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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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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리버리 그녀


BY 선물 2010-07-30

나는 솔직히 좀 어리버리한 편이다.

얼핏 보이는 외양은 그렇게 심한 어리버리가 아닌데 하는 짓은 도대체가 야물지 못하다.

뭘 잃어버리기도 잘하고 넘어지기도 잘하고 부딪히기도 잘하고 때론 말조차 더듬거린다.

더구나 손까지 야물지 못하다.

묶인 비닐봉투도 잘 풀지 못해 결국은 쭉 찢어버리고 우편물은 처음에 조심해서 뜯다가는 결국 쫘악하고 찢어버린다. 묶을 때도 마찬가지다. 제대로 죄이지 못하고 느슨하게 묶어 자칫하면 스르르 풀릴 판이다.

 

물론 나의 이런 모습이 꼭 부정적으로만 생각되진 않는다. 내가 그렇게 여러모로 더듬하니까 다른 이들에게 무척 너그러워지는 편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오히려 나처럼 어수룩한 사람을 보면 더 반갑고 고마워진다. 아, 나만 그런 것이 아니구나 하는 동지애를 느끼며 위로를 받는다.

하지만, 가족들이나 자잘한 일상생활을 함께 하는 이들에겐 많은 아쉬움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리라. 잘 잊어버리고 잘 잃어버리고 잘 망가뜨리는 주부가 환영받을 수는 없다. 그나마 시부모님과 함께 살고 또 꼼꼼하고 찬찬한 남편 눈치 보느라 나름대로 긴장하며 사는 까닭에 조금 불편하기만 할 뿐, 나름대로 큰탈은 내지 않고 버티는 중이다.

 

그러나 잘 넘어지고 부딪히는 것은 여간 낭패가 아니다.

그 횟수가 크게 많은 것은 아니지만 주로 사람들의 눈이 많은 곳에서 그런 실수를 한다는 것이 문제다.

내 비록 격식이나 체면 따위에 크게 얽매이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부끄러움은 아는지라 스스로가 참 딱하게 여겨진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척>해야 할 때가 있다.

 

어제 저녁에도 미사를 보러 성당에 들어설 때 그런 낭패를 당했다.

커다란 통유리 두짝 문이 있었는데 그중 열려있는 문이 아닌 닫힌 문을 밀고 들어가려다 당한 일이다. 한손으로 문을 밀었지만 문은 굳게 닫혀있었고 닫혀있다는 것을 깨달았을때는 이미 내 얼굴과 몸이 그문을 뚫고 나갈 것처럼 빠르게 전진하고 있었다.

당연히 두꺼운 유리문과 얼굴이 꽈당 부딪혔고 얼굴의 돌출부위들, 이마, 코, 이빨 등은 큰 충격을 받았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런데 그런 와중에도 꿋꿋이 제 기능을 다하고 있는 나의 눈에는 유리 문 너머에 있는 한 무더기의 사람들이 보였다. 그곳에는 한 중년의 여인이 너무나 심하게 부딪히는 것을 보고 걱정하는 이들의 모습도 있긴 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짐작일 뿐, 내가 정확히 본 것은 엄마 아빠와 함께 서서 대놓고 깔깔거리며 웃는 어린 아이들이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차마 드러내놓고 웃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웃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상황인지라 얼굴근육이 매우 부자연스럽게 뒤틀리며 입을 가리는, 그러나 웃는 것이 한눈에도 확연한 참으로 <잔 인 하 고 도 몰 지 각 한>어른들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내가 누구인가. 이런 실수 쯤이야 그동안 숱하게 쌓아온 경험이고 마땅히 다음에 취해야 할 행동이 무엇인지도 훤하게 꿰고 있는 실수의 달인 아니던가. 내 몸은 뇌가 미처 명령을 내리기도 전에 먼저 자신이 행할 바를 알고 그대로 움직이고 있었다.

바로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는 것이다. 허리는 더 꼿꼿이 펴고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 왜들 그러세요 하는 눈빛으로 살짝 눈웃음지으며 또박또박 그들 앞을 지나쳐가는 것이다. 오히려 그들이 당황했을 것이다. 세상에 저토록 심하게 부딪혔는 데도 전혀 아파하지 않는 저 여인은 무쇠로 만든 인간이란 말인가.

그들의 모습을 뒤로 한 바로 그순간 극심한 고통이 찾아왔다. 저절로 눈물이 나왔다.코에서 왠지 비릿한 피냄새가 느껴지는 것도 같고 이마와 앞니는 심각한 통증이 느껴졌다. 또 윗입술이 유리 문에 달라붙으며 문드러질 때 이빨에 찍혔는지 금세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었다. 찰나와 같은 순간에도 나는 저런 사람들처럼 남의 실수를 보며 웃는 사람은 되지 말아야지 결심했는데 다시 드는 생각이 유리 문에 달라붙어 일그러지고 찌그러진 여자의 얼굴을 보면서도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도 참 괴물같은 사람일 것이란 생각도 들었다.

그래도 다행히 코피는 나지 않았고 미사 내내 통증은 계속 되었지만 고개 숙인 채로 그럭저럭 미사를 마칠 수 있었다. 차를 주차시키느라 늦게 온 남편도 내가 말을 꺼내기 전에는 상황을 몰랐으니 겉으로는 얼굴에 별 문제가 없었던 것이다.

그저 얼얼한 느낌이 계속 드는 채로 밥도 먹고 잠도 잘자고 일어나 거울을 보니 코가 좀 붓기는 했으나 그 정도면 통증에 비해 비교적 멀쩡한 모습이다. 남편은 치과에 한번 가 보라고 하지만 그 말은 염려보다는 놀리는 분위기가 압도적으로 강하게 느껴진다.

 

나는 자전거 타고 가다 브레이크를 잘못잡아 뒤집히는 바람에 곡예하듯 한바퀴 구르며 넘어졌을 때도 아주 우아한 모습으로 옷만 탁탁 털고 일어나 꼿꼿하게 걸어갔던 사람이다. 그땐 정말 병원에 가서 사진도 찍고 자전거도 완전히 망가질 만큼 제법 큰 사고였는데...

 

사실 이런 실수을 열거하자면 날밤을 새도 모자랄 것이다.

그중에서도 실수에 관한 글을 쓸 때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사건이 둘째 시누님 친구 분들을 모시고 식사하는 자리에서 일어난 실수이다.

그때 미끄러져서 봉변 당한 사연은 다음과 같다.

 

가까이 살던 둘째 형님이 친한 친구 몇 분을 모시고 우리 집으로 오셨다. 미리 내게 양해도 구하셨고 어머님께 인사도 드리고 싶다는 것을 특별히 마다할 이유도 없는지라 기꺼이 점심식사에 초대한 것이다. 형님 친구 분들께 예쁘게 보이고 싶은 맘에 핑크빛 원피스를 곱게 차려입고 정성껏 음식을 장만하며 조심스레 행동했다.

그런데 식탁에 음식을 차리며 얌전한 걸음걸이로 사뿐 사뿐 걷던 나는 깔아 놓은 신문지 너머로 튀김기름이 튄 줄도 모르고 걷다가 그만 미끄러지고 말았다. 원피스를 입고 `벌러덩'이란 표현이 딱 알맞을 우스꽝스런 모습으로 뻗어버린 여자의 모습이라니. 게다가 자그마하기라도 하면 모를까, 거의 170센티미터나 되는 큰키를 가진 기다란 여자의 그 모습이 얼마나 볼 만 했을런 지는 굳이 말할 필요도 없으리라.

게다가 그 놈의 체면이 뭔지 오뚝이로봇도 아니면서 기계처럼 발딱 일어나 방긋 웃음까지 보이며 "걱정 마셔요.전 아무렇지도 않아요."라는 말까지 하고 말았으니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차마 터뜨리지 못한 채 입안 가득 물고 참아야 했을 손님들의 고통도 나 못지 않았을 것이다.

넘어지는 모습과 발딱 일어서는 모습, 그리고 살짝 웃으며 상황을 애써 무마하려는 마무리과정까지 너무도 자연스러운 나를 보며 그분들은 쟤는 늘 저러나보다 생각하였을 것이다. 아,차라리 아프다며 방에 들어 가서 꼼짝 말 것을... 그 뒤 며칠을 나는 아픈 허리로 고생해야만 했다.

 

마음이 태평한 면이 있어서인지 나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면서도 잠을 잘 자는 편이다.

꿈까지 꾸며 잠을 잘 때도 있으니 그때 내 모습은 어쩌면 침이라도 흘렸을지도 모를 일이고 참으로 가관이었을 것이다..

한번은 머리가 이리저리 흔들리다가 뒤로 활짝 젖혀지면서 뒤통수로 유리 문을 세게 박았다.

순간 잠이 확 깬 나는 우선 젖혀진 머리를 앞으로 숙였고 도착역이 어딘지도 확인하지 않은 채 숙여진 머리 그대로 뚜벅뚜벅 전동차를 빠져나갔다.아마도 고개를 다시 든 것은 수십 걸음 앞으로 향한 뒤였을 것이다.

그리고 역시 나는 아무 일도 없었어. 하는 모습으로 다시 품위를 되찾았다.

 

종종 성당에서도 졸 때가 있는데 심할 때는 서 있는 중에도 다리가 푹 꺾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뒤통수가 따갑다. 그날 미사 중에는 서로 마주보며 평화의 인사를 나눌 때도 나는 끝까지 고개를 뒤로 돌리지 않고 그저 앞만 보며 인사를 나눈다.

그리고 계획까지 알뜰하게 세운다.

만약 그러다가 다리라도 꺾여 주저앉게 된다면 절대 졸지 않은 것처럼 아예 쓰러지는 시늉을 하리라 하는.

그 정도로 조절 못하는 졸음은 어쩌면 병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쓰러진 척 병원으로 실려가서 검사를 받아도 무방하리라 생각하며.

다행히 최근에는 그처럼 때와 장소를 분별하지 못하고 쏟아지는 잠이 많이 줄어든 듯하다.

 

이렇게 글을 통해서 내 부끄러운 실수들을 드러내는데 별 주저함이 없고 때로는 모임에서도 내 실수를 말하며 웃기도 하는데 막상 실수하는 그 자리에선 절대로 실수한 것을 인정하기 싫으니 이건 뭔 자존심인지 모르겠다.

 

차라리 넘어져서 아프면 얼굴 찌푸리며 아파하고, 또 졸다가 부딪히거나 혹여 침이라도 흘리게 되면 그냥 옷으로 한번 쓰윽 닦으며 앞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씨익 웃어버리는 편이 덜 창피한 건지도 모르겠다.

그것을 애써 숨기고 기를 써서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니 보는 이들이 더 실소를 금치 못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나도 가끔 길거리에서 넘어지는 어른들을 본다.

다쳤으면 어쩔까 하는 걱정이 물론 우선이다.

그 다음에는 넘어지는 모습의 우스꽝스러움을 떠올리며 얼굴의 근육이 제멋대로 움직이기도 한다. 그래도 대부분 그 앞에서는 끝까지 웃지 않는다. 웬만하면 못본 척 해 준다.

 

자신의 실수를 감추지 않고 거침없이 표현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처럼 극구 아닌 척 해야 숨쉬며 살 수 있는 사람도 있다.

 

혹시라도 길을 걷다가 우스꽝스럽게 넘어지거나 버스에서 머리를 창에 찧어대며 자는 사람을 만나거든 이 글을 쓰는 사람을 생각하며 다들 고개를 돌려주셔요. 부탁이에요.

 

 

2008년 11월 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