면 아들아이도 보다 진지하게 책임감 있게 자신의 꿈을 찾고 노력하게 될까.
휴,,, 어떻게 하면 이 놈이 제대로 철이 들까.
어떻게 하면 우리가 아이에게 제대로 길을 가르쳐줄까.
2009년 2월 1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