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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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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BY 선물 2007-06-20

잠든 아이의 모습은 순하다.

순한 아이의 모습을 보는 나는 얼마간 평화롭다.

좀 더 이대로 아이를 자게 해 주고 싶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아이를 깨운다.

등교시간에 맞추어야 하니까.

마음을 다잡고 최대한 다정한 목소리로 아이의 잠을 깨웠다.

절로 찌푸려지는 아이의 얼굴. 아이는 오 분만. 한다.

미리 예상해둔 오 분인지라 나는 잠시 기다린다.

기다리는 동안 이 놈이 또 안 일어나면 어떡하나. 슬슬 걱정이 된다.

화장실에 가서도 한참은 있는 놈이라 더 지체하다간 지각할 것이기 뻔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아이는 깨우는 내게 또다시 삼 분만 한다.

조급한 내 맘은 더 이상 여유롭지 못하고 너그럽지 못하다.

조금 전 아이가 가진 순한 모습도 내가 누린 평화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리고 20분. 작은 전쟁의 시간이다. 전쟁은 아이가 집에서 나간 뒤, 끝난다.

그래도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내가 하는 말은 과장될 만큼 부드럽다.

잘 다녀와, 일찍 와~


그리고 다시 변함없는 일과가 이어진다.

요즘은 낮 시간에도 집이 분주하다.

사무실이 가까워 주로 집에서 점심식사를 하는 남편과 얼마 전 병원에서 수술하고 퇴원하신 아버님까지 집에 계신 까닭이다.

보통의 주부들은 이 시간이 비교적 자신을 위해 보낼 수 있는 시간이리라.

그러나 이미 이런 생활에 익숙해져 있는 나는 별로 불만스럽지 않다.

그저 이따금씩 느껴지는 답답함만 잘 견디어내면 된다.


어머님은 여전히 내게 이런저런 간섭을 하신다.

부엌에서 일할 때 어머님은 조금 떨어진 거실에서 마치 당신의 존재 역할이 그것인 것처럼 그렇게 내게 이런 저런 지시를 하신다.

17년 째 듣는 말씀도 있다.

사실 나는 이제 그것이 싫다.

익숙해진다고 무디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다만 내가 싫은 것은 싫은 것이고 그 분은 그렇게라도 하시면서 당신의 존재감을 확인하시는 것이리라 그렇게 생각하려 애쓴다.

누가 내게 하루 종일 집에 있으면서 입 다물고 살라고 하면 얼마나 괴로울 것인가.

그렇게 아무 취미도 없고 몸은 불편하신 어머님과 함께 사는 며느리로선 감수해야 할 일들이 많은 법이다.


어제 본 글이 있다.

물만 먹고 산다는 분의 말씀이다.

노인이 편찮으신 것은 자식들에게 효도할 기회를 주기 위한 배려이다. 그를 위해 자신의 온 몸을 내어 놓는 참으로 훌륭한 희생이다.


나의 공감 여부와는 상관없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정신세계가 놀랍다.


아이는 학교에서 돌아와서 먹고 잠시 자고 학원에 간다.

늦은 시각, 집에 와서 또 먹고 잠시 텔레비전을 보거나 핸드폰 게임을 하다가 잔다.

내일 아침 또 잠 부족으로 괴로워하는 아이를 보기 두려워 나는 일찍 자기를 강요하고 그 과정에서 또다시 우리는 짧은 실랑이를 한다.


최근에는 비교적 잠자기 전 남편과 함께 기도를 드리고 자는 날도 많아졌다.


오늘 하루, 나는 어떻게 살았나.

일어나서 먹고 할 일 하고 가족들과 이런 저런 부딪힘을 갖고 텔레비전도 보고 그렇게 평범한 하루를 보냈다.

그러나 나는 안다.

이런 하루.

얼마나 감사해야 하는 하루인지를······.

이런 하루에 목 메이는 시간이 얼마나 많았는지를 알기에 나는 정말 절로 감사의 기도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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