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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과분한 시승식


BY 만석 2019-05-07

나에겐 과분한 시승식
 
“토요일 무슨 약속 있으세요?”막내 딸아이가 전화를 했다.
“토요일 일착으로 엄마아빠 모시고 시승식해요. 양주로 모시고 가려구요.”
“여보. 막내가 토요일에 별일 없으면 양주 데리고 간다는데.”옆의 영감을 돌아보며 묻는다.
“별일 없지, 뭐.”
 
양주를 간다는 건, 시부모님을 모신 추모공원을 간다는 말이다. 그러니까 새로 빼 낸 새 차로, 시승식을 겸해서, 우리를 데리고 제 조부모님을 뵈러 가자는 것이다. 시부모님을 추모공원으로 모신 두 주일 사이에, 우리는 토요일마다 뵈러 갔던 것을 막내 딸아이는 모르니까. 영감은 그렇지 않아도 토요일에는 또 양주를 가자하려던 참이었는지도 모른다.
 
“모처럼 쉬는 날이니 늦잠 좀 자고 12시까지 갈게요. 엄마가 기다리실까봐 전화했어요.” 토요일의 전화였다.
전화를 끊고 금방 또 전화를 했다. 점심을 하느라고 부산할 어미를 걱정했나 보다.
“점심 준비 하지 마세요. 가다가 갈비탕이나 한 그릇씩 먹고 가자구요. 우리 갈비탕 먹고 싶어서 그래요. 진짜 점심 준비하지 마세요. 아셨죠? 나, 조금만 더 자고 갈게요.”
 
에구. 직장인은 주말이면 쉬고 싶을 텐데. 그래서 좀 더 자겠다는 소리에 얼른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고 생각을 하니 그러면 아침을 먹지 않고 맨입으로 와서, 우리를 싣고 가다가 갈비탕이라도 먹겠다는 말이 아닌가. 그럼 얼마나 배가 고프겠느냐는 말이지. 그래. 우리를 실으러 오면 바로 밥을 먹게 해야겠는 걸. 다시 좀 자겠다 했으니 전화는 다시 못하겠다.
 
냉장고를 열고 보니 마침 양념을 해 놓은 불고기가 족히 한 사라가 될 만큼은 되겠다. 두 내외가 좋아하는 명란젓도 있다. 굴비도 서너 마리 냉동실에 누어있다. 불고기와 명란젓과 굴비는 사위의 급한 출현을 위해서, 언제나 상비해 두는 비상식(?)이다. 참치김치찌개를 좋아하니 햄을 듬성듬성 썰어 넣고 얼큰하게 끓이자. 이만하면 아쉬운 대로 점심 한 끼는 때우겠다.
 
우리 집을 드나드는 사람 중에, 내게는 사위가 제일 큰 손님이다. 그야말로 ‘백년손님’이 아니신가. 딱히 까다로운 사람도 아니고, 타박을 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런데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나만이 아니라 대체로 그렇다 한다. 말괄량이 부산 댁(우리는 친구 하나가 어찌나 부산한지 이렇게 부른다.)도 사위는 어렵다 하니 말해 무엇 하리. 누구에게나 사위는 어려운가 보다.
  
“와~. 맛있는 냄새. 점심 하지 마시라니까.”말은 그리해도 반가운 기색이 역력하다. 막내 딸아이는 이래서 뭘 해주든 재미가 난다. 시장도 하겠지만, 차려주는 사람이 재미지게 한다. 뚝딱 식사가 끝난다. 설거지는 할 채도 않고 물에 첨벙첨벙 담궈만 놓는다. 그래도 커피는 마셔야겠다 한다. 내 맘 같아서는 저녁에 비가 온다는 예보를 들었으니, 서둘러 일어났으면 싶은데. 영감도 딸아이도 밥을 먹고 나면 의례히 커피를 찾으니 ㅉㅉㅉ.
 
에구구 어쩌나. 현관문을 여니 부슬부슬 이미 비가 내리고 있다. 다른 사람이야 차를 타겠으니 괜찮다 하지만, 길이 미끄러울 테니 운전하는 사람이 걱정이 아닌가. 사위가 베테랑급 드라이버라고는 하지만. 이왕에 맘먹었으니 어서 떠나자고들 한다. 큰 우산 두 개를 챙기고 현관을 나선다. 아니, 분명히 비는 저녁나절에나 온다고 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차에 대해서는 무뇌한인 내가 느끼기에도 승차감이 월등하다. 아늑하면서도 중후한 분위기의 이 무게감. 이게 바로 외제차를 타는 재미라 한다. 딸은 딸이기에 그렇다 치고 사위가 고맙다. 시승식 첫 테이프를 장인과 장모를 태우고 하다니. 사돈님들에게는 미안하지만 멀리 사시고 사업이 바쁘시니 어쩌겠는가. 덕분에 우리가 호강을 하는구먼.
 
시부모님을 양주로 이장을 한지가 두 주일. 그동안 영감은 두 번을 다녀왔고 나는 한 번을 다녀왔다. 사진 속의 아버님 어머님은 여전히 고우시다. 오늘은 사진의 액자를 바꿔드려야겠다. 백금으로 도금을 한 세련되고 근사한 액자를, 거금을 들여 바꾸니 한결 분위기가 밝다. 막내 딸아이는 할아버지가 평소에 좋아하신 술상을 올리겠다고 최고급 모형술상을 고른다.
 
에구구. 자리가 좁아서 술상을 드리지 못하겠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네 마음을 아셨을 테니 그만두자.”고 달랜다. 사위는 액자의 아래에 받침대를 넣어서 내 뜻을 받아준다. 역시 사진틀을 높이 세우니 한결 분위기가 살아난다. 사위의 저 손으로는 안 되는 일이 없다. 아니, 내 뜻을 받들어주는 그 마음이 늘 고맙고 예쁘다.
 
나는 시부모님 앞에만 서면 죄인이 된다. 암. 죄인이지. 살아생전에 다 하지 못한 효(孝)를 이루 말로 할 수가 있겠는가. 이렇게 해 드릴 걸, 저렇게 해 드릴 걸 하고 후회하면 지금 무슨 소용인가. 그래도 두 분은 여전히 빙그레 웃고만 계신다. 아버님이야 워낙 말씀이 없으신 어른이시지만, 어머님은 금방이라도 말을 주실 것만 같다.
"괜찮다. 자주 오너라."
 
아, 하늘이 밝아진다. 비가 다 왔나 보다. 다행이다.
추모공원을 나서며 사위와 막내딸이 뭔가 의논을 하는가 싶다.
“아빠. 얼른 집에 가야 할 일 없으시지요? 바쁜 일 없으시지요?”
“바쁜 일은 뭐. 천천히 가자.” 찬찬히 안전운전을 하라는 뜻이겠다.
 
“아직 시간이 이르니 어디 한 군데 둘러 가자는데요.”
“춘천 갈까?”사위가 닭갈비를 먹으러 가자한다. 춘천. 춘천이라면 내가 가고 싶다. 참 오랜만이다.  춘천에는 중년에 영감과 드라이브를 자주 가던 곳이다. 그러니까 추억이 있는 곳이라는 말씀이지.
“한 시간 좀 더 걸릴 텐데 다녀가시지요.”라며, 사위는 이미 핸들을 돌린다.
 
춘천. 닭갈비.
딸아이가 핸드폰으로 유명하다는 집을 찾아 고고. 그래도 식사시간이 아니어서 줄을 서지는 않았지만, 홀에는 빈자리가 없다. 운 좋게 자리를 잡고, 오랜만에 오리지널 춘천닭갈비를 청한다. 살점이 부드럽고 연해서 오래간만에 포식을 한다. 볶음밥 맛도 여전하다.
 
에구~. 밖이 어두워서 추억이 서린 경인대로의 전경을 모두 놓쳐서 아쉽다. 눈치 빠른 사위가 말한다.
“다음에 한 번 더 오시죠.”
그랬으면 참 좋겠다.
‘어이~ 사위님. 그땐 내가 쏠 겨~!’ 마음속으로 크게, 아주 크게 외친다.
 
(4월의 어느 날의 일이었습니다.- 사흘 뒤의 수술을 위해서 몸을 쉬자하니, 너무 무려해서 이미 써 두었던 글을 올렸습니다.^^)
 
<할리우드>에서 막내 딸아이내외로부터 받은 트로피입니다^^
<베스트 화더><베스트 마더>로 선정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그럴 자격이 있다네요 ㅎㅎㅎ.
 
나에겐 과분한 시승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