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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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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닮은 사람이 좋아라.


BY 선물 2003-08-21

얼마 전,남편이 둘째 아이의 친구들 몇 명을 데리고 강화도로 가서 1박 2일의 야영을 하고 왔다.
차가 한 대라서 나는 함께 갈 수 없었고 남편과 우리 아이 둘,그리고 아들 친구 셋 이렇게 다녀 오게 되었다.
딸아이만 중학 1학년생이고 나머지는 초등학생 남자아이들이라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자꾸 남편에게 확인 전화를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텐트를 치고 있다며 밝은 목소리로 답을 하던 남편이 시간이 흐를수록 굳은 음성으로 전화를 받는 것이었다.
그 이유를 알고 싶어했지만 남편은 그냥 빨리 전화를 끊고 싶어할 뿐, 아무런 말조차 하기 싫어하는 기색을 보였다.


다음날,집으로 돌아온 남편은 여전히 굳은 표정이었다.
아이들을 통해서야 그 내막을 듣게 된 나는 정말 망연자실할 정도로 놀랍고 속상한 마음이 되었다.
남편이 아이들에게서 처음으로 실망한 것은 게으름과 이기심이었다.
각자의 준비물은 철저히 챙기면서 공동으로 사용하는 물건은 전혀 아낄 줄을 몰랐다는 것이다.
더구나 각자 가지고 온 간식을 내어 놓고 함께 먹을 생각은 하지 않고 우리가 준비해 간 간식만 먹더라는 것이다.
나눌 줄을 모르는 아이들의 마음이 아마도 많이 속상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말 남편의 마음을 분노케 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그 중 어떤 아이가 매미를 잡아서 모기향 불에 태웠다는 것이다.
생명을 너무 잔인한 방법으로 없애는 아이를 보며,그리고 그것을 옆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쳐다보는 또 다른 아이를 보며 남편은 더 이상 아이들이 아이로 보이지 않을 만큼 큰 충격을 받았고 쉽게 아물어지지 않을 상처를 받은 것이다.
내 아이가 그런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그냥 지나치기에는 워낙 엄청난 일이라서 남편은 아이들을 심하게 나무랐던 것 같다.
생명의 소중함과 점점 잔인해져 가는 세상을 이야기 하면서 조금이라도 반성해주기를 기대했던 남편에게 아이들 중 몇은 그게 심한 꾸지람을 받을 만큼 잘못한 일임을 끝끝내 인정하지 않았다고 한다.


나도 평소에 잘 알고 있던 아이들이라 뒤통수를 심하게 얻어맞은 것처럼 놀라움이 컸다.
모기나 파리같은 한낱 해충에 불과한 미물을 죽일 때에도 이왕이면 한번쯤 생명의 스러짐에 대한 의미를 안타까이 생각해 주기를 기대하는 내 마음까지는 유난스럽다 하더라도 적어도 오랜 기간을 유충으로 지내다 허물을 벗은 뒤,단 며칠간만을 성충의 모습으로 찬란한 햇빛과 푸르름에 취해 맘껏 행복을 노래하다 그렇게 생을 마감하게 되는 매미의 생명은 차마 그리 함부로 해서는 안될 고귀한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장난의 제물로 어이없게 희생된 매미의 죽음은 나를 숙연하게 만들었고 백번 천번을 양보하고 이해하려 해도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분노가 치밀어 오르게 했다.


얼마 전에도 참으로 잔인한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아이들이 아파트 높은 층에서 병아리던지기 놀이를 한다는 이야기였다.
높은 곳에서 병아리를 떨어뜨려도 살아 남는 지가 궁금해서 장난으로 하는 놀이라는 것인데 나는 그 이야기를 듣고 섬뜩함에 몸서리 친 적이 있었다.


왜 이렇게 맑고 순수하게 자라야 할 아이들이 자꾸 난폭해지고 잔인해지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가끔 아이들이 컴퓨터게임을 하는 것을 곁에서 볼 때가 있다.
게임의 내용은 거의 대부분이 한결같이 칼로,화살로,총알로 살아 있는 것을 죽여야만 점수가 올라 가는 형식으로 되어 있었다.그래서 움직이는 버섯을 죽이고,분홍빛 돼지를 죽이고,귀여운 달팽이,장난스런 원숭이 등 맞닥뜨리는 것은 죄다 죽이고 또 죽인다.
그것을 잔인하다고 말하는 나에게 아이들은 오히려 그 정도면 매우 평화로운 게임인 편이라고 항변했다.


그래서일까,요즘은 정말 자신의 생명이든,타인의 생명이든 너무 하찮게 생각하는 사건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요즘 아이들이 다 그렇다고 말하더라도 절대로 무너져선 안 될 기본이라는 것은 지켜져야 하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생명에 대한 고귀함은 알아야 하고 어른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는 배우게끔 기본을 지키도록 포기하지 말고 가르쳐야 한다.
막상 아이들을 키우다 보니 그 기본이란 것을 가르치는 것도 얼마나 힘든지를 절감하며 살지만 그래도 나의 아이 아니,우리의 아이들이 세상을 제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가르치고 또 가르쳐야 하는 것이다.


물론 아이들에게 늘 그런 면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참으로 맑고 순진한 모습에 꼬옥 안아 주고 싶기도 하고 따뜻한 마음을 보여 감동을 느끼게 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번의 사건은 두고 두고 아이들을 상처 어린 눈으로 지켜보게 할 것 같다.


나는 예쁜 눈보다는 밝은 눈이 좋고 밝은 눈보다는 세상을 아름답게 볼 줄 아는 눈이 좋다.
잘난 코보다는 냄새를 잘 맡는 코가 좋고 그보다는 자연의 향긋한 향기를 고맙게 맡을 줄 아는 코가 좋다.
보기 좋은 입술보다는 세상을 맑고 깨끗하게 해주는 고운 말과 아름다운 삶을 노래할 수 있는 그런 입술이 훨씬 좋다.
그리고 남의 말을 소중히 여기며 귀 기울일줄 아는 겸손의 귀를 가진 사람이 좋다.

나는 그렇게 사랑 닮은 사람이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