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녀 1남의 외며느리라고 하면 다들 시누이들의 등쌀에 좀 시달릴 것이라 짐작할 것이다.
하지만, 남편이 막내인지라 모두 손위 시누님들이고 다들 경우 반듯한 분들이라 오히려 그분들의 존재가 내겐 긍정적 역할을 한다.
경제적으로도 모두 안정되어 있어서 우리에게 크고 작은 도움을 주시려고 애쓰신다.
형님들께 우리 집은 친정이다.
부모님이 살아 계신 친정이니 그야말로 온전한 의미의 친정이다.
막내동생이 하는 일이 잘 되지 않아 경제적으로 궁핍할 때면 안타까워 하며 최대한 돌봐주신다.
사실 달리 생각해서 원망하는 마음을 가질 수도 있는 일이다.
어쨌거나 부모님께 걱정만 끼쳐드리는 동생이니 말이다.
그러나 형님들은 한결 같이 동생의 든든한 후원자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으신다.
한때 형님들의 자랑거리였던 그 귀엽고 잘난 동생이 하루하루 말라 가는 것 같아 애간장을 다 태운다. 누나의 마음이라기보다 차라리 엄마의 마음이다.
형님들은 또한 모두 효녀들이다.
나도 딸이지만 우리 형님들 같은 효녀는 드문 것 같다.
과거 아버님은 어머님의 몸과 마음 모두에 심각한 고생을 시키셨다.
그 고통 중에서도 어머니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시고 5남매를 희생으로써 모두 반듯하게 키워내신 은혜를 절절하게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우리 집은 친정이란 의미에서보다는 어머니가 계신 곳이란 점에서 그분들께 더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남편은 그런 어머니의 자리를 지켜내게 한 일등공신이다.
만약 남편이 태어나지 않았다면 달리 어떻게든 아들을 얻어낼 집안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누나들은 동생이 언제나 기특하고 고마웠다.
하지만, 동생은 집안의 기대처럼 뻗어가지 못했다.
그래서 형님들의 가슴 속에 칠해진 친정의 색깔은 회색빛이 되었다.
동생이 잘되는 것이 친정이 잘되는 것이란 공식이 절로 성립된다.
그분들께 올케가 되는 나는 참으로 막중한 자리에 있는 사람이다.
아마 결혼 후에 내가 어떤 마음으로 어머님을 모시는지가 그분들의 초미의 관심사였을 것이다.
내년이면 결혼 20년.
아직도 형님들이 나를 지켜 보는 지는 알 수 없으나 나는 그분들의 존재가 단 한 번도 성가셨던 적이 없다.
아무리 잘해주고 마음을 써도 올케에게 시누란 존재는 어느 정도 불편한 법이리라.
그런데도 내가 그것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은 그분들이 진정으로 나를 믿어주시기 때문이다.
형님들은 우선적으로 동생과 조카들에게 잘하시지만, 올케인 내게도 잘하려고 많이 애쓰신다.
나는 알고 있다.
그 마음을 읽는다.
형님들이 나에게 잘하는 것은 바로 어머님께 잘하는 것이 된다.
형님들은 친정엄마가 당신들에게 아무리 자상하고 지극해도 며느리에게는 엄연한 시어머님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계신다.
사실 이것은 무척 중요한 문제이다.
이 생각을 못하면 무조건 올케가 미울 수 있다.
어떤 사소한 불협화음에도 자꾸 편을 들게 될 것이다.
어떻게든 우리 엄마만 옳고 올케는 잘못하는 것이라고 판단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 형님들은 그 부분에서는 같은 며느리의 입장이 되어 오히려 더 내 편이 되어 주신다.
사실 어떤 부딪힘이 있을 때를 보면 며느리인 나와의 문제보다는 아들과의 문제가 대부분이다.
그럼에도 어머님의 원망은 대개 나를 향하는 것으로 끝을 맺으신다.
그럴 아들이 아닌데 네가 중간에서 역할을 제대로 못 하는 것이다. 그렇게 단정 짓고 싶어 하신다.
물론 서로 좋은 마음으로 일이 해결되면 어머님도 당신의 억지를 인정하실 때도 있다.
그런 미묘한 문제들에 대해서도 형님들은 내 입장이 되어 생각해 주신다.
형님들은 또 어머님을 얼마 간이라도 당신들 집에 어머님을 모셔가고 싶어하신다.
맛있는 것도 해 드리고 파마도 시켜 드리고 싶어하신다.
그리고 무엇보다 단 얼마 간이라도 나를 자유롭게 해 주고 싶어 하시는 것이다.
하지만, 어머님은 <절대적>으로 거부하신다. 딸 집은 절대 발 뻗고 잘 수 없는 곳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병원이나 다른 핑계로 어떻게든 어머님을 모셔가곤 했는데 그것도 오래 전의 일이 되었다.
어머님과 옥신각신하는 것이 너무도 힘든 탓이다.
그러나 형님들의 그런 맘을 읽은 것만으로도 그 배려가 진심으로 감사하다.
며칠 전 막내 형님과의 통화에서도 참 좋은 위로를 받았다.
원래 말씀이 드문 형님이시라 어머님도 때때로 조심스러운 맘을 갖는 따님이시다.
형님은 우리 부부에게 부모님께 너무 잘 해 드리려 하지 말라는 말씀을 하셨다.
잘 해 드리라는 말씀도 통 안 하시던 분들이지만 잘해 드리려 하지 말라는 말씀을 듣고보니 묘한 느낌이 들었다.
네가 행복하지 않으면 부모님이 무슨 소용이니?
대충 하고 네 맘을 편하게 가져.
살아보니 그렇더라.
자식도 부모도 다 소용없더라.
내 맘 편한 게 최고더라. 그러니 너를 우선으로 해.
이 형님은 바로 얼마 전에도 어머님 생신 때 눈물로 애정을 표현하는 편지를 썼던 분이다.
얼마나 어머니께 애틋한 맘을 가지셨는지.
그런데 내게 나를 더 위하란 말씀을 하신다.
사실 내가 그런 말씀을 들을 정도의 며느리는 턱도 아닌데.
그러나 큰 위로가 된 그 말씀은 결국 당신 어머니께도 선물이 되는 말씀이었다.
위로를 받은 내가 정말 나를 우선으로 해야지 하고 말겠는가.
고마우니 좀 더 잘해 드려야 하는데 하는 맘이 우러난다.
나를 무조건 믿어주시는 형님들이 계셔서 나는 사실 짐이 더 무거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