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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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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그 신비의 나라!


BY 선물 2003-09-03

딸 아이는 어렸을 적부터 책을 무척 좋아했다.글을 읽지 못했을 때에는 엄마나 아빠가 들려 주는 동화책 이야기 듣는 그 시간을 참 좋아 했었다.그러다가 읽어 주는 것만을 듣기에는 부족하다며 글을 배우기 시작했고 그런 욕심 때문인 지 친구들에 비해 한글을 빨리 깨우쳤다.
글을 익힌 뒤로는 그야말로 책 속에 파 묻혀 살기 시작했다.친구 생일 집에 가서도 모두들 바깥에 나가서 뛰어 노는데도 혼자서 책을 읽었으니 그런 딸을 보고 주위에서는 다들 부러워 하면서 훗날 글도 잘 쓸 것이고 공부도 잘 할 것이라는 덕담을 아끼지 않고 해 주었다.
하지만 딸아이에 대한 그런 예상은 안타깝게도 빗나가는 것만 같다.아직은 중 1이라서 기회가 많이 남아 있다고 스스로 위로해 보지만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덕목인 성실함이 부족한 까닭에 아쉬움이 많은 것이다.

반면 딸아이와 가장 친했던 한 친구는 책이라면 고개를 설레 설레 할 만큼 책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학습적인 면에서 조금 뒤 처질 뿐 뜻 밖에도 글은 참 잘 쓰는 것 같다.물론 좀 더 배워서 논리적인 글을 써야 할 때에는 그 동안 책을 많이 읽은 우리 딸아이가 더 유리할 지도 모르지만 현재로서는 그런 생각이 그저 희망일 뿐이다.혼자서 왜 그럴까를 많이 생각을 해 보았는데 아마도 그것이 아이의 감성 부족 탓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아무리 알고 있는 것이 많다 하여도 느껴지는 감정이 없으면 그것을 글로 표현할 수가 없는 것이니....

낙엽이 떨어지고 무언가 쓸쓸함이 느껴지는 가을 날 겨우 초등 1학년이었던 딸아이의 친구는 자기 엄마에게 이런 표현을 했다고 한다."엄마,오늘 학교에서 집에 오는데 왠지 커피 생각이 났어.커피 향이 어울릴 것 같은 그런 날이야."라고...그 아이의 엄마는 아이에게 커피를 한 번도 마시게 하지 않았지만 엄마가 마시는 커피 향을 아이는 참으로 낭만적이게 받아 들였던 것 같다.

그 아이는 눈을 보고 하늘에서 내리는 솜사탕가루라는 표현을 할 줄 알고 쌓인 눈을 솜이불이라고 표현할 줄도 안다.그것이 어떻게 아는 것으로 표현될 말이던가! 가슴으로 느끼지 않으면 말로 태어나지 못할 그런 표현이라 생각된다.
안타깝게도 내 딸아이에게는 그런 감성이 없어 보인다.물론 내가 딸아이를 전부 다 아는 엄마는 아닐 것이다.나도 엄마에게 내 모든 것을 보이진 않았던 것과 마찬가지로... 그러나 내게 보여지는 모습은 그렇게 무디어 보인다.하지만 그런 감성은 억지로 갖게 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한 때 주위에 염세적이며 자기 감정에만 사로 잡힌 사람들을 많이 대하면서 나 또한 그런 기질이 조금은 있었던 지라 왠지 단순한 감정을 지닌 사람들이 편하게 느껴졌던 적이 있었다.
어떤 면으로는 단순한 사고를 하는 사람들이 더 밝고 건강한 마음으로, 우울과는 먼 인생을 살아가는 것 같기도 하다.그리고 그렇게 씩씩하게 아프지 않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꽤 많아 보인다.심각한 것을 싫어하고 복잡한 것을 싫어하면서 그저 현실적인 생각으로 마음 편히 살아가는 사람들.

나는 그런 류의 사람이 아니기에 한 편으로는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부러워 하기도 하는 지라 딸아이에게 굳이 그런 감성을 강요할 일은 아니라 생각한다.잘못된 서정성은 자칫 회색 빛으로 인생을 우울하게 물들이기도 하니까...  그러니 그냥 저마다 타고 난 성품대로 그 빛깔대로 살아 가야 하는 것 같다.

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는 비교적 참 유쾌한 편이다.그래서 예전에는"넌 무슨 걱정이 있니?평생 행복하게 살 것 같아."이런 말을 많이 들었고 요즘에는 "어쩜 그리 밝게 살아요?힘든 것 다 아는데...우리가 배울게 많네요."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물론 억지로 내 감정을 숨기고 밝은 척 살아 가는 것이 아니라 그냥 누군가를 만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즐거워지니 낯 색도 절로 밝아지는 것이다.그러하니 그렇게 드러내어지는 나도 분명한 `나'이다.환하고 밝은 감정을 가진 사람을 좋아하고 나도 그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내가 편하니 말이다.

반면 또 다른 내  모습도 보게 된다.
길을 걷다가도 우연히 슬픈 음악을 들으면 눈물이 핑하고 돈다.해맑게 웃으며 까르륵대는 아이들의 맑은 눈 빛에도 눈물이 고이고 유년을 떠올리는 귀에 익은 크리스마스 캐롤을 들으면서도 그렇게 눈물이 맺힌다.
가슴 울리는 한 줄 글귀에서도,드라마 속 연기자의 평범한 눈물 연기에서도 내 눈물 샘은 자극을 받는 듯 하다.심지어는 이사 가는 이웃과 인사를 나누다가도 `아,어쩜 이것이 이 사람과의 영영 이별일지도 몰라.'하는 생각이 들면 얼굴이 얄궂게 일그러지며 눈물이 나는 것이다.참으려고 애쓰면 애쓸수록 난감하게도 더 목이 메이고 눈물이 흐르니 함께 울어 줄 준비도 되어 있지 않은 상대방은 얼마나 민망하고 곤혹스러울 것인가.
그럴 때면 내 가벼운 감성이 너무도 짐스럽게 느껴진다.주책스런 눈물도 한없이 부끄러워진다.
그러나 이런 내 모습 또한 분명한 나일진대 버겁더라도 짊어지고 걸어 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타인의 눈물은 나에게 늘 아름답게 보인다.그 중에서도 참회의 눈물은 그야말로 내 마음을 녹인다.그래서 때때로 아이들 때문에 몹시 언짢아 하다가도 진심으로 뉘우치는 눈물을 대하게 되면 용서 못 할 일이 없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남에게는 눈물 흘리게 만들면서도 그 눈물은 아랑곳 않고 자신만을 위해서 흘리는 눈물에는 나도 냉정해 지고 만다.손해 보는 것이 억울해서,남이 미워서 그렇게 흘리는 눈물에는 내 맘도 닫히고 인색해 지는 것이다.

때로는 눈물이 정화수 역할을 해 주는 것 같기도 하다.우울할 때 떨구는 몇 방울의 눈물은 나를 깨끗하게 해 주기도 한다.그런 눈물은 내 미움의 감정을 씻어 주고 욕심과 아집을 씻어 주고 보다 맑은 세상을 보게 해 준다.배척하는 마음을 돌려서 받아 들이는 마음이 되게 하고 세상에는 이해 못 할 것이 없다는 그런 너른 가슴을 갖게 하는 것이다.

구체적인 고민과 설움으로 절박한 삶을 살아 가는 사람들은 어쩌면 이런 나를 두고 감정의 사치를 부리는 것이라 할 지도 모르겠다.
배가 고파 보라.정말 사경을 헤매는 아픔을 느껴 보라.허공을 맴도는 뿌연 회색 빛 우울말고 땅바닥에 주저 앉아 목 놓아 통곡해야 할 칠흙 같은 아픔을 겪어 보라고 말할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한 때 내 바로 앞에 놓인 커다란 아픔을 보면서 흘렸던 그 눈물은 이를 앙 물고 흘리는 눈물이었고 오로지 나만을 위한 눈물이었으며 메마른 미움의 눈물이었던 것이다.

그래서일까?
나는 요즈음의 가을을 타는 듯한 이런 서글픔도 좋아 보인다.
아직도 즐길 수 있는 우울이 있음이,남 몰래 흘릴 수 있는 눈물이 있음이 고맙다.
`over the hill' 이라고도 불리우는 서른 아홉 내 나이.
이 나이에도 때 묻은 나를 씻어 내고 세상과 아름답게 섞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화수 같은 눈물이 마르지 않는 눈물샘이 있음이 차라리 행복하다.그래서 여자임이 다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