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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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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을 수 있는 고통은 차라리 아름답습니다.


BY 선물 2003-10-07

아침에 신문을 펼쳐 보았습니다. 제 눈길은 가족 사진 한 장이 실린 기사를 따라 갑니다. 다운 증후군을 앓고 있는 아이와 그 가족들의 이야기를 담은 기사였습니다.

그 가족들의 표정은 정말 꾸밈없이 밝아 보였고 장애를 앓고 있는 아들의 얼굴도 마찬가지로 정말 밝아 보였습니다. 웃는 얼굴은 언제나 아름답게 보여서 축 처져 있던 제 마음까지 환하게 만듭니다. 기사의 내용 중 제 가슴에 참으로 소중하게 와 닿는 말이 있었습니다. 아들이 장애를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된 뒤 남편이 아내에게 한 말이었습니다.

"당신이나 나나 강인한 성격을 지녔으니 저 아이가 우리 집에 태어난 건 행운일거야."

 

자신의 집으로 찾아 온 소중한 생명에 대해, 준비되어 있는 고귀한 사랑을 짐작할 수 있는 말이었다고 생각됩니다. 그리고 정말로 그런 부모님을 만나게 된 아이는 행운아였습니다.또한 그 아이가 다른 곳으로 가서 고통 당하지 않고 자신의 집으로 찾아 와서 정말 다행이라고 여기는 그 부모님은 아이를 `집안에 웃음 퍼뜨리는 보배'로 생각하게 되는 지혜로움을 선물 받았습니다.

 

누구에게나 나름대로 겪게 되는 아픔이 있을 것입니다. 정말 행복해 보이고 걱정이라고는 없을 것처럼 보이는 사람에게도 분명히 그 사람만의 나름대로의 고통이 있을 것입니다. 돌아 보면 저도 항상 생을 아프게 느끼며 살아온 것 같습니다. 하지만 고통을 느낄 만한 구체적인 아픔이 늘 그렇게 존재 했던 것은 아닙니다. 차라리 구체적인 고통이 있을 때에는 단순하게 그 고통에만 매달려서 마음을 다하면 되었기에 속절없이 뻥 뚫린 빈 가슴으로  이유없이 삶을 회색 빛으로 물들이는 어리석음을 범할 일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고통은 극복하라고 주어지는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할 수만 있다면 어떻게든 피해 가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주위에서 가끔씩 듣게 되는 온 몸으로, 온 마음으로 고통과 부딪혀서 이겨 낸 사람들의 이야기들은 저로 하여금 `살아 있음'이 무엇인 지를 빛처럼 깨닫게 해 줍니다.

 

가끔씩 세속적인 면에서 모든 것을 가진 사람들을 생각해 봅니다. `부족함 없어 보이는 저 사람들은 과연 행복하기만 한 것일까?' 그런 사람들이 어떤 면에서는 분명히 대단해 보이고 부러운 때도 있지만 제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은 욕심은 별로 없습니다. 그렇게 살게 되면 그 속에서 분명히 또 그 나름대로의 고통을 만들어 내게 될 것 같고 그런 고통은 오히려 더 이겨내기 어려운, 자칫  자신을 황폐화 시키게 되는 고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저는 늦은 밤에 지친 몸으로 남편과 할인 마트에 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남편의 팔짱을 끼고 바짝 달라 붙어 있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남편은 주위를 의식하며  바람보다도 더 빨리  제 팔짱을 풀어 버립니다. 무안해진 저는 "우리가  남남인가? 아니면 젊디 젊은 새파란 부분가?  이제 그런 때 다 지난 중년 부부인데 다정하게 다니면 좀 어때요? 남들도 흐뭇하게 본단 말이에요. 난 노부부들이 손 꼭 붙들고 다니는 것을 보면 내가슴까지 훈훈하게 데워지더라.'라고얘기 해 줍니다.

 

그리고 불현듯 슬픔으로 느껴지는 재벌가의 한 사람을 떠올리며 이런 말도 해 주었습니다.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그 사람들이지만 정말 소중한 것들은 실상 하나도 못 가지고 사는 사람들일 수 있다. 그 사람들은 한 푼이라도 싼 값의 물건을 사기 위해 이렇게 늦은 밤에 비록 지친 몸이긴 하지만 부부가 팔짱 끼고 다니는 즐거움을 알기나 할까? 눈치 보면서 시식하는 조그만 재미도 모를 것이다. 또 오랫만에 갈비 집에 가서 밥 한끼 사 먹으면서도 고기 한 근 값에 벌벌 떨며 졸이는 가슴으로 먹게 되는 갈비의 그 기찬 맛을 한 번이라도 느껴 본 것일까? 조그만 장난감들 받고 즐거워 하는 아이들의 환한 얼굴을 들여다 보는 소박한 행복조차도 그들은 갖지 못했을 것이다.' 그 때 그 시간의 남편의 고단함을 씻어 주려고  해 준 말이었지만 그 말을 하면서 갑자기 정말 행복해 지는 절 느꼈습니다.

 

그런 자잘한 행복 다 필요 없으니 굵게, 멋들어지게 폼나는 인생을 한 번 살겠다고 한다면 더 이상 할 말은 없어집니다. 누구나 생각하는 기준은 다를테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런 작은 행복들이 소중함을 잘 압니다. 그 작은 행복들을 잃게 되었을 때 다른 모든 것들은 참으로 하찮은 껍데기에 불과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절감한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깨달음은 직접 고통을 겪으면서 극복하는 과정에서  얻게 되었고 그래서 정말 소중한 것을 알게 되려면 아픔도 겪어야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다만 무너질 아픔이나 다시 일어설 수 없는 고통이라면 섣부르게 이런 이야기를 꺼내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절망의 깊은 수렁 그 맨 밑바닥까지 가게 되면 그 다음은 어떻게든 치고 오를 일만 남게 되지 않을까요? 치고 오를 수만 있다면 그 밑바닥을 들여다 본 경험은 그 어떤 것보다 강한 힘이 되어 삶을 값지게 해 줄 것입니다.

승화 시킬 수 있는 아픔. 그 빛나는 보석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