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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통수엔 눈이 없다.


BY 선물 2003-08-18

나는 평소 스스로를 잘 아는 것 같이 생각하다가도 뜻 밖의 계기로 인해 그런 자신을 갑자기 낯설게 들여다 보는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그런 낯설음은 차라리 모른 척 지나치고 싶을 정도로 인정하기 싫을 때도 있지만

조금만 진지하게 스스로를 들여다보면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면서 겸손되이 수긍하게 될 때가 더 많은 것 같다.

 

 

늘 주위에 친구가 많았던 나는 언제나 내 무난한 성격과 편안함이 그렇게 사람들을 많이 모이게 한다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잘 미워하지 않는 자신에 대해 대견하게 생각했고 그래서 친구들도 다 나를 좋아하는 것이라 여겼었다.

그러나 뜻밖의 일로 인해 그런 생각이 착각에 지나지 않았음을 아프게 경험하게 된다.

 

 

중학교에 다니던 어느 날 우리 반에서 인기투표라는 것을 하게 되었다.

아마 생활기록부의 참고 자료로 쓰시기 위해 선생님이 실시했던 것 같은데 나는 뜻밖의 결과에 당혹감을 느끼게 되고 말았다.

비밀리에 했던 투표였지만 친구들은 자신이 좋아하는 친구로 적은 아이 앞에서는 그것을 자랑삼아 말하고 싶어 했다.

대 여섯 명 정도의 친구가 와서 내 이름을 썼노라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가장 좋아하는 친구 1명, 싫어하는 친구 1명을 적는 것이었는데 그 정도의 결과라면 대단한 것이어서 괜히 우쭐한 맘에 행복해 하였다.

그 투표가 끝난 다음 선생님께서 나를 부르셨다. 자랑스런 맘만 갖고 찾아 뵌 선생님은 의외의 결과도 함께 말씀해 주신 것이었다.

나를 좋아하는 친구가 분명 있었던 것처럼 제일 싫어하는 친구 란에 내 이름을 적은 친구도 있었던 것이다.

사람에 따라 좋아하고 싫어하는 기호가 다를 수 있다고 가볍게 위로하기에는 `제일 싫어하는 1명'이라는 전제가 너무나 맘에 걸리는 것이었다.

선생님은 조금만 더 교우 관계에 신경 써서 한 쪽으로 기울지 말기를 바란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순간에도 그런 말씀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고 도대체 날 미워하는 친구가 어떤 친구일까 하는 궁금증만 머리속을 뱅뱅 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일이 있은 후로는 예전보다 말 한마디에도 조심스러워졌고 호의를 담았다고 해도 혹시라도 모를 오해의 여지가 있는 말은 되도록 자제하는 신중함을 가져야 함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비슷한 경험이 또 있었는데 그 때도 제법 충격을 받게 되었다.

교실에서 아이들이 너무 심하게 떠들어서 다른 반 선생님께 지적을 받게 되는 바람에 언짢아지신 선생님께서 가장 많이 떠든 아이이름을 쪽지에 적으라고 말씀하셨다.

압도적으로 많이 지적된 아이는 내 앞에 앉은 친구였는데 그 날은 그 친구가 평소와 달리 몸이 많이 아파서 하루 종일 엎드려 앓고 있었다.

그것을 바로 뒤에서 지켜본 나는 앞 뒤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 친구 역성을 들게 되었다.

그래서 다시 재투표를 하자고 건의했는데 이번에는 정말 우습게도 그 친구를 적었던 수만큼 내 이름이 많이 나오고 말았다.

중학교 2학년의 생각으로는 그저 친구들이 원망스러웠고 다들 배신자처럼 밉기만 했다.

그러나 친구들 눈에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행동했던 것이 어쩌면 잘난 척 하는 미운 모습으로 보였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나중에 선생님께 혼이 난 뒤 자리에 앉은 나를 위로하려고 모인 친구들은 가엾게도 나로부터 의심의 눈초리를 매섭게 받아야만 했다.

이 경험으로 내가 배운 것은 참으로 세상이 만만치 않다는, 조금 더 어른이 되어서 배워도 충분했을 쓰라림이었지만 오히려 그 쓰라림은 나를 한걸음 더 성숙하게 해 주는 약이 되기도 했었다.

 

 

그리고 또 한 번 나를 되돌아보게끔 하는 한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항상 나와 함께 대화하기를 좋아하던 친구는 문득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너와 이야기를 나누면 참 많은 위로를 받게 돼. 그리고 너는 항상 정곡을 찔러서 해답을 주지. 그래서 듣는 사람은 참 후련해져. 그러나 그게 너의 함정일 수가 있어. 세상엔 네가 모르는 일들이 더 많을 텐데 넌 세상을 다 알고 있고 또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그런 네 생각이 흔들릴 일이 생기면 어쩜 네가 쉽게 감당해 낼 수 없을지도 몰라."

아, 그 순간 그 친구의 말은 정말 내 교만의 정곡을 찔렀고 내가 몰랐던 나를 아주 냉정하게 들여다보게 만들고 말았다.

 

 

늘 바른 생각을 하고, 늘 양보하고, 늘 남을 참고 배려하는 것은 '나'라고 생각했다.

남을 미워하지 않고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으니 내 주위에 사람이 많은 것은 당연하리라.

내가 마음을 다치는 것은 남들이 다 내 맘 같지 않아서이고 그럼에도 그들을 용서하고 감당해내며 포용하니 나는 복 받으리라.

그런 교만한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참으로 그런 방향에서 사고하며 자신도 모르는 `자기애'와 `아집'에 사로잡혀 있을 때가 많다.

내가 아예 모르는 것은 인정하되,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은 확인할 때까지는 내 것을 옳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자만을 버리지 못할 때가 많으니...

 

어찌 보면 내가 용서받고 배려 받고 사랑받고 양보를 얻는 위치에 있을 때가 더 많을지도 모르는데 왜 그리 늘 나만 억울했는지....

 

그래서 내 앞에서 웃는 사람들의 모습만을 볼 줄 알았지, 때로 뒤에서 타인이 나로 인해 아픔을 겪고 비웃음을 보낼 수 있음을 몰랐던 것이다.

나의 작아짐조차 겸손이 아닌 교만일 수 있음도 잊지 말고, 정말로 `내 탓이오'를 할 수 있는 내가 가장 잘 난 `나'임을 가슴에 새겨 두고 살아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뒤통수에는 눈이 없다.

그러나 볼 수 있는 것은 `눈'만이 아니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