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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는 만큼, 꼭 그 만큼


BY 선물 2010-07-30

나를 버리고 살았던 시간들이 차라리 덜 힘들었나봅니다. 나를 상실한 시간들을 헤집고나와 나를 찾으려하니 진통이 생각보다 크네요. 이젠 꿈을 꾸고 싶습니다. 꿈꾸는 만큼, 꼭 그만큼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꿈을 가진 그대들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이 글은 내가 쓴 글을 모아 놓는 작가 방 메인화면에 쓰인 글귀이다. 방 이름도 <꿈꾸는 만큼, 꼭 그만큼>이다.
2003년 7월에 첫 글을 올려놓았으니 벌써 4년을 훌쩍 넘었다. 그 당시 나는 결혼 후 14년 만에 처음으로 글로써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기 시작했다. 글을 통해 세상과 소통하기 시작했고 글을 향한 내 정열을 조금씩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이 참 좋았다. 14년의 세월동안 나라는 존재는 거의 잊고 산 것 같았는데 글은 그렇게 잃어가는 나를 찾게 해 주었고 또 꿈을 꾸게 해 주었다. 이제 무언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은 희망을 주었던 것이다.
그로부터 4년. 여전히 비슷한 모습으로 글을 가까이 하며 지낸다. 그러나 예전의 나와는 왠지 조금 다른 모습이다. 처음 자판을 두드리며 마음을 찍어내던 내 눈빛은 분면 초롱초롱했을 것이나 지금은 눈빛이 달라졌다. 안으로만 꼭꼭 갇혀 있던 내가 세상과 소통하며 가졌던 신선한 행복을 뒤로 하고 지금의 나는 다시 나를 가두려 한다. 막연하기는 했으나 그래도 나름의 희망을 갖고 꾸었던 꿈도 조금씩 접으려 하는 나를 보기도 한다. 그것은 확실히 두려운 일이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무엇이 나를 다시 뒷걸음질치게 만들었을까 자문해본다.
그간의 세월은 사람이 살아가면서 겪을 수 있는 여러 고통들 중 제법 심각한 몇 가지를 내가 호되게 겪은 세월이기도 하다. 그 강도가 좀 심하게 느껴져서 그냥 털퍼덕 주저앉아버리려 했던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어떻게든 힘을 내서 다시 추스르고 나를 일으켜 세웠다. 하지만, 살아간다는 일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한 순간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고 내 삶은 희망보다는 절망으로 얼룩지며 상처로 기워지기 시작했다.

한때 밥처럼 글을 먹으며 내 인생을 살찌우고자 했던 소망은 내게 닥쳐 온 여러 현실적인 어려움으로 인해 사금파리처럼 부서졌다. 현실은 자꾸만 글을 비난했다. 글은 현실을 원망하며 힘겨운 얼굴로 애처롭게 나를 바라보았다. 둘은 마치 시소를 타듯 서로 오르락내리락 내 맘을 저울질했다. 현실은 지금 당장 내 삶이 이렇게 힘든데 한가롭게 글이나 쓰고 있을 형편이냐며 글을 한심한 존재로 생각하게 만들었고 글은 그래도 자신을 통해 위로라도 받을 수 있지 않겠냐며 미약하나마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자 안간힘을 썼다. 그래서 때때로 힘든 와중에도 어렵사리 글을 쓰기도 했으나 그보다는 사실 글이 역부족으로 내 삶에서 밀려날 때가 더 많았다. 그런 때 나는 참 비참해졌다. 어찌 글 쓰는 소박한 낙도 내겐 허락되지 않을까 서럽기만 했다.

뿐만 아니라, 글과의 만남에서도 나는 어려움과 맞닥뜨려야 했다. 처음에는 그냥 글을 쓴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했다.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그냥 수다를 떨 듯 그렇게 낙서처럼 끄적거릴 수 있는 시간들이 좋았다. 그런 글쓰기는 나를 자유롭게 만들었다. 형식에서도, 내용에서도.
그러나 어느 시점부터인지 내게 자그만 욕심들이 자글자글 끓기 시작했다. 분명히 처음에는 그것이 아니었는데 글을 쓰는 횟수가 늘어 감에 따라 조금씩 나를 드러내고 싶은 교만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내 글에 대한 반응들에 나도 곧바로 반응하며 인정을 받고 싶어 했다. 그저 마음 한 자락 풀어놓고자 했던 글에서 어느새 남에게 보이기 위한 글로 색깔이 변하기 시작하자 글쓰기는 행복이 아닌 고통으로 그 색깔을 달리 했다. 한때 자유로웠던 나의 글은 어느새 묵직한 사슬에 묶이기 시작했다. 지천으로 널려 있던 이야깃거리들은 순식간에 모습을 감추었다. 글 샘은 정갈하게 비워진 마음에 맑게 고이는 법인데 욕심이 그 자리를 대신하니 샘이 고갈되고 만 것이다. 욕심은 그렇게 글과 나와의 밀월관계를 자꾸만 삐거덕거리게 만들고 말았다.

하지만, 현실적인 고통을 겪으면서 글로 인정받으려는 욕심 따위는 더 이상 존재할 수가 없었다. 그저 글을 가까이 할 수 있다는 것만 해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절절히 그 심정이 되었다. 또한, 글을 통해 선물 받았던 꿈꿀 수 있는 행복도 처음과는 많이 달라졌다.

꿈은 어릴 때부터 참 좋아했던 단어이다.
내가 좋아했던 단어 중에는 꿈, 꽃, 별, 달, 정 등등 한 글자 단어가 유난히 많다.
그중에서도 꿈은 세월이 흐른 지금에도 시간을 뛰어 넘어 언제나 나를 설레게 만드는 단어이다. 그리고 꿈은 누구나 가질 수 있기에 더 고맙고 마음이 끌린다.
사실 세상은 그리 공평하지 않다. 살아갈수록 더 그런 느낌을 많이 받는다.
많은 것을 누리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천지 차이가 되어 서로 다른 세상을 살아간다. 그러나 그것을 훌쩍 뛰어 넘을 수 있는 세계가 있으니 그것이 바로 꿈의 세계이다.
내가 어떤 희망을 품고 어떤 꿈을 키우며 살아가든 그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을 수 있다. 그래서 사실 이왕이면 좀 더 근사하고 정말 내가 간절히 원하는 꿈을 꾸고 싶다. 꿈조차 꿀 수 없다면 얼마나 삶이 건조할 것인가? 간절한 소망은 겹겹이 쌓여 뜻을 이루게 할 힘을 키워줄 것이다. 때문에 나도 삶이 고단한 중에도 꿈은 놓지 않고 살려고 했다. 그러나 예전에 가졌던 야무지고 화려한 꿈은 과거형이 되었다.

이제 더 이상 화려한 꿈은 꾸지 않는다. 그리고 더 이상 그런 꿈을 꿀 수 없는 나를 연민하지도 않는다. 내가 가질 수 있는 행복을 줄 만큼의 꿈만 꾸며 살아가고 싶다. 비록 내 어깨에 지워져 있는 삶이 너무 힘들다할지라도 그 휴식처가 글이 될 수 있을 정도로만 힘들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꿈이다. 내 감히 어찌 글을, 하는 생각을 하며 영원히 글에서 추방당하지 않고만 살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지금의 소망이다. 이젠 이 꿈조차 작다거나 소박하다고 말할 수 없다. 그조차 어려울 지경이 되면 그것이 얼마나 간절한 소망이 되는지를 잘 알고 있는 까닭이다.

창 밖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솔솔 귓불을 스치며 헤엄쳐 다니고 있다.
무더웠던 여름도 이제 계절의 소명을 다 했는지 그 기운이 제법 쇠약하게 느껴진다. 바통 터치하듯 가을이 곧 그 자리를 대신하겠지. 뜨거운 입김 헉헉 내뱉으며 숨차하던 내 삶의 더운 여름도 이제 조금은 쉬어주었으면······.

그저 밥처럼 편안하게, 자연스럽게 글을 먹고 살 수 있을 만큼의 행복이라도 허락되었으면 하는 꿈조차 욕심은 아니기를 빌며 오늘도 나는 톡톡톡 자판을 두드린다.

 

2006년 9월 1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