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어미를 닮은 며느님과 아버지를 닮은 아들
며느님이 김치가 그리운 눈치다. 그 마음을 읽었으니 내 마음이 급해진다.
이른 점심밥을 먹고 마트로 달린다. 오늘따라 배추가 실하다. 세 포기를 한 망으로 묶었으나 세 포기는 나에게 너무 버겁다. 망설이고 있는데 어느 손님이 한 포기만 샀으면 좋겠다고 혼잣말을 하고 섰다. 옳거니. 의논을 해서 한 망을 둘이서 나누기로 합의가 된다.
자칫하면 오늘 해를 넘기겠다. 배달이 오자 득달같이 매달려서 절이고, 양념을 준비하는데 큰아들이 들어온다. 절여진 배추를 보더니 반색을 한다.
“김치 하시게요?”
“그래. 며느님이 기다리는 눈치야.”
큰아들이 등 뒤에서 내 어깨를 두 손으로 감싸안고는 킬킬거리며 웃는다.
“흐흐흐. 우리 엄마는 귀신이야.” 아마 에미의 김치가 그립다는 이야기를 서로 주고받았던 모양이다. 나이 오십이 불원(不遠)하여, 시력이 시원찮은 내 눈에도 흰머리가 적지 않게 띄인다. 그래도 내 맘에는 아직도 어린애다. 저녁상에 얹으라고 부추김치를 급하게 먼저 버무려 놓았었기에, 손에 들려주니 아들의 입이 귀에 걸린다.
“에미가 좋아하겠네요.”
원체 부추김치를 좋아하는 며느님을 위해서 서두르긴 했지만, 시방은 아들이 더 좋아한다. 아무가 좋아하면 어떠랴. 애쓰고 수고한 만큼 잘 먹어주면 족하지.
“뭐, 도와드릴 거 없어요? 에미 올라오라고 할까요?” 배추 두 포기에 무슨 번잡을 피우랴.
풀국을 쑤고 양파를 벗기고 쪽파를 손질하고, 홍고추도 가지런히 채를 치고 젓갈을 손질하고. 휴~. 그렇잖아도 굼띤 나는, 언젠가처럼 양념을 빼 놓을라 싶어서 살피고 또 살피며 신경을 곤두세운다. 그런데 내가 들여다봐도 오늘은 비주얼이 괜찮다. 혼자 흐뭇한 웃음을 날려본다. 그래도 부지런을 떨어서 저녁 전에 양푼을 비웠으니, 내가 생각해도 신통방통하다.
배추김치에 겉절이까지, 그리고 손녀 딸아이를 위한 물김치. 거기에 고추장아찌와 양파장아찌를 챙기니 한 짐이다. 아들을 불러 들고 가라 이른다. 반가운 기색이 역력하다. 아들은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날린다.
“에미가 이제 반찬은 좀 하는데 김치는 영 제 맛이 안 나네요. 하하하.” 김치 맛을 제대로 낸다는 게 쉬운 일인가. 학교나 다니다가 직장을 잡았을 것이고 곧 시집을 왔겠지. 그녀가 말하지 않아도 나는 진작부터 알아봤지.
저녁이 늦어 급히 돌솥을 불에 올려놓고 허리를 펴는데 문자가 온다. 며느님이다.
“힘드신데 김치 만들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뚱띵이 토끼가 넙죽 절을 하는 이모티콘이 요란을 떤다. 맛은 장담하지 못한다고 답을 보냈더니 금방 또 답이 온다.
“저녁에 겉절이해서 밥 먹었는데 아주 맛있었어요~~^^” 그럴 리가. 내 솜씨나 네 솜씨나지. 그래도 이쁘다.
그러고 보니 우리 집 남정 네들이 불쌍하구먼. 영감도 내 아들도 솜씨 없는 마누라를 둔 덕에 잘 얻어먹지를 못하겠다. 그래도 영감이나 아들이나 제 마누라 솜씨를 타박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 입맛에 맞지 않으면 수저를 내려놓더라도, 투정을 하는 일은 결코 없다는 말씀이지. 참 고마운 일이다. 아들은 아버지를 닮아가는데, 며느님은 어쩌자고 이 꼴 난 시어미를 닮아 있누 후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