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어둑어둑 질 때면 어디선가 낯익은 목소리가 들린다.
나를 찾는 목소리, 친구들을 찾는 목소리 , 엄마들이 당신 아이를 부르는 목소리다.
그 목소리에 땀을 흘려가며 놀던 고무줄 놀이도, 다방구 놀이도 마감할 시간이다.
엄마 손을 잡고 친구에게 손을 흔들며 내일 놀자하면서 집으로 들어간다.
때낀 손을 씻고 밥상에 앉으면
엄마는 김이 모락모락나는 보리밥을 퍼서 얼른 우리 상에 올려주며 밥 먹기를 손짓으로
말씀하신다.
마당이 있는 집은 참 좋다.
요즘같이 아파트가 많이 없던 시절의 서울은 한적하고 공기도 맑았다.
앞집과 인사하며 윗집과 먹을 거 나누며 동네에 누가 사는지, 몇 살인지 우리엄마는 누구와 제일 친하고
나의 친구는 누구누구인지 모두가 꿰뚫어 보듯 다 알고 지냈다.
골목길을 좀 올라가다보면 내친구 집이 보인다.
양옥집에 밖에서 보아도 부잣집 같이 보이는 집인데 친구는 대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집에 산다.
말하자면 전세로 살고 친구 부모님이 초등학교 앞에서 문방구를 하셨다.
친구와 나는 거의 매일 만나서 놀고 숙제도 하고 주점부리도 함께 먹곤 했다.
자그마한 키에 얼굴에 주근깨가 좀 많은 아주 야무지게 생긴 그아이는 특히나 그림을 잘 그렸다.
우리는 종이에 인형을 그리고 인형 옷을 예쁘게 최대한 화려하게 그려서 가위질을 해가며
인형과 인형옷을 바꿔 입혀가며 인형놀이를 하였다.
어쩌다 마주치는 친구의 집주인은 우리에게 상냥했고 가끔은 간식도 주셨는데
그 간식이 빵인지, 떡인지는 잘 기억이 안 나지만 집주인 아주머니가 학교 선생님이란 이야기는 들었다.
고상하고 멋진 그 선생님을 볼 때면 나도 나중에 학교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막연히 한것도 같고...
겨울이면 엄마는 연탄불 위에 밀가루 반죽한 것을 구워서 간식을 내놓으셨는데
지금 생각하니 인도의 난같은 그런 맛은 그냥 좀 밋밋하지만 먹어도 질리지 않는 그런 맛이었다.
배추전이나 무전을 간장에 찍어 먹으면 참 맛있었던 그 시절엔 지금처럼 인스탄트식품이 무엇인지도
생소하고 잘 모르기도 했고 돈도 풍족하지 않았기에 건강한 식생활을 했다.
우리집과 윗집과의 구조는 좀 특이했다.
우리앞마당 위가 바로 윗집인데 야트마한 담이 있어 사람이 보이는 그런 구조였다.
윗집 사람들과 우리집과는 특별히 친했다.
엄마 아버지도, 나도 모두 친구관계였기에 가까운 사촌같이 잘지내며 아침인사도, 저녁인사도 나누었다.
거기 사는 친구엄마는 특히나 그시절에 엘리트셨는지 친구집에서 본 흑백사진을 보면
파마머리에 양장옷을 입고사무실에서 근무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그래셔였는지 그분은 우리집에 놀러오면 엄마보단 아버지와 더 말씀을 잘 나눈 동네엄마와
좀다른 분위기였다.
윗집 친구도 큰키에 잘 웃어서 언제나 싱글벙글한 친구였는데 지금은 어디서 잘 지내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그 옆집에 사는 오빠는 우리집에 세들어 사는 언니와 서로 좋아하는 눈치여서
가끔은 내가 편지심부름도 했었던 기억이 난다.
여행을 하거나, 꼭 여행이 아니어도 길을 걷다가도 아기자기한 작은 골목길이 보이면
괜시리 한 번 걸어보곤 한다.
그리고 나의 옛시절이 저절로 떠올라 내가 살던 골목길과,
젊은 나의 엄마와 꼬맹이들인 나의 친구들이 떠오른다.
*여수의 작은동네 골목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