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렇게 똑같은 하루를 보낸다.일상의 단조로움을 어찌 나쁘다고만 할 것인가!그러나 나는 답답증이 생긴다.
그렇다고 딱히 하고 싶은 일도,변화를 줄만한 일도 없으면서 그저 평안하게 지나가는 하루하루에 감사할 줄을 모른다.
그러나 이런 내 마음은 정말 내 속마음일뿐이다.
혼자만의 시간이 없는 내겐 차한잔을 마시며 내 우울을 즐길 여유가 없다.
그저 그런 나 스스로를 잠시 측은해할 뿐이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온다.
아침부터 내내 시어머님께 반,스스로에게 반 그렇게 주파수를 맞추던 나는 아이들이 오면서부터는 내게 남아있던 반만큼의 주파수도 이젠 온전히
다 내어줘야 한다.
그게 가정을 지키는 주부의 작은 행복이어야 한다는데 언제부터인가 나는 더 이상 그 것이 행복이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정말 품안의 자식이라고 엄마품에서 떠나질 않고 온전히 나를 의지하며 내 눈만을 바라보았는데
이젠 덩치도 엄마만해지고 그러면서 자기세상을 만들고는 엄마와의 단절을 조금씩 시도하기 시작한다.
나만을 바라보던 아이의 눈빛에 모성은 전혀 힘들어 하지 않고 품어주며 무지 행복해했었다.
그런데 이젠 자신들에게 온 신경을 곤두세우는 엄마가 더이상 힘이 되질 않고 부담이라며,간섭이라며 자꾸 떠밀어내고 있다.
나는 조금씩 초라해진다.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필요한 용돈을 주고 그저 그 정도의 엄마역할만을 원하는 아이들.
사춘기가 시작되려는거겠지.나는 애써 자위한다.
오히려 아이들보다 더 내 손길을 원하는 곳은 안방에 계신 어머님이신데,왜 나는 어머님께는 손내밀기에 인색하고 싫다하는 아이들의 손은 아프도록 붙잡으려는건지
내 배 아파 낳은 아이에 대한 영원한 집착때문일까?
남편이 돌아온다.
바깥일이 얼마나 고단한지 나는 너무나 잘 안다.차라리 모르면 나는 조금은 더 평화로울 것을.
사람을 상대하며 해야 하는 일은 신경줄이 얼마나 날카롭게 서게 되는 일인지 나는 가까이에서 보았기에
남편앞에선 내 지친 하루를 보여주지 않으려 애쓰고 그저 썰렁한 농담으로라도 한 번만 남편을 웃겨 그 팽팽한 신경줄을 느슨하게 해 줄 수 있다면 하는
마음으로 환하게 남편을 맞으려 한다.
그러나 어느새 내 긴장도 풀어지고 남편 앞에선 생각과는 다른 자잘한푸념들이 쏟아져 나오고 만다.
그저 생각없이 늘어놓던 내 말에 남편은 어느순간 지쳤는지,울컥 짜증스런 표정이 되어 간다.
아,하루를 밖에서 힘들게 보내고 돌아온 남편에게 가정은 쉼터가 되어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게 오히려 짐을 하나 더 얹어 놓았나보다.
남편은 별 말 없이 뒤돌아서서 베란다로 행한다.
담배를 물고 슬픈 곡조를 따라 흥얼거린다.
그 뒷모습에 배인 쓸쓸함이 고스란히 내게 전해져 온다.
내 재잘거림이 그리 싫었나.나는 이 가정이 일터이다.나는 잠시도 마음으로부터 쉴 틈을 갖지 못했다.
그래도 내 우울을 다는 드러내놓지 않는다.
나는 쓸쓸한 남편 뒷모습을 지켜볼 때가 가장 평화롭지 못하다.
차라리 화를 내지,왜 저렇게 무너져 가는 모습을 보여서 내 가슴까지 무너지게 만드는지 원망스럽다.
당신은 쓸쓸할 때 고단할 때 흔치는 않지만 술로도 그 지친 맘 달래고
훌쩍 며칠씩 자연을 벗삼아 찌든 맘도 씻어내지만
당신 아내는 늘 이 곳에서 한 치도 벗어나질 못하고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을 모른단 말인지.
내게도 목놓아 울고 싶을 때가 있고 훌훌 털고 떠나고 싶을 때가 있고
가슴으로 시린 아픔을 간직해야 할 때도 있다는 것을 남편은 도무지 모르는 것 같다.
그저 붙박이처럼 아무런 감정도 느끼지 않고 그렇게 배실배실 웃기만 해도 괜찮은 사람인줄 아는 듯하다.
그러나..
그러나 나도 때론 일탈은 꿈꾸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