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같이 명절이라 시댁에 3일 갔다오고 뻗었다. 소파에 몸을 붙이고 리모콘을 이리저리 돌리다 마주하게 된 기생충. 상을 타고 하도 사람들이 많이 떠들어서 1번 보고, 이번이 2번째다. 사실, 영화를 2번 보지 않는데, 보이지 않은 것들이 너무 많이 보여 쭉 봤다.
대사 하나하나에서 지상과 지하에 사는 사람들의 서로를 향한 솔직한 감정들이 오고갔다.
모르면 모를까 가까이 있으면 우리는 서로를 신랄하게 느끼게 된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만일 지하 사람들이 지상 사람들의 세계로 깊숙이 들어가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검은 색은 흰색의 바탕에 있을 때 더 검은 색임을 뼈저리게 실감하게 된다. 아마도 지하 사람들에게 들추어지는 것은 수치심이리라. 같은 인간이면서 누군가는 엄청나게 넓고 좋은 집에서 안락하게 살아가는 것을 보게 될 때, 자신의 지하 삶이 얼마나 비참한 지 더 또렷이 느끼게 되는.
비교가 이렇게 무섭다. 그렇다고 그 지하 사람들이 비교하지 않고 분수껏 그들끼리 위로하며 살아간다고 행복했을까? 나는 최소한 그들이 비교한 것보다는 행복했을 것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지하 가족들은 가족끼리의 끈끈한 연대감이 있었다. 그 엄청난 계획을 실천할 정도로. 가족은 항상 남루한 식탁에 둘러앉아 무언가를 얘기하며 있었다. 그게 가난에 대한 절망이었든 서로를 향한 원망이든 간에 말이다. 혼자가 아니라 4명이 함께라는 것은 끝까지 그들을 어떤 식으로든 연결되어 살게 했을 것이다.
제일 마지막에 아빠가 아들에게 보이스카우트에서 쓰는 신호를 보낸다.
더 깊고 어두운 지하 삶에 대한 이야기들을 묘사하며 잘 있다고 하면서.
아들은 또한 아버지에게 답장을 한다.
내가 꼭 돈을 많이 벌어 그 집을 살테니까 그 때까지 잘 있으라고.
이 대목에서 울컥했다.
온갖 거짓말을 다 동원해 계획을 세워도 뛰어넘을 수 없었던 것을 이제 아들은 정면돌파를 해보려 돈을 많이 벌어서 그 집을 사겠다고 한다. 근데 그것이 더 슬프고 서글퍼보인다.
아무리 해도 넘을 수 없는 높은 벽 앞에 서 있는 것처럼.
그들은 비록 지하와 지상의 계층의 벽은 뛰어넘을 수 없었지만, 산위와 지하에서 서로를 향해 수신호를 보내며 여전히 가족이라는 연결고리를 이어가고 있었다.
가족은 매우 상투적이고 교과서적인 결론이지만, 영원히 변함없는 결론이기도 하다.
이것은 정말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이라서 다행이다.
추석에 코로나라도 꾸역꾸역 가족을 찾아가는 것도 이러한 소중한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