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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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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엄마들...


BY 선물 2005-04-12

둘째 아이 학교 학부모모임에 다녀왔다.
엄마들과 얼굴을 익히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아이의 학교생활에 대해 좀 더 잘 알 수 있겠지.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아이에게도 도움이 될 테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늘 그런 것처럼 아이들 학원이야기나 친구관계 등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고 시험대비를 위해 필요한 정보들을 주고 받았다.
또한 이런 모임에서 으레 그러하듯 아이에 대해 자랑할 것이 많은 엄마는 자랑을 했고 옆에서 수긍하는 엄마들은 또 기꺼이 그런 아이를 칭찬해주었다.
아이에 대해 별로 내세울 것이 없는 엄마들은 나름대로 칭찬받는 아이에 대한 부러움과 그렇지 못한 내 아이에 대한 안타까움을 느끼며 속상해 했을 것이다.

잘나지 못한 엄마도 이런 때 아이 덕분에 우쭐해지기도 하고 그 반대일 경우 풀이 죽기도 한다.

그러나 지금은 다행히 학년 초라서 대부분의 엄마들이 그런대로 편한 마음으로 만날 수 있었다. 물론 그 평화는 곧 시작될 중간고사 결과가 나오는 대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나도 지금은 아이의 가능성을 믿기에 기죽지 않고 모임에 다녀왔다.
아이 반의 엄마들 중 3분의 1 정도가 모임에 나왔고 한 달 후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하고 헤어졌다. 그러나 그 때 어느 정도 나올지는 잘 알 수가 없다.

가까이 사는 두 엄마가 있다.
한 엄마는 이번 모임에 함께 갔고 한 엄마는 모임에 가질 않았다.
가지 않은 엄마에게 전화를 했다. 다음 번엔 함께 가자고...
그런데 그 엄마는 모임에 갈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왜일까? 그런 모임에 참석하면 돈이 제법 들기 때문에 가기 싫다는 엄마들이 많은데 순간적으로 그 엄마도 그 이유때문인가 생각했다.

그러나 의외의 대답을 듣게 되었다.
그런 모임에 가면 자기가 마음의 평화를 잃을 것 같아서라는 것이다.
모여서 할 이야기는 뻔한데 괜히 그런데 다녀와서 아이만 힘들게 하고 자기 속이나 끓일까봐 아예 참석하기 싫다는 것이었다.

중간고사가 3주가 채 남지 않았다.
기타를 배우는 둘째 아이에게 기타교습을 한달만 쉬라고 했다.
아이는 별로 그럴 마음이 없었지만 이번 달은 중학교 들어와서 첫 시험이니만큼 시험공부가 더 중요하니 그렇게 하라는 엄마 말에 더 이상 토달지 않고 그대로 따랐다.
모임에 가지 않은 엄마의 아이도 우리 아이와 함께 기타를 배우는데 그 아이는 계속 기타학원에 나가고 있다..
그 엄마가 말했다.
학교 다녀와서 기타학원까지 다녀오면 아이가 몹시 피곤할 텐데 엄마욕심으로 공부하라고 채근하기 싫어요. 그냥 아이가 편했으면 좋겠어요.

그냥 아이가 편했으면 좋겠어요. 그 말이 내 귀에 계속 맴맴 여운을 남긴다.

나와 함께 모임에 간 엄마는 내게 여러 정보를 알려주었다.
어떤 과목은 어떻게 공부하고 어떤 과목은 수행평가를 어떻게 준비해야 하고....

내가 원했던 정보를 많이 얻었는데 정말 그게 나를 더 옥죄고 불안하게 만들었다.
해야할 것은 너무 많고 시간은 부족하고 불안한 맘에 아이를 들들 볶게 되었다.
볶는다고 아이가 달라질 것은 별로 없단 것을 경험으로 알고 있건만 그래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또 다른 한 엄마가 있다.
전화로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 얼마 전 쪽지시험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 아이도 그 아이도 용케 100점을 받은 시험이다.
아이가 100점이라고 말했을 때 별로 중요하지 않은 쪽지시험이라 내 반응은 그냥 시큰둥했다.
아이가 말했다. 이런 때는 칭찬해줘야 하는 거라고...
그 이야기를 듣고나서야 앗차하고 칭찬을 해주었다.
내 기분이 즐거워서 흔쾌히 해 주는 칭찬이 아닌, 그저 그렇게 해 주는 것이 엄마가 취해야 할 옳은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에... 한참 부족하고 부끄러운 생각이지만 어쨌든 나는 그랬다. 만약 성적에 반영되는 시험이었다면 조금은 반응이 달랐으리라.

그런데 그 엄마는 너무나 감격한 목소리였다.
자기 아들에게 인간이 아니라고 말했다한다.
어떻게 인간이 실수 하나 없이 100점을 맞냐고...
엄마도 아빠도 그렇게 못했다며 축제 분위기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내게 말한다.
자기 부부는 그렇게 공부 잘 하지 못했는데 어떻게 자식에게서 그런 욕심을 내겠냐고...
그래서 아이가 못해도 미운 맘이 생기질 않고 아이가 잘하면 그저 신기하고 대견스럽다고 한다.
나는...
분명한 것은 내가 하던 것보다는 아이가 훨씬 잘 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모든 면에서 나보다 낫기를 욕심내고 있다. 나한테서 나온 아이, 얼마나 더 잘나기를 원하는가?
나는 알면서도 모르고싶어한다.

내 눈은 온통 아이만을 바라보고 있다.
아이를 통해 내 행복을 찾고자한다.
진정한 아이의 행복을 바라기보다 은연 중에 아이를 통한 내 행복을 얻기를 원하고 있다.
지금 내가 바라는 것이 정말 아이의 행복인가, 내 행복인가.

이웃엄마들을 다시 생각한다.
모임에 가지 않았던 엄마, 100점은 인간의 결과가 아니라며 감사하며 웃던 엄마.

나는 자꾸 한 엄마에게 마음이 끌린다.
모임에 가질 않았던 엄마이다.
그이 얼굴을 보면 늘 평화롭다.
고요하고 무욕의 행복이 잔잔하게 깔려있다.
몇마디를 나눠도 편안해진다.
나는 그 엄마랑 가까워지고 싶지만 그이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어쩌면어쩌면 나를 만나서 그 평화가 흔들릴 수도 있을 테니까...

100점에 감격하던 엄마와의 만남도 즐거울 것 같다.
만나서 더 잘난 사람이고싶은 마음이 하나도 생기질 않을 것 같은 사람.
긴장도 없고 그저 있는 그대로를 보이면 더 매력있게 느껴질 것 같은 사람.
그러나 아직 친해지진 못했다. 그냥 호감만 가득이다.

아이들이 있다.
환하고 늘 웃을 일이 많은 아이와 어딘지 지쳐보이고 힘들어 보이는 아이.
그러고보니 위에서 말한 그 두 엄마의 아이들은 늘 웃고지낸다.
정말 진짜로.... 늘 환하다.

좀 힘들어보이는 아이들의 엄마에게도 공통점은 있다.
그것을 꼭 나쁘다 말하고싶지 않다.
그저 생각의 차이이므로...

우리 아이가 이런 말을 한다.
사는게 너무 재미있다고...
초등학교 때와 별반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친구들과 어울려다니며 신나게 논다.
혼자 속으로 생각한다. 너는 너무 재미있는데 엄마는 너무 불안하다. 그런데도 엄마도 좋다. 불안하지만 그래도 덩달아 즐겁다.

모든 것을 아이에게 맡기고 아이 뜻대로 살게 하는 또 다른 엄마가 있었다.
불안하지 않냐고 물었다.
그 엄마가 말했다.
자기 아이는 변호사가 될 수도 있고 꽃집아가씨가 될 수도 있을 거라고...
그 어느 자리에 서게 되든지 자기 자리를 소중하 여기고 행복해할줄 아는 마음을 갖는 힘. 그것만 아이가 배우면 된다고 했다.

어떤 설문조사에서 지금 행복하냐는 질문을 던졌더니 그렇다는 대답이 대략 60퍼센트를 넘는 수치가 나왔다고 한다. 어떤 생각에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보다 적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리고 돈과 행복의 상관관계를 조사해보았더니 돈이 많을수록 행복지수가 높게 나왔다고 한다. 분명 돈이 많을수록 살기가 좋을 것이다. 그러나 돈이 많아 불행하게 되는 사람들, 가족들도 많이 있다.

또 명예를 귀히 여기는 사람들은 명예가, 권력을 높이 여기는 사람들은 권력이 행복을 주리라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좇아서 취한 사람들도 오히려 그때문에 행복하지 못한 것도 숱하게 보았다.

예전보다 훨씬 풍요로와졌지만 많은 이들은 옛날이 좋았다며 그 때의 소박한 행복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돈이 많으면 행복하리라 생각하지만 실제로 그들이 그리워하는 것은 부족했을 때의 소박한 행복들이었다. 부족하여 작은 것도 귀히 여기고 감사할 줄 알던 때가 넘치고 넘쳐도 끊임없이 욕심에 갈증을 느끼는 요즘보다는 훨씬 마음 따스했으리라.

객관적으로 행복할 조건들을 다 갖추었는데도, 너무너무 잘났는데도 그냥 생을 접어버리는 사람이 많다. 행복해할 줄 모르기 때문이다.
결국은 행복을 아는 힘. 행복을 배우는 힘. 그것이 가장 강한 힘이다.

나도 아이가 그것을 배웠으면 좋겠다.
아니, 나도 그것을 배웠으면 좋겠다.

사는게 즐겁다는 아이의 말을 보석처럼 빛나게 들을 수 있는 그런 힘을 갈망한다.
생각의 차이는 인정하지만 나는 편한 엄마들이 좋다.
그러나 나자신은 아직 편한 엄마가 아니다. 여태까지의 나를 이룬 세월이 있으므로 머리로 알고 있다하여 크게 변화할 수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마도 한참은 더 도를 닦아야 하리라.
 
조만간 편한 엄마들에게 다가가야지. 그러다보면 조금씩 나도 스미듯 그들을 닮아갈 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