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꿎은 시집살이
“아가씨. 혼자만 그렇게 고생을 해서 어떻게 해요.”
“고생은요, 뭘.”
“죄송해요. 제가 애 학원 가는 걸 봐 줘야 해서….”
“예. 알아요.”
“어머님이 수술하시는 날도 못 가게 생겼어요. 어머님이 눈 수술하고 나시면, 한 두 주일은 식사준비를 못하실 거예요. 그때는 아가씨 신경 안 쓰시게 제가 다 수발해 드릴게요.”
여기까지는 며칠 전 며느님이, 딸아이에게 전화를 걸어와서 나눈 대화라 한다. 나를 데리고 병원에 다니는 시누이에게 미안했던 모양이다. 아닌 게 아니라, 막내 딸아이가 아니었으면, 나 혼자서는 엄두도 못 낼 일이었다.
“아이구 엄마. 그만해도 고맙지 뭐유.”
“그러게. 난 그냥 아빠랑 우물딱주물딱 해 먹으려고 했지.”
“이제야 맘이 놓여요. 난 어쩌나 하고 내심 걱정했어요.”
남들은 하기 좋은 남의 말이라고,
“그럴 때 써먹으려고 끼고 사는 거 아니냐.”고 했겠지만, 그럴 의사는 추호도 없다. 불러서 시키자면 아니 될 일도 아니지만, 구태여 그리하고 싶지는 않다는 말씀이지.
그런데 그러자니 내 일이 많아졌다. 대충 치우고 살던 살림이니 어쩌랴. 며느님에게 책잡히지 않으려면, 구석구석 문질러서 대대적인 청소를 좀 해야 되겠는걸. 행주도 새 것으로 바꾸고….
아, 그러고 보니 걸레도 이참에 던져버리자.
나도 끼니마다 상차리기에 진이 빠지던데, 내 며느님은 시부모의 밥상 차리기가 수월하겠는가. 몹시 어려운 일을 자처했음이 여실하다. 대충해도 나는 고마운 일인데, 며느님의 입장에서야 어디 그렇겠느냐는 말이지. 호된 시집살이를 하게 생겼다고 속으로는 걱정이 태산일 게다.
내일은 마트에 시찰을 좀 나아가 봐야겠다. 밑반찬을 좀 해 놓아야겠다. 밑반찬만 제대로 있으면 밥이나 하고 찌개나 하면 조금은 수월하겠지. 영감의 돌솥밥 짓기가 어려우려나? 아, 겉절이도 좀 버무려놓고 장조림도 좀 더 해 놓아야겠다.
며칠씩 이어 내놓는 걸 싫어하는 영감이니 내가 더 신경이 쓰인다. 사다 먹는 반찬을 싫어하는 양반이어서, 며느님이 더 성가실 것 같다. 내가 영감을 고루고루 두루두루 좀 주물러 놓아야겠다. 며느님이 상에 올리는 것은, 무엇이든 맛있게 먹어치우라고 말이다.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잔소리를 하는 영감은 아니다. 싫으면 그냥 수저를 놓는다. 음식을 만든 사람의 입장쯤은 상관도 않는 영감이다. 그렇다고 왜 싫은지를 말하는 양반도 아니다. 음식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그게 더 큰 곤욕일 수도 있지.
처음 결혼을 하고는 나도 ‘엄청 어려운 지아비’라고 타박을 했더니, 아직도 그 끝이 깨끗하지 않아서 가끔 속을 태우기도 한다. 그러니 며느님은 단 며칠이지만 얼마나 어렵겠는가. 며느님~! 미안해. 꼴 적은 시어미 때문에 안 해도 좋을 시집살이를 하게 생겼구먼. 정말 미안해.