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지나물과 엄마
주말농장엘 다녀오는 아들이 실한 가지를 실어다 놓았다. 보라색 색상이 몸에 그렇게 좋다는데도, 마트에서는 선뜻 챙겨오지는 않게 된다. 그만큼 식구들의 기호에 맞지 않기 때문이겠다.
“가지를 무슨 맛에 먹어요?” 아이들이 묻고는 하지만, 나도 딱히 찬사를 붙일 이유를 찾지 못한다.
그러나 가지에는 혈압을 낮춰주는 효과도 있고, 염증을 치료하는 효과도 있다지 않은가. 비타민이 많아서 피로회복에도 좋다네. 또 가지의 차가운 성질은 해열에도 도움을 주고, 폴리페놀이 들어 있어서 항암작용에도 좋다지. 많이 들어있는 식이섬유는 장의 노폐물도 제거해 준다네. 그렇다고 장바구니를 들고 영양분을 살피지는 않게 되지.
이런저런 효과가 아니라도, 가지만 보면 친정엄마를 생각하곤 한다.
(친정엄마가 돌아가실 때까지 나는 늘 ‘엄마’라고 불렀던 터라서, 이 나이에도, ‘어머니’보다는 ‘엄마’가 더 자연스럽다. 나는 엄마의 늦둥이 막내딸이었으니까.)
“가지나물은 양념 맛인데, 나도 양념만 잘 써 봐요. 맛이 나지요.” 이건 가지나물을 두고, 맛을 타박하는 아버지를 향한 엄마의 항변이었다. 내 친정은 6.25 전쟁 뒤의 1.4 후퇴에 남하한 실향민이었다. 그 살림에 가지나물 맛을 돋보이게 할 양념이 변변했을 리가 없었겠지.
요새로 나는 푸짐한 양념을 쓰면서, 가지나물을 주무를 때마다 친정엄마를 생각한다. 사실 양념이 변변찮은 가지나물이 무슨 맛이 있었으랴. 그러나 무슨 맛이었는지는 몰라도, 내 입에는 참 맛이 좋았던 기억이 있다. 그때야 없는 살림에 뭔들 맛이 없었을까마는. 이 나이가 되고 보니, 엄마의 시원찮은 치아도 가지나물을 불렀겠지 싶다.
엄마는 뜸 들이는 밥 위에 가지를 얹었다가, 양념으로 무쳐주곤 했다. 그래서 가지나물은 그렇게만 해서 먹는 것인 줄 알았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 보니, 시어머님의 부엌에서는 전혀 다른 방법을 쓰셨다. 이건 시댁 스타일인가? 아무튼 신혼초년병은 시어머님을 따르기 마련이지.
가지를 반 갈라서 납죽납죽하게 어섯 썰고, 약간의 간을 해서 숨을 죽인다. 숨이 죽은 듯하면 물기를 뺀다. 내 경험상으로는 손아귀에 넣고 양쪽 손을 모아 손목이 바들바들 떨리도록 눌러 짜야 씹는 맛이 있더구먼. 약한 짠 맛의 간장에 갖은 양념을 넣어서 나물에 붓고 조물조물.
팬에 기름을 두르고 약한 불에 익히고는, 참기름 똑똑 깨소금 솔솔 뿌리면 또 다른 가지나물의 탄생. 이제 보니 이건 당신 아들의 입맛에 맞춘 시어머니 표 가지나물이었다. 나는 영감을 위한 밥상에는 시어머님 표 가지나물을, 나만을 위한 밥상엔 친정엄마 표 가지나물을 준비한다.
그러고 보니 참 재미있다. 같은 가지를 가지고 시어머님 표니 친정엄마 표 나물이라. 갑자기 재미있는 생각이 난다. 내 며느님의 가지나물은 어떤 스타일일까. 나는 친정엄마 표 가지나물이 시원찮은 치아에도그렇고 맛도 더 좋더구먼. 그래도 만약에 가지나물을 내 며느님이 해다만 준다면, 해주는 대로 맛있다 칭찬하고 먹을 겨. 아직 그쯤은 먹어 줄만한 치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