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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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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안의 자식


BY 선물 2006-09-28

저녁이면 호수공원으로 산보를 다닌다.

막둥이도 함께 데리고 나간다.

처음에는 목줄을 불편해하던 막둥이도 이젠 목줄을 해주면 산보 가는 줄 알고 신이 나 꼬리를 흔든다.

막둥이를 데리고 다니다보면 다른 강아지들도 친근하게 느껴지고 또 유심히 쳐다보게 된다.

그런데 아직 막둥이보다 작은 강아지를 본 적이 없다.

워낙 작은 종자라고 하더니 정말 그런 것 같다.

사람들은 우선은 작은 강아지를 좋아하는 듯 하다. 귀엽고 예쁘다고 다들 한마디씩 한다.

인형 같다고도 하고 호수공원 다니는 강아지들 중 제일로 예쁘다고 말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우리 막둥이를 무섭다며 피하는 어른들도 있다.

지금 와서 생각하니 나도 그랬는데 이젠 그런 사람들이 참 신기하다.

이렇게 막둥이를 데리고 다니며 칭찬 듣는 재미가 제법이다.

아무 말 없이 지나가면 괜히 섭섭해진다.


아이들이 어릴 때 생각이 난다.

내 눈에는 너무나 예쁘고 잘났던 아이들이다.

그런데 딸아이는 하관이 빠르게 생겨 아기 얼굴로는 그리 예쁜 얼굴이 못되었다.

그래도 내 눈엔 우리 아이보다 더 예쁜 아이가 없어 보였다.

아이를 보며 아무 말 없이 지나가면 서운하다 못해 괘씸한 생각까지 들었다.

그러나 후일 아이 어릴 때 사진을 보니 과연 예쁘다는 인사를 해줄 정도는 못 되었구나 하고 인정하게 되었다.

딸아이를 데리고 나가면 항상 듣는 말이 엄마가 낫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을 때 참으로 속이 상했다. 겪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엄마보다 자식 예쁘다 해야지 듣기 좋고 그 반대이면 안 듣느니 못한 말이라는 것을.

나도 어릴 때 그랬다.

엄마는 정말 대단한 미인이었다.

시대를 잘 타고 났으면 연예인이 되고도 남을 만큼 아름다우신 분이다.

엄마가 한번 학교를 다녀가면 학교가 떠들썩했다.

네가 엄마 닮아 예쁘구나 하는 말을 듣기도 했으나 그보다는 너도 엄마 닮았으면 더 나았을 텐데 하는 말을 주로 들었다.

나는 그 말이 듣기 좋았지만 엄마는 그렇지가 못했나보았다.

네가 낫다. 키도 크고 날씬하고······.

하지만, 아무도 인정하지 않을 말씀이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시어머님께서 날 부르시며 하신 말씀도 사람들이 신부보다 친정엄마가 더 곱다고 난리더라 이 말씀이셨다.

근데 그건 좀 그랬다.

그래도 결혼식 때 신부칭찬 아닌 엄마 칭찬이라니 민망스러웠다.


지금 내 눈에는 딸아이도 정말 예뻐졌다고 생각되지만 아들아이는 정말 처음부터 객관적으로도 인물이 좋았다.

다들 지나가며 한 마디씩 칭찬해주었다.

어딜 가도 귀염을 받았다.

학교에 가서 선생님을 뵐 때마다 듣는 이야기가 장난이 좀 심할 때도 있지만 전혀 밉지 않은 귀여운 아이라는 것이었다. 예절도 바르다는 말씀도 곁들이셨다.

초등학교 1학년에서 6학년 때까지 단 한번도 예외 없이 아들아인 칭찬을 들었다.

그래서 늘 가슴 속에 자랑으로 자리 잡은 아이였다.


그런데 중학생이 되면서 조금씩 달라지는 조짐이 느껴졌다.

하루는 미장원에 다녀온 아이의 머리가 이상했다.

요즘 유행하는 구레나룻 머리를 기르고 뒷머리를 길게 하는 스타일이었다.

눈에 너무 거슬렸다.

우리 아이에겐 일단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한달을 꾹 참고 다음 이발하러 갈 때는 내가 함께 갔다.

내가 주문하는 머리로 자른 뒤, 만족하며 나오는데 아이의 눈빛이 달라보였다.

눈에서 눈물이 후두둑 떨어졌다.

너무나 놀랐다.

심하게 말하면 나를 증오하는 눈빛처럼 보였다.

엄마 정말 싫어.

아이가 내뱉은 말이었다.

그 뒤로는 늘 아이가 원하는 머리로 잘랐고 난 그 보기 싫은 모습을 감당하느라 도를 닦게 되었다.

더 이상은 내가 자랑할 만한 아이의 모습이 아니었다.

자기 눈에는 저 얼굴이, 저 모습이 어떻게 괜찮아 보일까 정말 큰 의문이었다.

그러나 아이는 말한다.

아빠처럼 머리를 자르면 친구들이 다 놀려서 쪽 팔린다고.

그러고 보니 아이 친구들 머리가 한결 같이 그렇게 보기 흉한 모습이었다.

남편도 아이 모습에 질색하는 기색이다.

그래서 벼르고 벼르다가 직접 데리고 가서 어른들 머리모양으로 잘라버렸다.

다시 그 머리로 돌아온 아이를 보니 정말 돌아 온 탕자 마냥 너무나 예쁘고 대견했다.

아이의 마음속은 어떨지 모르나 우선은 내가 살 것 같았다.

예쁘다는 내 말에 아들아이는 이런 말을 한다.

다신 이 머리 안 해.

머리를 자른 다음 날 아이가 학교로 가는 모습을 베란다에서 바라보았다.

더운 줄도 모르고 하얀색 벙거지 모자를 덮어 쓴 학생의 뒷모습이 아무래도 우리 아이 같았다.

아니나 다를까, 나중에 학교에서 돌아 온 아이의 가방에서 역시 그 하얀 모자가 나왔다.

얘야. 병자 같더라. 모자 쓰지 말고 다니면 안 될까.

아인 절대 안 된다는 말을 한다.

학교에서 놀림을 받았다고 했다.

한숨이 툭 터져 나왔다.

며칠 후 한 모범생 아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학교에서 선생님이 아이들 앞에서 이 아이 머리를 칭찬하며 모두 얘처럼 잘라라 하고 말씀하셨는데 그 순간 아이는 죽고 싶었다는 이야기를 엄마에게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왜 다른 아이들처럼 머리를 자르지 못하게 하고 왜 다른 아이들처럼 슬리퍼 신고 다니지 못하게 하냐며 버럭 소리를 지르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너무도 엄마에게 순종적이라고 소문난 아이라 나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아, 이젠 나도 정말 포기해야겠구나.

아이 머리 모양이 이상해진 뒤로는 아무도 아들아이 칭찬을 하지 않았다.

내 눈에 그리 보기 싫은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오죽하랴.


옛날 이 아이가 내가 자기 유치원에 데리러 갈 때 슬리퍼를 신으면 아는 척 하지 말라는 말을 한 아이이다.

엄마가 예쁘게 보이면 좋다고 예쁜 옷 입고 오라고 유난히 신경 썼던 아이다.

딸아이도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지금은 이도 저도 아니고 엄마를 신경 쓰지도 않는다.


아이는 알까.

부모님은 물론이고 하물며 강아지 칭찬에도 그리 신이 나거늘 자식은 오죽 할까.

딸아이도 중 2때 그리도 나를 힘들게 하더니 늘 자랑거리였던 아들아이까지 나를 속상하게 할 줄은 정말 몰랐다.

하지만, 이게 꼭 아들아이 탓만은 아님을 나도 알고 있다.

내 욕심.

내 기대.

내가 나를 힘들게 하고 있음을 나도 잘 알고 인정한다.

그럼에도 쉬 포기할 수 없는 것은 집착일까, 애정일까.


이제 곧 머리를 잘라야 할 때가 다가온다.

정말 최악의 경우 양아치 같은 머리가 될 수도 있다.

어쨌든 잘 구슬려 최악의 상황은 피해야지. 학교에서 허용하는 선을 넘지는 않게 잘 달래야지.

어쩔 것인가, 내가 행복하면 아들아인 울적하고 내가 눈 질끈 감으면 아이는 행복하거늘.

하긴, 어떤 엄마는 아이를 데려가서 직접 구레나룻 내려오는 머리로 잘라주기도 했다는데······. 

나는 남편 눈치도 슬슬 보이면서 긴장이 된다.

남편을 설득 시킬 일도 큰 부담이다.

그러나 한 가지 위로가 되는 것은 이런 고민을 가진 집이 너무도 많음을 알았다는 것이다.

특히 이 문제로 아버지와 아들 간에 깊은 골이 생긴 집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고민이 나만의 것이 아님을 안다는 것은 그래도 위로가 된다.



아, 정말 징그러운 사춘기여.

해맑은 내 아이들을 제발 다시 돌려다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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