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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끼리도 말 못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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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만남


BY 밥푸는여자 2004-10-01

                         아름다운 만남 
                                         
    
    미국사람..
    처음 이곳 살림을 시작하며 낯설기도하고 웬지 배타적인 생각이 
    들기도한 것은 어쩌면 어릴적부터 배우고 느껴왔던 미국에 대한 
    사대주의 때문인지 늘 적대감을 가지고 그네들을 보았었다
    
    아침 저녁으로 동네 길을 산책하며 만나지는 이웃들의 환한
    미소를 건네받게 되어도 생각없이 그저 입만 '위스키~'하고 
    벌려 웃는 인형같은 웃음 인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을 
    보면 어쩌면 사람은 자신만의 스크린을 통해 타인을 보거나 
    시멘트처럼 굳어버린 고정관념으로 상황을 해석하려하는
    어리석음이 있어 때로는 사람 사이를 더 멀어지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들었다 어쨌거나 차츰 그네들의 인사에 익숙
    해지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며 깨달은 것은 우리 모두 
    포장되어 나온 포장지가 다를 뿐 모두 우주 한 공간에서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네들이 살아가며 
    겪는 희노애락 역시도 곧 내가 살아가는 감정과 같다라는 것이다
    
    작년 생일 일주일전 쯤이던가 옆집에 사시는 엘리스 할머니께서 
    황금색 봉오리가 알토랑같이 달린 국화 화분을 가져오셨다 너무 
    놀라고 고마워 받아들며 의아한 표정으로 지었더니 생일축하한다고..
    생일은 일주일이나 더 남았다고 했더니 아신다며 꽃봉오리가 하도 
    실해서 일주일 후면 보기좋게 피어날 것 같아 미리 가져왔노라고..
    
    미국 생활을 시작하고 이듬해부터 한번도 거르지않고 생일을 
    챙겨주시는데 참으로 진실하고도 소박한 마음이 아닐 수 없다 
    돈의 가치로 그려낼 수 없는 소박한 마음이 담겨 있다 일년에 
    두 번 구정과 추석때면 혼자 사시는 할머니 몇 분을 초대해서 
    식사 대접을 해왔었는데 아마도 그런 마음들이 오고가며 정이 
    들어가는 것인가보다 물론 메뉴는 순전히 한국식이다 떡국을 
    처음 드셔보셨지만 이젠 떡국이라는 발음도 잘하신다 
    
    한국 정치 사정이 별로 안정되지 못함을 아셨던 그녀는 내가 
    한국 방문길에 나서면 혹시 돌아오지 못하면 어쩌나하고 돌아
    올 때까지 마음을 조리고 매일매일 불꺼진 창을 바라보고 
    마음을 다해 무사히 돌아오길 기원하기도 했다고 한다 
    꽤 오랜 시간을 집을 비우고 돌아온 나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글썽이며 반가움을 전하던 따뜻한 그녀의 가슴을 잊을 수 없다 
    
    그곳을 떠나 이곳으로 이사올 때 눈망울에 가득 실린 눈물은
    나를 향한 그녀의 염려하는 마음과 헤어짐의 안타까움이었다
    어제 밤 할머니 두 분이 생일을 기억하시고 전화를 하셨다 
    떠나고 없는 이웃집여자에게 그리움 진하게 접어넣은 음성으로..
    
    혹시 이사한 후 사람도 사귀지 못하고 생일 파티도 하지 못했으면
    어쩌나 하는 조심스런 그녀들의 안부가 눈물겹게 아름답다 삶의 여러 
    부분에서 닮지않은 우리.. 허지만 서로의 가족사를 내어놓고 웃기도 
    울기도하며 마음 보듬어 주었던 사람들.. 서로서로 건강 살피며 돌아봐 
    주고 가끔 전화로 사랑한다는 말 던져주는이들 그 얼마나 고운가.. 
    
    우주 어디쯤에 티끌같은 존재로 왔다가는 사람 중에는 참으로 사람
    다운 사람이 있다는거다 비록 언어와 문화는 달라도 창조주 안에서 
    한 형제 자매로 마음이 하나가 되어가며 살아간다는 것은 멋진거다
    
    어제 나는 이곳에 함께하는 이웃들을 통해 추석 보름달보다 더 환한
    날을 가슴에 새겼으며 멀리 떠나 자주 볼 수는 없는 파란 눈의 고운
    할머니들을 통해 아름다운 사랑의 강에서 목욕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